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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07. 2022

이직

2022.08.07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김 씨, 많이 잡았소?”

김 씨라고 불리는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피가 묻은 칼을 공중에 한두 번 털어 내고는 다시 칼집에 넣는다. 


“요즘은 통 몬스터가 돈이 안돼.”

김 씨를 불러 세웠던 노인은 나무에 기댄 채 담배를 꺼내어 불을 지핀다. 노인의 옷 또한 다른 검사들과 똑같은 두꺼운 레더 아머에 어깨와 팔꿈치 등에만 강철로 덧대어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일반적인 검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가장 기보적인 세팅이었다. 


“노옹, 그 갑온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부터 입기 시작한 거 아니에요?”


“응? 이거 말이야? 그렇지. 한 20년쯤 되었나?”

“이제 바꿀 때 되지 않았어요?”

“바꾸기는 아직 쓸만하구먼, 아직 고블린의 창 정도는 가볍게 막아 낸다고.”


노인은 가슴을 팡팡 치면서 자기가 입고 있는 갑옷의 건재함을 뽐내었다. 그러나 이미 레더 아머 사이사이에는 많이 헤어졌으며, 구멍이나 찢어진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미 갑옷으로서는 수명이 다한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 규정상 갑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몬스터 사냥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입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검사들도 많이 줄어들었네요. 예전에는 이 드넓은 초원에 가득할 정도로 검사들이 수두룩했는데.”

“그러게 말일세. 마땅히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없기도 했거니와 당시 누가 오크 한 마리라도 잡았다 하면 정말 파티 일색이었는데. 요즘에는 마법사 마법 한 번에 오크 수십 마리가 나자빠지니 누가 비싸고 죽으면 사망비까지 챙겨줘야 하는 검사를 쓰겠어.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확실한 마법사 한 명 부리는 게 더 이득이지.”


노옹은 한숨과도 같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김 씨도 노옹과 다를 바 없는 찹찹한 심정으로 검집에 있는 칼을 꺼내 기름을 바르고 천으로 닦아낸다. 시대는 변하고 이제 단순히 힘만 있다고 돈을 버는 구조는 변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몸이 건강한데 먹고살게 없겠어라며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 머리를 써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비참하게 빌어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거다. 


며칠 전 처음 검을 쥐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을 앓고 계셨다. 거기다 동생들까지 나이가 어려서 자기가 검을 들고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원래 어린아이는 검사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른 척하고 길드에 임시직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생각보다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검은 잡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휘둘러서 목표를 맞출 수 있듯이, 검을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검은 검이 아니라 그냥 몽둥이일 뿐이다. 그렇게 약 8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어떤 한 미션에서 소년은 더 이상 검을 못하게 되었다. 


“김 씨 아저씨, 이… 이게 뭐죠? 갑자기 손에서 빛이 나더니 칼로 옮겨 붙었어요! 으악 “


“꽝”


소년의 손에서 뻗어 나온 불꽃은 전방으로 날아가 고블린 무리를 일격에 날려버렸다. 그 소년은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지나면서, 조금씩 그 재능이 발현된 것이다. 다음 날, 소년은 더 이상 길드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3개월 뒤, 우리 길드에 몬스터 퇴치를 의뢰 요청을 하는 남작의 전속 마법사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여, 잘 지냈어? “ 


김 씨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지만, 소년은 더 이상 김 씨를 아는 채 하지 않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가는 그 소년을 보면서 김 씨는 씁쓸하면서도 지금 검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하물며 같이 칼밥을 먹고 지내던 아이 역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몇십 년을 검을 휘둘러온 사람들을 저렇게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옹, 이제 저도 슬슬 검을 놓아야겠어요.”

“응? 무슨 일 있는가?”

“저도, 마법이나 한번 배워 보려고요.”

“마법? 자네가? 알 않는가. 마법이라는 게 재능을 탄다는 걸. 우리와 같이 칼밥 먹는 사람들은 라이트 마법도 쓰지 못하고 도태될 거야.”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해보고 죽나, 안 해보고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걸요. 어차피 죽는 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해보려고요.”

“허허, 김 씨 아직 젊구먼. “ 

“ 제가 노옹보다는 많이 젊기는 하죠.” 


그렇게 김 씨의 마지막 길드 출근이 끝났다. 우선 김 씨가 찾은 곳은 무료로 마법의 기초를 가르쳐 준다는 국립 아카데미이다. 말이 무상이지. 대신에 이것저것 테스트라는 면목으로 처리하는 몬스터 퇴치 비용들을 모두 아카데미에서 꿀꺽한다는 사살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그럼에도 아쉬운 사람들이 찾는 곳이 바로 이곳 아카데미이다. 


아카데미 안 쪽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찍이 검사가 유행을 할 때, 저 넓디넓은 초원에서 보던 모습을 이곳 빡빡한 아카데미 건물 속에서 다시 본 것이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컸다. 


“음..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 


아카데미 강단에 어떤 젊은 여자가 나와서는 주위를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하며 손을 위로 들고는 ‘비 콰이어트’ 마법을 시전 했다. 모든 소리가 블랙홀로 흡수되어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소리가 빨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 귓속 먹먹함이 가미되었다. 


“ 휴, 이제야 말을 할 수 있겠네요. 다들 주목해주세요. “ 


여자 마법사는 이곳의 취지와 교육과정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게 특별한 것은 없고, 이곳을 나왔다고 해도 뭔가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은 품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연설이었다. 

여자 마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김 씨는 더욱 김이 빠졌다. 자신처럼 잡 체인지를 하는 사람은 지금 아카데미에서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듯했다. 기존의 있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김 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칼을 들고 있던 손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잡체인지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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