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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Sep 02. 2021

'앙버터' 하나에 호들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낭만 그리스도인 #22]

    [낭만 그리스도인 #22] '앙버터' 하나에 호들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흘 만에 얻은 앙버터. 퇴근 후에 은근 구하기 까다로웠다.


  앙버터 하나에 호들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게, 지난 사흘은 참으로 기묘했다. 사흘이었다. 무언가를 손에 넣고자 했던 끓는 욕망을 충족하기까지의 기간 말이다. 왜 그랬는지 지난 사흘 동안 앙버터가 심히 먹고 싶었다. 치킨과 콜라를 끊다시피 한 금단 현상인지는 모른다. 다만 수많은 먹을거리 중에 하필 앙버터가 내 눈 앞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홀려있었다. 아내는 나를 달래고자 덩달아 분주해졌다. 회사 인근 빵집을 순회하며 앙버터를 구하러 다닌 것이다. 고마운 마음이다.      


  앙버터를 손에 쉽게 넣을 줄 알았다.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우린 (재화만 충분하다면) 욕망을 실현시키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첨단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 빵집에 가서 돈을 내고 앙버터를 사면 그만인 일이다. 우유와 마시면 그 고소함이 배가 되는 앙버터, ‘팥 홀릭’인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앙버터 구매에 대한 아내의 승인이 떨어졌을 때, 퇴근 후 별 생각 없이 프랜차이즈 빵집에 갔다. 떨어졌단다. 그럴 수도 있다. 근처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의 문을 열었다. 팔지 않는단다. 연속으로 두 곳에서 얻지 못했다. 그제야 쏟아지는 비가 불편하게 여겨졌다. 지하철역 근처 빵집 두 곳이 생각났다. 종종걸음으로 가 보니 두 곳 다 팔지 않는단다. 대신 다른 빵을 권했다. 마음에 차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집 근처에서 다시 프랜차이즈 빵집에 전화를 걸었다. 팔지 않는단다. 개인이 운영하는 빵집에 가 보니, 이곳 역시 모두 팔렸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 곳에서도 앙버터를 얻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나는 당황했으며, 약간은 우울감이 밀려오는 것도 같았다. 집에 도착해보니 젖은 것은 신발과 바지뿐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왠지 서럽게 젖어있었다.     


  다음 날, 아내와 저녁 약속이 있어 아내 회사 근처로 향했다. 간만에 삼겹살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공원을 산책하는데, 전날 사지 못한 앙버터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내와 함께 네이버 지도를 켜 놓고, 산책 겸 빵집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앙버터가 남아 있는 집이 없었다. 이쯤 되니 슬슬 조바심을 넘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었다.     


  ‘이게 그렇게 인기 있는 빵이었나….’     

  

  아내는 “오빠도 지금 이렇게 앙버터를 사려고 헤매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앙버터의 인기는 높았다. 우리 회사, 아내 회사 그리고 우리 집 주변 세 곳 모두에서 앙버터 구매에 실패했으니 말이다. ‘빈(貧)소유’에 가까운 내가 근래 보기 드문 집착을 보이자 서두에 언급했듯 아내도 본격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내는 마침내 회사 근처 또 다른 빵집에서 앙버터를 손에 넣었다며 기쁨의 소식을 전해왔다. 다른 일로 고단한 하루를 보내던 나에게는 잠시 한숨 돌리며 위로를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앙버터를 얻는 과정은 예상 외로 지난했고, 치열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에 스며드는 생각들이 있다. 성취를 위해서는 인내가 수반된 두드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숙성을 거친 와인의 풍미가 깊어지듯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상황을 조망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만약 성마르게 행동했다면 나는 앙버터 대신 다른 대체 간식을 택했을 것이며, 앙버터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을 것이다. 9-10곳의 빵집을 사흘 간, 끝내 획득할 때까지 문을 두드렸다. 이 같은 두드림이 있었기에 마침내 앙버터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감격과 환희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었다.      


  조금 더 감상에 젖어보자면 맛있는 앙버터를 먹기까지의 과정은 참 감사한 일이다. 단순히 돈을 주고 사 먹었다고 건조하게 치부할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연결된 수많은 노고로 인해 앙버터가 내 입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오늘도 앙버터에 사로잡힌 정신으로 심력을 낭비했을지도 일이다. 그러니 이걸 먹을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할 일이 많은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가 획득했던 것들이 순전한 나의 능력대로만 된 것도 아님을 물론 알고 있다. 운이 좋았고, 그렇기에 겸허해져야 한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은혜인 것이다. 앙버터 하나에 호들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앙버터가 해묵은 감정을 끄집어내게 한다. 당연한 것에서 감사와 겸손을 발견하게 말이다. 높은 기대치를 안고, 힘들게 얻은 만큼 꿀맛인 것이 내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 오늘은 제법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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