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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Book #27-2] '팩트풀니스' part 2

‘직선 본능’과 ‘공포 본능’, ‘크기 본능’

by 시크seek

<팩트풀니스> part 2: ‘직선 본능’과 ‘공포 본능’, ‘크기 본능’

[3장: 직선 본능, The Straight Line Instinct]

인구 증가는 거침없이 직선 그래프를 그리며 계속 이루어질 것인가? 어렸을 때 전 세계 인구가 대략 50억이라고 배웠는데, ‘worldometers’에 실시간 통계에 따르면 현재는 78억 7천만 명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오해의 여지없이 세계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라는 부사가 삽입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구 증가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 요소에 변수가 생기면 이전에 지속된 그래프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유엔이 예상하는 2100년 인구는 약 110억이다. 올해보다 약 32억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때 아동 수는 현재와 비슷한 20억을 예상한다. 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약 32억의 인구 증가는 어디서 이뤄지는 걸까? 단지 수명이 늘어나서 일까? 저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세계 인구의 증가 이유는 지금 아이들이 자라 성인 숫자가 늘어남으로써 도표를 ‘채우기’ 때문이며, 그러한 ‘채움 효과’가 발생하기까지 3대가 걸리고, 3대가 지나면 그 효과는 끝난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의 둔화효과가 머지 않은 미래에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책에서 주장하는 부분 중 우리의 인식을 새로고침하는 흥미로운 부분은 종교와 자녀수의 상관관계다. 어찌 된 영문인지 종교가 없는 이들은 자녀가 적거나 딩크족으로 살아가며 기독교인들은 핵가족, 무슬림들은 자녀가 많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한스 로슬링의 의견은 확고하다. 종교가 아닌 빈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부모들은 종교 유무와 상관없이 평균 2명의 자녀를 두는 반면, 가난한 10%의 가정의 자녀수는 평균 5명에 이른다.


때문에 종종 가난한 국가의 아이들이 ‘단지’ 증가할 때, 인구 과잉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괴담 같은 이야기가 발생하는데, 사실은 정반대다. 극빈층 탈출이 늦어질 때 인구는 ‘단지’ 늘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삶이 나아진 부모는 자녀를 더 적게 낳는 쪽을 선택했기에, 극빈층 사람들이 비참함과 치욕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일정한 추세를 따라가던 직선 그래프의 선이 어느 지점에서 끝났을 때, 보통은 진행 방향 그대로 연장해 상상한다(주식 차트를 보는 많은 투자자들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인구 증가를 비롯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어떤 성장 그래프라도 직선으로 영원히 이어질리 만무하다. 통계가 보여주듯 삶의 질이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기준을 삼았을 때, S자 형태의 그래프 곡선(탈문맹, 예방접종 등), 미끄럼틀 형태의 그래프 곡선(여성 1인당 출생아 수), 낙타 혹 그래프 곡선(충치, 교통사고 사망), 2배 증가 그래프 곡선(이동 거리, 지출, 이산화탄소 배출 등)이 발생한다.


따라서 한스 로슬링은 말한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면 그걸 나타내는 곡선이 어떤 현상인지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곡선이 눈에 보이는 부분 너머로 어떻게 연장될지 안다고 단정할 경우,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 엉터리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과거에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안일한 무지는 조직이나 집단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함께하는 구성원들을 위해 그래프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지도자의 통찰력이 중요한 이유다.


[4장: 공포 본능, The Fear Instinct]

공포 본능만큼 이 책에서 가장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챕터는 없을 것이다. 공포에 직면했을 때 순간적으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물에 빠진 이가 살기 위해, 어스름한 골목길에서 괴한을 만났을 때, 길을 가다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이 위험한 순간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공포는 원시적인 감정이며, 인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정서이기도 하다.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위험한 요소들을 피하거나 극복해 온 것이다. 인류 발전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닌가?


문명이 발전한 현재에도 우리 삶(또는 죽음)에 제법 영향을 줄 것 같은 여러 이슈들이 생산되고 있다. ‘테러, 내전, 경제 불황, 각종 범죄, 기상 이변’ 등 언론은 끊임없이 부정적 코드로 점철된 뉴스들을 내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드문 일이 어쩌면 당신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 부추기며 공포심을 자극한다. 극적인 것에 더욱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주목 필터'를 쓰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일들은 실제로 발생한다. 하지만 드물다. 심지어 어떤 일들은 평생 겪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주목 필터를 통과한 뉴스는 사람들의 공포 본능을 자극하고, 세상을 과도하고 극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책은 2015년 네팔 지진을 예로 든다. 당시 재해로 인해 무려 9000명이 사망했고, 전 세계 언론은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역시나 비슷한 수의 사망자가 생기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설사하다 죽는 아이 역시 9000명인 것이다. 2016년 총 4000만 대의 항공기가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했고, 치명적 사고를 당한 항공기는 10대에 불과하다. 9.11 테러가 촉발한 테러 공포는 미국인의 51%가 14년이 지난 이후에도 내 가족이 테러에 희생될 수 있다고 걱정하지만, 미국 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한 해 평균 3-4만 명, 총기 사고 사망자는 2만 명(총기 자살 24000명 제외)이다. 전설적인 캐나다 흉부외과 의사였던 닥터 노먼 베쑨이 “치명적인 병을 고치지 못해 죽는 사람보다 가난으로 병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이 죽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특정 사건보다 빈곤에서 파생된 요인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중의 심리에서 외면당한다.


