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없어도 함께할 거야'
[M_Book #25] '곁에 없어도 함께할 거야'
작년 말기암 청년 한 명을 떠나보냈었다. 모델대회에 입상할 정도로 미래가 촉망받던 친구였다. 신앙이 없던 그녀였지만 친구를 통해 기도 부탁을 해 왔기에, 만사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리곤 아직 온기가 남아있던 그녀의 손을 잡고서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구했다. 그때 기도해 주어 고맙다며 힘없이 웃는 앙상한 그녀와 그녀의 손을 잡고선 눈물을 거두지 못하는 친구의 대비되는 모습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괜히 속상해지고 말았다. 인생사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며 먼 길을 떠나려는 일은 그를 사랑하는 남은 자들에겐 언제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이다.
작년 독서모임 때 읽었던 <결혼에 울다>가 생각난다. 이 책은 멤버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며 먹먹한 울림을 주었다. 한 전도사가 결혼하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낸다.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아내가 임신한다. 그런데 꿈 같은 기쁨도 잠시,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암 진단으로 인해 삶의 모든 행복이 정지되어 버린다. 아내는 아기를 낳고 싶어하고, 남편은 아내를 살리고 싶어하고…. 실화였음에도 저자의 문체는 내내 덤덤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눈물샘을 자극했고, 끝까지 불안정한 호흡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가올 죽음이 선명했기에 오히려 남은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 헤더 맥매너미는 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여느 가정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은 사랑하는 남편과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아이와 함께 꿈꾸어 왔던 삶이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병이 찾아왔다. 그 병은 곧 그녀의 일상과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유방암 2기 선고. 병마보다 더 두려웠던 건 사랑하는 가족과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을 두고 그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기적이었을까. 절제 수술 후 1년간의 항암치료는 성공적이었고, 의사로부터 의학적으로 암이 사라졌다는 소견까지 듣게 된다.
해피엔딩 결말이었으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겨울밤 따스한 벽난로 앞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장면으로 페이드 아웃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야속하기만 했다. 호전되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었고, 손 쓸 새도 없이 암이 여기저기 전이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이다. 곧 모든 것을 잃게 될 상황이니, 다시 불행이었을까. 어린 딸의 성장을 지켜볼 수도 없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은 지옥이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브리아나의 엄마였다. 딸을 사랑했고, 딸뿐만 아니라 희망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해 그녀는 기적을 선택하리라 마음 먹는다. 그래서 선물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즐기며, 그때마다 떠오른 인사이트를 딸에게 편지로 남기기 시작했다. 지옥 같은 날들을 보내는 삶이 아닌, 남은 시간 동안 매일이 천국인 삶을 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에게는 세상이 혼곤한 가시밭길이 아닌 낭만을 성취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암 환자를 대하는 선입견들을 하나씩 뒤집기 시작한다. 가만히 누워 죽음만 기다리기엔 인생은 온통 의미 있는 일로 가득한 것이다. 물론 암 치료가 쉽지만은 않다. 그녀는 끊임없이 치료 과정의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명랑하고, 낙천적인 태도들 잃지 않으려고 분투한다. 그러한 자신의 의지와 태도는 “언제나 이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너는 네가 믿는 것보다 더 용감하고, 남이 보는 것보다 더 강하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똑똑해.”라는 딸 브라아나를 향한 응원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나는 “몸이 마비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가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 타길 정말 잘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토록 아름다운, 늘 가까이에 있던 보물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아본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불행히도 나는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p.21, 26
“네가 지금 뼈가 부러졌거나 사랑니를 뺐거나 독감에 걸렸다면, 엄마가 지금 당장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따뜻한 수프를 끓여서 먹이고 널 꼭 안아주는 거야.” p.47
“나와 같은 전이암 환자들에게는 훌륭한 조언보다 훨씬 단순한 것이 필요하다. 바로 무조건적인 지지다.” p.145
“아빠와 엄마는 어른이 된 너와 함께 놀러 나가서 술을 마시면 얼마나 어색하고도 재미있을까를 이야기하곤 했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대신 보드카에 레드 불을 섞어 마셔보렴.” p.173
“나를 추모하고 싶다면, 남편이나 아내를 잃은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이웃, 직장 동료를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변에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길 바란다.” p.197
그녀가 남긴 에피소드를 따라가면서 때론 심각해졌다가 또 때론 응원하게 되었다가 어떤 대목에선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자로서 불안에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끝이 정해진 운명과 책의 마지막이 일치할 거란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매정한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진정 그녀의 삶이 아름다웠으며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한 남편과 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다 보니 그렇게 된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독서모임을 할 때마다 자신과 주변에서 경험되어진 삶의 의미를 깊이 나누게 된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의연하고, 담담하게 생을 투신한 이들의 흔적은 언제나 자아성찰로 귀결된다. 직면하긴 싫지만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 앞에서 오늘 내 삶의 발자국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무명인들이, 그러나 그들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앞에서만큼은, 또 소중한 하루를 버티고, 이겨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의 희망은 되어주지 않을까. 독서모임 멤버의 소감으로 마무리한다.
“어린 딸을 위해 매일 자장가를 불러줄 수는 없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딸에게 남긴 20개의 편지를 통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그 곁을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며, 나는 과연 나의 삶 속에서 무엇으로 채워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