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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04. 2022

육아일기

2022.08.04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희영


그 아이의 이름이다. 처음 아이의 이름을 말하던 사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나 역시 단순한 호기심과 귀여움 때문에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내는 그런 날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미혼부는 처음 보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미혼모는 몇몇 보이지만 미혼부는 잘 보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처음 그가 아이를 혼자 기른다고 했을 때, 첫마디가 ‘사별하셨어요?’였다. 


사내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은 여자는 마치 맡겨놓은 짐을 건네주듯 자기에게 툭하고 아기를 건네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을 닫고 나가더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 몸에서 나왔으니 네가 짊어지고 가라.”


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사내는 갑자기 휴대폰을 보더니 잠시만 아이를 안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내의 허둥지둥하는 목소리로 회사에서 온 전화인데, 지금 당장 받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했다. 잠시 길가에 서서 아이를 구경한 값이라고 생각해 흔쾌히 아기를 잠시 안았다. 


사내는 정말 죽을죄를 지은 듯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통화를 하다가 문자를 보내다가 이런저런 행위를 하다 난처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초면에 정말 죄송한데요. 딱 5분만, 아니 아니 3분만 아이 좀 봐 주실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지금 당장 계약서가 없다고 지금 당장 찾아서 보내라고 난리가 났어요. 저기 보이시죠? 저 건물이 회사인데 빨리 들어가서 계약서만 찾아오려고 하거든요. 회사 안에는 아기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진짜 5분, 아니 3분 만에 올게요. “ 


이왕 안고 있는 아기를 5분 정도 더 안고 있는다고 큰일 나지는 않을 듯했다. 그래서 나도 볼일이 바빠 딱 5분만 기다리겠다고 말했고, 사내는 정말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회사 방향으로 달려갔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사내가 사라지고 3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였다. 팔도 아프고 지치기도 지쳐서 언제 오나 한참을 기다렸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서 천천히 그의 회사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회사라고 했던 곳에 도착하고 나서도 나는 그를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은 물론 전화번호나 연락처까지도 사내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와 그 사내가 연결되어 있는 건 지금 내 손에 안겨있는 아기가 전부였다. 이렇게 쉽게 자기의 아이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인근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어떤 사내가 아이를 맡기고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신원조회라도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를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건 아버님이 알아서 하셔야지. 왜 우리한테 그러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졸지에 미혼부가 되어 버렸다. 

……

그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은 다음날 아침 뉴스를 통해서였다. 뭔가 익숙한 복장의 인물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뉴스에 나왔다. 분명 그 사내였다. 어제 자신에게 아기를 맡기고 사라진 그 사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아이의 아빠가 그 사내에서 나로 바뀌어 버렸다. 다시 경찰서에 가서 이 아이가 오늘 아침 변사체로 발견된 사내의 아이라고 말해봤지만 미친놈 취급만 받았다. 혹시 몰라 그 사내의 신상정보가 나왔는지 물어봤지만 그것 또한 수사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되었건 당분간 내가 아이를 봐야 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인 듯하다. 어제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동네 마트에서 젖병과 분유를 사 와 물렸다. 처음에는 아무리 입에 가져다주어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던 아기가 배고 고팠는지 어느새 젖병을 들고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면 정말 영락없는 천사였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불쌍하기도 했다. 왜 그 사내는 길에서 처음 보는 나에게 자기의 아이를 선뜻 맡겼을까. 아니 버렸을까. 정말 버린 게 맞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 것 하나 답이 나오는 건 없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자, 직장 상사가 어이없다는 투로 허허허 하며 웃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어제까지만 해도 결혼도 안 한 사내놈이 다음 날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는 게 정말 황당했나 보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을 했다만 상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가방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반차냐고 물어보았다. 상사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한 2초간 나를 노려보더니 상상 임신을 했다며 오늘 산부인과를 예약했다며 가방을 들고 회사 문을 나갔다. 나의 상사는 남자다. 남자가 상상임신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서 돌아와서는 아기를 맡긴 보육 아주머니에게 사례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아기라 마땅히 맡길만한 곳이 없었고, 급한 대로 가정부 파견 업체에 연락해 약속을 잡은 거였다. 생각보다 지출이 많이 나갔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분명 월급보다 쓰는 돈이 훨씬 많아질 게 뻔했다.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렇게 생활비를 계산하고 있는데 아기가 엉금엉금 기어와 내 얼굴을 꼬집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계산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아기를 붕 들어서 비행기를 태우는 데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진하고 구수한 냄새가 덩달아 났다 급한 대로 환기를 시키고 기저귀를 벗겨보니, 예상이 맞았다. 우선 남아 있는 기저귀를 찾아보니, 하나도 없었다. 분명 가정부 비용을 계산할 때, 기저귀 값도 같이 준 것 같은데 남은 기저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덤티 기를 씌웠나 하고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 쓰레기봉투에 가득 쌓여 있는 똥기저귀가 보였다. 하루 만에 다 쓴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급한 대로 기저귀를 벗기고 엉덩이를 씻기고 수건으로 대충 천기저귀처럼 만들고 아기를 들쳐 없고 기저귀를 사러 나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새빨간 보름달만이 마치 아기 얼굴 마냥 들떠서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계획에도 없던 미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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