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남편의 급하게 써내려간 신혼 사색기(思索記)
풋내기 남편의 급하게 써내려간 신혼 사색기(思索記)
결혼 2주차, 아직은 유부계의 애송이다. 결혼과 관련된 키워드를 헤집어 해석과 적용을 해나가는데 서툴기만 하며 그러니 먼저 위대한 경험들을 해낸 유부 선배들의 보석 같은 가르침을 늘 귀담아 들으려고 한다. 다행히 살아오면서 숱하게 저지른 실수와 잘못들을 자양분 삼아 인생에서 해야 할 선택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한 눈치가 어느 정도 생긴 것이 신혼 생활의 작은 안전망이 되고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평생 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기를 엄숙히 서약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서로 다른 환경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혹시나’ 하는 불안과 염려가 엄습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신혼 초에 많이 싸운다는데 다행히 아직 다퉈본 적이 없다. 연애 기간을 포함해도 감정이 상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 기억이 없다. 왜곡이 아니다. 왜 서로에게 아쉬움이 없겠는가, 서운함이 왜 없겠으며 가끔씩 부딪치는 의견으로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가 정녕 없겠느냔 말이다.
이렇게 감정의 소용돌이가 용솟음치려 할 때, 기민하게 적용하는 세 가지 원칙 혹은 약속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걸었고, 소중하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하는 약속, 지금도 많은 부부와 연인들이 실천하고 있는 액션 말이다.
1. 첫 번째 원칙, “완전한 순종은 완전한 자유다.”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서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습관들이기다. 이 원칙의 핵심은 ‘단순함을 지키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라고 하면, 버리면 된다. 분리수거 하라고 하면, 하면 된다. 장 좀 봐 놓으라고 하면 하면 되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라고 하면 하면 된다. 콜레스테롤이 높은 치킨을 먹지 말라고 하면 곡기를 끊는 결연한 마음으로 멀리하고, 내 영혼의 동반자 콜라를 마시지 말라고 하면 ‘이건 농약이다’ 생각하고 안마시면 된다. 일찍 자라고 하면 발 빠르게 씻고 아내 옆에 눕고, 90년대 발라드를 듣고 싶어도 아내가 ‘비긴 어게인’ 노래 듣자고 하면 같이 들어주면 된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혹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계속 도전하게 만든다.
혹자는 미리 알아서 잘 좀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집안일이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의지와 관련된 습관들은 변화시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며칠 전에도 기름에 튀기고 볶은 반찬들로 저녁을 먹다가 ‘스프라이트 한 잔만 마시면 딱이겠다(결혼 전 콜라 1.5리터 앉은 자리에서 먹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실언을 던지자마자 ‘아차’ 싶어 급하게 수습하고선 보란 듯이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렇게 순종하고, 습관을 고치고, 발전해가면 된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아내의 다정한 바람”조차 들어줄 수 없다면 부부란 무엇이겠는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 “완전한 순종은 완전한 자유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인생은 옳은 방향대로 흘러간다. 당연한 얘기지만 “쾌락을 거스르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2. 두 번째 원칙,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야.”
연애 때부터 했던 말이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표하던 여자 친구였는데 이제는 우리의 관계를 규정짓는 당연한 원칙이 되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이불 덮고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내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울 것이다. 울더라도 기쁨의 눈물만 흘리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기뻤으면 좋겠다. 그 행복이, 그 기쁨이 어디 가지 않는다. 다 나와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불편하거나 두려운 일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공유하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데서 관계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1번의 예시들은 ‘명령’이 아닌 ‘부탁’이 된다. 아내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아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10초다. 그 10초 동안 가만히 안고서 아내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지금 어떤 감정의 상태인지를 느껴본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청소할 때나 식사 준비할 때, 오다가다 동선이 부딪힐 때나 때론 아무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10초’의 경건하면서도 다정한 리츄얼을 갖는다. 행복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아내의 입에서 “행복해”라고 말할 때 내 심장은 요동친다. 그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마주할 때,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함이 내게도 전해지니까.
3. 세 번째 원칙,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과장을 좀 보태자면 아내가 여자 친구 시절에 내뱉은 말의 8할은 “미안해, 고마워, 배고파”였다. 연애할 적에 아내와 나눈 말을 통해 그녀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는데,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사려 깊이 대하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미안하단 말과 고맙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으며,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말은 ‘배고프다’였다. 내게는 참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성품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근무하는 회사에서 고객들에게 감사메시지를 자주 받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아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만나보니 닮아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지만 아내에게만큼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있다. ‘미안하다’는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더 잘해주지 못한 마음을 담은 말이고, ‘고맙다’는 어떤 일의 성과나 결과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닌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임을 표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오염되지 않은 진심이길 바라며, 그래서 1번에서 언급한 행동들을 추동시킨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전할 때마다 이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고, 우리 가정이 작은 천국임을 깨달아가는 기쁨의 씨앗이 된다.
물론 오랜 결혼 생활로 베테랑을 넘어 마스터 경지에 오른 부부들은 이 글을 보고 ‘라떼’를 떠올리며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래도 마냥 이상(理想)을 그리며 설렐 수 있는 특권, 신혼의 단꿈 아니겠는가.
“다투지 않는 방법을 실천 중입니다”는 사실 소극적인 제목이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습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직 2주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풋내기 남편의 급하게 써내려간 결혼 사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