한스 로슬링은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음을 얘기한다.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테러(0.05%)도 물론 위험하지만 실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요인보다 지나치게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이러한 일이 공포 본능을 자극시키고, 우리의 관심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위협에 보다 신경 써야 한다. 지금도 주목 필터를 벗어난 많은 사망자들의 소식이 소리 없이 묻히고 있다. 테러보다 실제적인 위험을 안기는 일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저자는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테니,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 결정을 유보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위험한 것을 두려워할 것"을 권면한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는 최선은 위험성을 계산하고, 희미한 가능성을 내미는 두려움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5장: 크기 본능, The Size Instinct]

교회에서 구제 활동을 할 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의견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제반 시스템을 갖추기에 힘쓸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타당해 보이더라도 구성원들을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눈앞에 도울 사람이 천지인 상황에서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내는 것을 포기할 순 없으니 말이다. 저자가 젊은 시절 모잠비크에서 의료 활동을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해마다 1000명이 입원하는 작은 병원에서 열악한 환경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매주 1명이 눈 앞에서 사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는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마치 의학드라마에서 사명감으로 충만한 주인공이 내뱉은 말 같다. 한스 로슬링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아이들도 모두 자신의 책임이니 가능한 한 병원 밖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극빈층 국가에서는 그것이 냉정한 계산법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수의 죽음보다 눈앞에서 당장 죽어가는 한 명에 더 마음 쓴다는 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들이 현장에서 분석한 데이터 수치의 가치는 정말이지 “수치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비율을 왜곡해 사실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건 사람들의 본능이다. 저자는 이를 ‘크기 본능’이라 명명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무엇일까? 병원이나 의료인의 숫자일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보편적이진 않다. 병원이나 의료인이 들어갈 도시나 마을은 한정적이다. 그보다 실제적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의료 교육받은 부모가 집에서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보건에 관한 교육을 하고, 늘 몸과 주변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기초적인 교육보다 큰 병원 하나가 근처에 건립되는 것으로 주민들의 건강이 급격하게 향상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크기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수를 비교하는 것’이다. 중요성을 오판하지 않기 위해 수 하나만 갖고 따지지 않는 것이다. 2016년 유니세프는 무려 420만 명의 아기가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엄청난 숫자다. 비극이다. 그런데 ‘무려’라는 부사는 비교군 하나를 세우면서 무력화된다. 1950년 아기들이 1년 이내 사망한 숫자는 1440만 명이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점점 더 아기들의 죽음에 대해 예방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 더, 2004년 10월 17일, 스웨덴에서 마리 라르손이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같은 날 스웨덴의 요한 베스텔룬드는 사냥을 나갔다가 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스웨덴에서는 처음 발생한 사건이란다. 언론은 후자에 주목했고, 사람들은 곰의 습격에 더 신경을 썼다. 실제로 살인 사건이 곰의 습격보다 1300배나 많이 발생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뉴스를 통해 비율이 왜곡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 사망자는 31명인데 반해 구글 관련 기사는 약 25만 건으로 사망자 1명당 기사가 8천 건 보도되었다. 같은 기간 결핵 사망자는 약 6만 3천 명인데 반해 그와 관련한 뉴스는 고작 사망자 1인당 0.1건이었다. 똑같은 죽음인데 신종플루 사망자가 8만 2천 배 주목을 더 받은 것이다.


책은 총량보다 비율이 유의미함을 견지한다. 앞서 언급한 아기들의 사망 사례를 볼 때 1950년 신생아는 9700만 명이었으니 영아 사망률이 15%, 2016년 신생아는 1억 4100만이었으니 영아 사망률이 3%다. 단지 420만 명이라는 숫자만 내세웠을 때보단 훨씬 세상이 발전하고 있다는 추론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된다. 또 ‘1인당 수치’로 계산할 것을 언급한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중국이나 인도일 것이라는 견해도 이산화탄소 1인당 배출량으로 계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막연하게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통제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가 이것이다. 때문에 크기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통계 수치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1인당 수치이며, 큰 수에 대해선 상대적인 다른 수치들과 항상 비교할 것을 저자는 말한다. 총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분된 수치가 의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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