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태도'
[M_Book #16] 연애의 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오징어입니다
이 책은 내겐 퍽 의미있는 책이다. 마음이 지친 날들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여름 저녁, 절친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와 소개팅을 했었다. 그런데 당시 그녀는 두 번의 만남이 있은 후 바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고, 나는 어쩐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나의 사랑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별 생각없이 짧은 감상평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아내는 그 글을 읽게 되었다. 그러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전자책을 사서 읽기까지 했단다. 어쩌면 우리는 이책을 계기로 서로의 삶에 한걸음 더 다가가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연인의 확신'보다는 '인연의 확인'에 가까운, 서툰 연애의 초입에서 말이다.
교회나 선교단체에서의 이성간의 만남은 참 묘하기만 하다. 선후배에서 또는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그 미묘한 찰나의 옅은 떨림이 어떨 땐 한없이 설레게, 또 어떨 땐 한없이 비탄에 잠기게 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들이기 때문일 것이며, 어쩌면 여러 페르소나 속에서 방황하며 되레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하나님의 뜻’, ‘기도 응답’ 등과 같이 영적(?) 해석론으로 인한 상호간의 엇갈린 기대와 예측이 빈번하다 보니,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청년들이 많기만 하다.
나 역시 청년 시절, 그런 고민을 안고 숱한 크리스천 연애 및 결혼 관련 책들을 읽었다. 그리스도인들 대상으로는 스테디셀러일 수밖에 없는 숙명적 주제 때문인지, “주님, 제 배우자는 도대체 어떻게 찾는 건가요?”라는 함축적 물음에 친절하게 응답한 책들이 그간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거개 저자들이 성경적으로 해석한 딱딱한 이론만 붙들고 있다는 점이다(그래서 몇 페이지 넘기기도전에 내용이 뻔해 지루해지고 만다). 심지어 어떤 책들은 요즘 시대 트렌트와는 한참 동떨어진 ‘라떼 연애신학’을 주입식으로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이 좋다. “무슨 고민이야? 내가 크리스천 연애나 결혼에 관한 정답을 알려줄게!”와 같은 건조하고 따분한 해설서가 아니다. 마치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앞에 두고 고민상담하는 환영(?)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 같은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행간마다 아끼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말해주는 것 같은 따스한 조언과 때론 공감의 미소를 머금게 하는 위트는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한다.
게다가 그간 기독교 내에서 보편적이었던 철지난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연애이론이나 지나친 선동으로 본질을 오염시키는 극단적 페미니즘에 함몰되지 않은 균형감각이 잘 잡혀있다. 그만큼 에두르지 않고, 편하게 그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끔 명징하게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무엇을? 진짜 연애를 할 수 있는 나의 태도를 말이다.
저자는 연애를 잘하는 방법론을 중점적으로 할애해 설파하지 않는다. 연애의 정의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책 전반에 반복되는 한 가지 물음이 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연애는 나를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모양으로 만드시고, 나는 지난 시간 속에서 어떤 인생의 발자국을 찍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갈 길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꼭 연애의 태도만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책의 몇몇 상황들을 변주하면 인간관계 지침서 혹은 자기계발서로도 손색이 없다. 나로서는 이 책을 다 읽고서 ‘이젠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상황과 남의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었으니까. 연애란 어쩌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되레 내가 누구인지 알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자기 성장의 기회일지 모른다.
해서 연애를 고민하는 크리스천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내용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다양한 연애 에피소드와 그에 따른 반응들의 향연이다. 그런데 그 새로울 게 없는 연애에 관한, 특히나 크리스천 연애에 관한 담론을 참 재미있고, 의미있게 그려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책은 차 한 잔 앞에 두고, 유쾌하게 연애 고민상담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담긴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성찰해가는 날카로움이 살아있으니...그거면 이 책의 소임은 다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로는 다섯 손가락에 드는 책 중 하나로 자신있게 추천한다(나머지 네 권도 기회가 되는 한 차근차근 소개해 보겠다. 그 중 한 권은 독서모임 참여자들의 눈물샘을 고장내버린 책이다.)
밑줄 친 문장들
“자기 힘의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수용하는 만큼 타인을 관용할 수 있습니다.” p.52
“소개팅을 열 번 한다고 했을 때 7:2:1 정도의 비율을 각오하면 됩니다. ‘7’은 폭탄일 겁니다. ‘2’ 정도는 내 맘에 들겠지만 상대가 나를 안 찍어줄 것이고, 쌍방 그린 라이트가 켜질 확률은 ‘1’ 또는 그 이하입니다. 내가 상대의 개팅녀(남)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7’의 폭탄 등급일 가능성이 높은 거죠. 자학은 하지 말기요. 소개팅이라는 특수한 세팅 떄문이지 그쪽이나 나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이며 아들딸입니다.” p.61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오징어입니다.” p.61
“이재철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우자를 주실 때는 ‘보석’이 아닌 ‘원석’의 상태로 주신다고 합니다” p.64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고백 한번 못 하고 분위기로 알아 달라는 소심함은 무엇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선택당해서 사귀고 결혼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는 무엇이고요?” p.79
“관계란, 특히 연인 사이의 관계란 식물과 같아서 물을 주고, 누런 잎도 따 주며 보살피지 않으면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돌봄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