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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Nov 24. 2020

용기, 나의 작음을 알고 주님의 크심을 아는 것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1]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1] 용기나의 작음을 알고 주님의 크심을 아는 것


  “야, 너 미쳤어?”     


  사자후는 아니지만 언성을 꽤나 높였던 건 사실이다. 소개팅 후 ‘어땠어?’라며 실실 웃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그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친구가 별로였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못난 친구를 위해 기꺼이 만남을 주선해 준 녀석이 고맙기는 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제발 내 심정을 알아달라는 투로 또박또박 의사를 전달했다.  


  “야, 너 미쳤어? 그렇게 괜찮은 자매를 소개해주면 어떡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탁월한 그녀였다. 외모나 성격, 삶의 결이 모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아니하다’)’, 그래, 이 말과 꼭 닮아 있었다. 그래서 분명 나 같은 남자가 감히 만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은 삶을 비관하게 했고, 좋은 것을 마주하고도 되레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딘가에 기적은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방구석 폐인으로 돌아가 불안과 의심의 누더기를 걸치고, 외로움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다. 어두움이 편했던 못난 자존감을 끌어안은 채.      

   

  몇 년 후, 간만에 만난 녀석과 하릴없이 수다를 떨었다. 교회에서 동급최강 매력뿜뿜 자매를 만나 결혼해 골인한 녀석의 들썩이는 어깨에는 뽕이 차 있었고,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궁극의 찌질(우리끼리 표현이지 사실 내면은 정말 멋진 녀석이다)’이 일상이었던 자취남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녀석은 여전히 혼자인 내게 갑자기 옛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들은 충격적인 반전.     


  “야 인마, 그때 걔가 애프터 신청 기다리고 있었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네가 나름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서 조금 더 만나보고 싶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다고 살짝 의아해했단 말이야!”

  “정말? 아니, 그런데 너는 그걸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뭐라고? 야 이 답답한 놈아! 그때 너, 두려워서 숨어버렸잖아!”     


Ylanite Koppen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친구와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의 이 말에 답이 있다.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There are only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a miracle.).”


  친구가 아내를 소개받았을 때, 인생 처음으로 용기라는 걸 냈다고 한다. 신앙은 물론 모든 면에서 뭐 하나 자기를 압도하지 않은 게 없었던지라 주눅들만도 했지만 그냥 눈 딱 감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었다. 내가 그렇게 주선하던 소개팅을 단 한 번도 수락하지 않던 녀석이니 ‘놀랄 노’자의 행보다. 용기를 낸 바로 그 시점이 주님이 일하신 기적의 시작이 된 셈이다. 물론 친구가 밤을 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단 식의 간증은 없다. 그러나 궁색하게 살아도 나를 사랑하사 내게 항상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거두지 않았던 견고함이 있었다.       


  반면 나는 모든 자신감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이뤄놓은 성과가 없는 것이 어느 순간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후로 무기력이 학습되었고,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옷차림에 성의가 없어진 점이다. 또한 매사 부정적인 전망을 늘어놓으며 어떤 일이든 기대보다 실망이 더욱 합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다. 당연히 연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가 진심을 다해 소개해준 꽤 괜찮은 숙녀와 잘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삭제시켜버렸다. 기적은 하나님의 주권인데, 어리석게도 ‘내가 스스로 기준을 두고 재판을 해버린 것(교만)’이다.      


Ylanite Koppen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연애나 결혼뿐만 아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태도를 점검해 보자. 오늘도 내가 머무는 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하는 일을 그저 사소한 것으로 여기며 시시해하는가, 아니면 언젠가 기쁨으로 수확할 열매를 꿈꾸며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가. 용기를 내고, 가능성을 점점 높여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용기에는 희망이 있고, 열정과 연대가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크신 자비 앞에 나아가야 한다. 기적은 어둡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촛불 하나라도 켜는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용기다.       


  용기는 나의 작음을 알고 주님의 크심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크심을 알았다면 더 이상 망설임에 기회를 빼앗기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우자를 주실 때 보석이 아닌 원석의 상태로 주신다.”라고 했다. 소개팅은 그 원석을 가늠하는 첫 단계이다. 미리 판단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때 비로소 인연으로 맺어질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주님, 왜 저에게는 도무지 배우자를 주시지 않는 건가요?” 징징대는 이보다 “오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에 대해 알아가고, 좋은 것들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라며 겸손히 가능성을 바라보는 이에게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다면, 이젠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용기를 내어 만남을 가지길 바란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거룩한 은혜로 사랑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된 사명을 감당하며 영광에 참여하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마음껏 데이트의 설렘을 상상해보자. 언젠가 반드시 빛나는 기쁨을 주실 하나님을 향한 전적 신뢰, 그것이 진짜배기 용기다.      


  * 본문에 나오는 인물과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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