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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프포스트코리아 Aug 02. 2018

'프랑스엔 경쟁이 없다'는 말은 신화에 불과하다

'경쟁이 없다'는 말로 프랑스 교육을 정의하는 건 안이한 말이다

교육에 대한 논의가 바른 방향으로 가려면 문제의 근인을 찾으려는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딸아이를 키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교육을 논하는 저서를 낸 목수정 작가는 최근 몇몇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프랑스의 대학은 서열화가 심하지 않고, 아이들에겐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내용을 설파한 바 있다. 아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데 합격률이 88%다. 학생들은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다.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다.(중략) 프랑스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경쟁을 안 하니까 친구들이 잘 할 때 박수 쳐 줄 수 있다. 프랑스에 경쟁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한겨레 7월30일)

지난 18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상동도서관의 특별 강연회에서는 이런 내용을 밝혔다. 

대학 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대학은 누구나 갈 수 있어요. 그랑제꼴(Grandes Écoles, 고등교육기관)은 다릅니다. 그랑제꼴에 들어가려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규교육기관인 프레파(Prépa, 예비학교)를 2년 다녀야 해요. 그때만 열심히 합니다. 경쟁을 도구로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아요. (베이비뉴스 7월20일)

‘프랑스에는 경쟁이 없다’는 이야기는 정말 오래된 신화다.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내용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감동근 아주대학교 부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목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링크해 공유하며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는 딱 그랑제콜 아래까지인데, 문제는 그랑제콜 출신들이 프랑스의 정치, 경제, 법조, 산업계를 독점하면서 세계 최고로 폐쇄적인 학벌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역대 대통령 중에 그랑제콜 출신이 아닌 사람은 군인(육사) 출신인 샤를 드골과 그랑제콜인 시앙스포를 중퇴한 사르코지 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얘기하는 ‘학벌 사회’가 한국의 학벌 시스템과 비슷하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드러난 바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2009년 프랑스로 건너간 곽원철 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는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잘 드러나 있다. 

프랑스 입시에 등수가 없고 경쟁이 없으며 대학들 간에는 서열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중략)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프레파(CPGE)’, 즉 예비학교들 또한 해마다 어느 그랑제콜 합격생을 몇 명이나 배출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순위들이 발표되고는 한다. 순위가 높은 프레파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한데, 이는 다시 어느 고등학교가 어느 프레파에 학생들을 많이 보냈는가를 평가하는 순위표로 이어진다. (경향신문2017년 11월4일)

심지어 목수정 작가가 예로 든 학교가 바로 그랑제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외에도 프랑스는 논술형 시험의 공정성·객관성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한다. 그는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국립영화학교 페미스 입학시험 사례를 들었다. (한겨레 7월30일)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다는 말,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말과 250여개 그랑제콜 중 하나인 페미스(La Femis)를 수식한 ‘최고 명문’이라는 단어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부딪힌다. 


프랑스에서 학부를 졸업한 한 20대 여성은 허프포스트에 ”일반 대학의 서열화가 한국에 비해 옅다는 의미라면 맞는 말이다”라면서도 ”파리 소재 특정 대학교에 가려는 경쟁은 존재하고,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는 경쟁은 훨씬 더 심하다는 의미에서 (목 작가의 주장에) 반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엘리트 교육기관이자 ‘전문학교‘인 그랑제콜의 서열화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일반 대학의 평준화를 강조하며 ‘경쟁이 없다’는 말로 프랑스의 교육을 정리하는 것은 아래 설명에 비춰 볼 때 지나치게 안이한 해석이다. 


정작 대다수의 프랑스인은 이런 (그랑제콜 출신의) 엘리트들의 삶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냥 ‘다른 삶’으로 여긴다고나 할까. 특정 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에게는 일반 대학 출신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소위 ‘출세’의 탄탄대로가 펼쳐지는데도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이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경향신문2017년 11월4일)
EMMI KORHONEN VIA GETTY IMAGES

최근에는 이와 비슷하게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교과목을 없앤다”는 내용의 블로그가 소셜미디어에서 급속도로 퍼진 바 있다. 헬싱키 교육청장이 ”아이들이 지금 가르쳐지는 방식은 1900년대 초반 학생들에게 유익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했다며 ”(핀란드는 앞으로) 교육 과정에서 학교 과목을 제거하고 개별 사건과 현상에 대한 연구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이 블로그의 글은 2017년에 ‘인라이튼드 컨셔스니스’라는 매체가 2015년에 이미 가짜뉴스로 판명된 인디펜던스의 기사를 뒤늦게 짜깁기한 기사를 또다시 인용·번역한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 국가교육원(Fin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은 2015년 3월과 2016년 11월 두 번에 걸쳐서 “핀란드 학교에서 교과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공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글: 박세회(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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