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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Nov 29. 2023

1인 목회는 한 달에 쓰는 설교문이 몇 장이나 될까?

[상가교회 분투기 4] 열정을 쏟되, 번 아웃 되지 않도록

  [상가교회 분투기 4] 열정을 쏟되, 번 아웃 되지 않도록

 

  “의문이 사라진 확신, 존재가 사라진 고백은 위험하다”는 어느 목회자의 역설이 폐부를 찌를 때가 있다. 설교문을 작성할 때다.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가감 없이 전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명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방향을 잃고 표류하거나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엉뚱한 목적지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위험한 것은 성령님을 만나지 않고, 기계적으로 설교를 준비할 때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은 얼마나 많은 의문들을 소거해가며 얻은 결론인지, 또 내가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들은 먼저 내 존재가 말씀 가운데 감화되어 그러한 삶으로 은혜를 누렸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설교를 준비하다 문득 목회자 혼자 사역하는 교회는 한 주간 몇 장의 설교문을 작성하는지 궁금해졌다. 부교역자로 사역한 지난 교회에서 새벽설교는 20분 기준 A4 3-4장, 수요설교는 40분 기준 A4 8장 내외로 작성했다. 그러니 주일, 수요, 금요예배 및 주 5회 새벽예배 설교를 생각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매주 40여 장의 설교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달이면 대략 160-200장이니 양으로만 따지면 매달 책 두 권 분량을 정신없이 작성해야 한다.      


  이 분량은 장례나 개업, 심방 예배 등 다른 변수 없이 설교만 준비했을 때 그렇다. 특히나 심방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경우, 성도와 깊어지는 교제의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오히려 시간을 더 늘려 가정과 일터뿐만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눈 속에서 또 사막 한가운데서 같이 예배드리며, 와일드 캠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전라도 먹방 투어하며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보고 싶은 사모함이 간절하다. 그러나 현실은, 매주 밀려드는 설교의 홍수 속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설교를 준비하는 묵상의 시간이 좋다. 문맥을 살피고 숨겨진 의미를 깨달으며, 시대의 배경과 오늘을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영적 공명의 시간이 좋다. 살아있기에 배울 수 있고, 배운 걸 적용하며 살아있음을 깨닫는 존재의 증명이 좋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이로 세워주시니 정말 좋다.     


  주 40장을 차질 없이 채울 수 있을까? 많은 설교에 파묻히다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며 목회의 초점이 흔들릴 것이다. 오래지 않아 십자가 복음의 은혜가 선명해서 계산 없이 투신한 처음 마음이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사명을 따라 목회의 길로 들어섰기에 설교를 가장 우선적으로 잘해야겠지만, 전투적으로 돌격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조금 더디더라도, 때론 실수하더라도, 가끔 멍청한 선택을 하더라도 남들 시선에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한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구하며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을 자양분 삼아 열정을 쏟되 번 아웃 되지 않을 경계에서 설교를 준비하려 한다. 그리고 그 설교가 가장 필요한 나부터 은혜받기를 기도한다. 많든 적든 그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을 온전히 선포해야 하기에. 많은 설교문을 작성하기보다 제대로 된 설교문을 작성해야 함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성경 본문을 주해할 때마다 기억하라해당 본문에서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끌어냈는가그렇지 않다면당신은 아직 본문 설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 팀 켈러 


  #동네교회 #교회개척 #청년교회 #주일설교 #가나안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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