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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Mar 08. 2021

심장을 꺼내 놓고 출근합니다.

[낭만 그리스도인 #11]

    [낭만 그리스도인 #11] 심장을 꺼내 놓고 출근합니다.      


  윤선이가 그랬다. 매일 아침, 심장을 꺼내 놓고 출근한다고…. 그리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다시 심장을 집어넣는다고…. 무거운 한 마디에 모임은 술렁거렸다. 석균이가 이내 동조했다.      


  “사실, 저 지난달에 사직했습니다.”     


  술렁거리던 분위기는 이내 놀람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석균이는 윤선이와 기관만 다를 뿐 같은 직군에 있었다. 더구나 그 일은 정년 보장에 나쁘지 않은 급여였으니, 취업준비생들에겐 나름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다. 모두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찰나 상현이는 반 발 빠르게 조크를 던졌다.      


  “저도 매일 가슴에 사표를 품고 출근합니다.”      


  사회적, 제도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당찬 사명 하나로 눈앞의 연봉보다 사명을 택한 그의 고백은 모두를 파안대소하게 만들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각자의 고단함과 막막함을 표현하는 해탈의 공감이다.      



  

  오랜만에 만난 온라인 모임에서 다들 라이프 스토리를 꺼내 놓는다. 어쩌다 보니 ‘출근길’이 주제다. 다들 겉보기에는 썩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나쁘지 않게 공부해서 대충 서울 중상위권 이상 대학을 나와 혼자서 먹고살 만한, 어디 가서 자신의 직업을 머뭇거리며 말하지는 않아도 될 사회적 존재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절망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서글픈 감정을 다독이는 법에는 몹시 서툴렀다. 그들이라고 관계의 어려움, 일머리의 아쉬움, 미래의 두려움이 왜 없겠는가.       


  심장을 꺼내 놓고 출근한다는 윤선이는 관료주의 특유의 일 떠넘기기와 무책임함에 아연실색했다. 까다로운 공동업무나 비생산적인 일들을 좀체 맡으려 하지 않는 분위기는 조직 성향상 이해한다고 해도, 실수와 잘못 뒤에는 반성 없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에 분통 터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뒤처리 대부분은 막내인 자기에게 과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내 규정 등의 질서는 늘 그렇듯 힘 있는 자들에겐 배제되고, 사소한 이득에는 철면피처럼 달려드는 장면들을 보며 몸서리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입사 선배의 존재 때문이다. 윤선이 입사한 그해 선배는 윗선에선 별 관심을 두지 않던 ‘게릴라 가드닝’ 행사를 성공적으로 해냈었다. 생각보다 많은 지역 주민이 참여했고, 이는 그녀가 일하는 기관의 이미지를 지역민들에게 친근하게 개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업무가 바쁜 와중에도 점심시간 꿀배차 한 잔에 웹툰을 보는 것으로 느긋하게 마음의 평화를 즐기는 선배는 어지간히 불평이 쏟아질 만한 상황도 되레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답답하거나 불의한 일을 보고 미움이나 분노가 생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또 그런 사람이 잘 나가는 걸 보면 시샘도 생기죠. 저도 가끔 그런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내 열정을 추동시키는데 쓰려고 노력해요. 마음 무너지는 데 내 소중한 감정을 소비할 게 아니라 내가 세워가는 가치로 인해 조금 더 나은 상황을 그리는 거죠. 물론 현실적으론 맥 빠지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뒤돌아보면 어느샌가 꽤 많이 발전해 있더라고요. 그 시기만 잘 견디면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요. 그러니 지금 빛이 적게 들어온다 좌절하지 말고, 그 틈이 언젠가 환하게 열릴 것을 기대해 봐요.”      

출처: 용인세브란스병원 마음건강클리닉(원 저자 허락 후 사용)

  

  석균도 그랬다. 대학 시절 여러 공모전에 당선될 만큼 상상력과 창의력이 탁월했던 그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철저하게 주어진 일만 감당하는 것이 고역이었단다. 매일 똑같은 일을, 매일 똑같은 규칙 가운데, 매일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마음으로 했었으니 만 3년을 버틴 것도 용하다 싶긴 하다. 일머리가 뛰어나니 선배들의 예쁨을 받긴 했지만 각종 서류에 파묻혀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업무 특성상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내면에는 더 날갯짓을 해보고자 하는 갈망이 꿈틀댔다.      


  결국 그는 과감히 안전망을 넘어 남들이 이구동성으로 망한다는 카페 창업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물론 단순한 카페 형태는 아니었다. 카페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킬만한 하나의 공간일 뿐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는 히든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암튼 서른하나의 나이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엔 더없이 좋을 것 같다며,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제야 역설적으로 봄볕을 만끽하는 여유로움을 가지게 되었다며 되레 축하해 달란다. 워낙 사교적이고, 아이디어가 좋으니 걱정보다는 기대가 되는 그의 행보다.


  상현이는 주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S대 출신이니 당연히 탄탄대로를 달릴 거라 예상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책을 한 권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전에는 상관없었던 ‘인권, 난민, 구호 사업’ 등의 단어들이 지금은 그를 살아내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동시에 그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싸늘한 사회적 시선과 그보다 더 미흡한 제도들 그리고 관련된 사건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감춰진 이면의 추악한 정치경제적 공작과 인간 본성에 대한 야수성 발견 때문이다.      


  때론 그의 신념을 위협하는 적이 내부에 기생해 있기도 하다. 가령 위의 이슈들을 정치적 소재 혹은 경력으로만 이용해 먹으려는 부류들을 만날 때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인권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하고, 가치를 소비한다. 그럴 때마다 상현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맥이 탁 풀린다. 가끔 경기도 양평까지 라이딩을 하고 오는 게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하지만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투처럼 뛰어다니며 땀 흘린 만큼,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은 어제보다 더 따뜻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도 결코 사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인권에 대한 의식이 점차 바뀌고 있는 게 느껴져요. 좋은 날 올 겁니다. 사표를 품고 출근하다가도 제가 옆에서 버팀목이 돼야 하는 이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샌가 출사표로 마음이 바뀌어 있더라고요.”   

  



  다시 출근길이다.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심장을 꺼내 놓고 영혼 없이 출근할까. 반대로 일터로 향하는 게 마냥 행복한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할까. 왜 일하는지,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봐야겠다. 타인이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속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보석 같은 가치들을 발견하는 출근길이면 좋겠다. 나 역시 지금 선택과 노력에 대해 ‘이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노라’고, ‘다시 선택해도 이 일을 하겠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오늘도 출근하거나 가게 문을 여는 그리고 출근과 창업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평화와 은총이 함께 하기를.  

   * 본문에 나오는 이름과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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