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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05. 2022

소변

2022.08.05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누가 그랬을까? 혼자 있는 게 가장 편안하다는 말. 사실 그 말도 모순적인 게 태어나서 평생을 혼자인 사람은 타인과 같이 있는 기분을 모른다. 토선생이 그랬다. 이곳은 소행성 no.3002.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모르고, 정작 이곳의 주민인 토선생 역시 이곳이 뭐라고 불리는지 모른다. 다만 처음부터 여기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뿐. 앞으로는 사실 토선생 자신도 장담하지 못해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들어 토선생의 신경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시선이다. 이곳은 분명 아무도 없고, 물론 토선생을 제외하고 말이다. 다른 누군가가 있어 본 적도 없는 곳인데 누군가가 이곳을.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든다. 이 말 또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석한 것이 토선생 본인으로서는 단지 기분이 찜찜하다. 그래서일까 토선생은 요즘에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이 예민하다. 발 위에 먼지가 묻으면 괜히 짜증이 났고, 분명 등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아는데 수시로 뒤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토선생은 언제부터 여기에 이렇게 살아왔는지도 떠올리지 못한다. 다만, 얼핏 스치는 기억으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렇게 자기 혼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이 머릿속 한 구속에서 계속 꼼지락 되는데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다. 토선생 나름대로 자기 기억력에 의지하지 않고 합당한 근거도 있기는 했다. 바로 저기에 놓여 있는 절구공이다. 분명히 혼자 있고, 혼자 있어왔는데 절구공이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토선생이 양손에 하나씩 절구공이를 들고 빻았을리 만무한데, 분명 지금보다 훨씬 이전이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혈기가 왕성했다고 해도, 토선생 혼자서 양손에 절구공이 하나씩 들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절구공이 하나의 무게가 어마 어마하게 무거웠다. 그래서 최근에 저 절구공이를 들고 절구를 찧은 적도 없다. 하지만 가만히 다가가 양손으로 절구공이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피의 흐름은 분명 자기가 이것을 들고 열심히 일을 했다는 건 분명했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몸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혼자인 게 편안하다는 말이 모순적인 것처럼. 혼자가 외롭다는 말도 모순적이다. 특히 일평생 혼자였던 토선생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외롭다. 편안하다. 이 말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그전에 같이 있어봤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거다. 토선생은 여태껏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기에 비교대상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도 모르게 외롭다느니 편안하다느니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이것도 절구공이를 들었을 때처럼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 것이다. 이미 토선생의 몸은 자기가 혼자가 아니었을 때를 알고 있는 거였다. 이렇게 몸이 반응하는 것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환하게 빛을 충분히 받았을 때 특히 그랬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데,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토선생은 어디에서도 소변을 누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데 어디에 누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 있지만, 밝은 곳이 있으면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거다. 


특히, 토선생처럼 나이가 지긋한 동물은 체면이라는 것이 있기에 흉이 될만한 행동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생리적 실례는 시간이 지나도 따라다닐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토선생은 익혀왔다. 이것 역시 몸이 아는 바이기에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토선생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한 달 중 유일하게 소행성에 빛이 사라지는 날이다. 그날은 어떤 시선도 느껴지지 않고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그때서야 자유롭게 소변을 누게 되는데,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밖에 시원하게 누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수분의 섭취를 줄이게 된다. 뭐 수분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소행성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날에는 자유롭게 소변을 볼 수 있다는 편안함은 있지만, 눈앞에 있는 사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소변을 누고 나서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정말 재수가 없을 때는 자기가 본 소변 위로 자빠질 때다. 그럴 때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여기며 아예 땅바닥을 굴러버린다. 


요 며칠 토선생이 사는 곳 주위로 작은 날파리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가오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조금씩 토선생의 물건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몇 해 전인가 어떤 나파리는 처음으로 토선생의 이불에 어떤 이물질을 뱉어 내고는 날아가기 시작했다. 토선생은 최근 들어 너무 소변을 많이 봐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토선생은 긴장한다. 다시 한 달 뒤에나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을 하자 소변은 더 마렵고, 머릿속은 다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토선생의 머릿속은 다시 새하얀 도화지로 변하며, 또다시 한 달 뒤 그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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