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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Book #27-4] '팩트풀니스' part 4

‘비난 본능’과 ‘다급함 본능’,‘사실충실성실천하기’

by 시크seek

<팩트풀니스> part 4: ‘비난 본능’과 ‘다급함 본능’, ‘사실충실성 실천하기’


[9장: 비난 본능, The Blame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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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의 여러 본능 중 예시가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챕터다. 가령 결론부터 보자면 "비난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이 나온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아라’라는 저자의 주장엔 단번엔 범죄자들이,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을 찾아라’라는 주장엔 고민할 것도 없이 이국종 교수나 소방대원들이 떠오른다. 언론을 필두로 한 각종 매체들은 원인과 시스템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마녀 사냥’과 ‘영웅 신화’가 대중의 관심을 더 증폭시키고, 그들에게도 양심 버린 이익을 최대로 안겨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당장 비난할 대상부터 찾는다. 어떤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 혹은 당사자가 특정되면 온 커뮤니티는 그를 향한 비난으로 들썩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이름과 얼굴은 희미해지고, 똑같은 잘못은 계속 발생한다. 그저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행했거니, 일 하다 실수했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비난보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경제(사기) 범죄에 무기징역을 판결하고, 재산을 몰수한다면?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장비를 보수하고, 위험수당을 높인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차별없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도록 법안을 입안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시행한다면? 대중들은 조금 더 살기 안전한 나라, 풍요로운 나라의 시스템에 대해 상상한다. 비난보다 비전을 택하는 것이 개인이나 공동체에는 합리적이고, 즐거운 일이다.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 중 한 명은 김연아다. 그녀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팬들은 김연아를 응원하고, 대회 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지만 그녀가 은퇴한 뒤 피겨 스케이팅 환경이 이전보다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피겨 전용 경기장에 대해 정치인들은 공수표만 날렸고, 지금은 다시 관심 밖이 되었다. 대부분의 스포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국종 교수는 또 어떤가? 물론 병원 내부의 사업과 정치를 일반인들이 다 알 순 없지만 한 가지는 인지하고 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말이다. 한때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국종 교수를 띄워주며 난리법석을 떤 것 치고는 응급환자를 살리려는 의료시스템의 유의미한 개선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영웅을 갈망하는 것만 같다. 그러다 잘못되면 또다시 희생양을 찾을 뿐일 테고.


얼마 전 평택항에서 사소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회사의 안일함으로 23세의 젊은 노동자가 숨지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6년에는 19세의 외주업체 직원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작업을 진행하다 열악한 환경의 위험에 노출되어 허망하게 세상을 등졌다. 성범죄 피해 조사를 받던 여중생이 자살한 뉴스는 불과 며칠 전 일이다. 고통을 참지 못한 피해자가 오히려 세상을 등진 것이다. 세월호는 어떻고, 대구 지하철 참사나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는 또 어떤가? 세계적으로 눈을 돌려볼까? 테러와 내전, 종족 분쟁, 환경오염, 난민 문제와 경제 보복 등 지금도 세상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때마다 언론과 대중은 희생양을 찾아 분노의 화살을 겨눌 뿐이다(물론 그 화살은 선택적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조용히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원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는 사이다가 아니더라도 실상은 그렇다. 미얀마 내전 상황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남극 빙하면적의 축소는 비난할 대상을 찾는데 혈안 되기보다 보다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나 의무적인 군 복무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혐오할 하등 이유가 없다. 정의는 희생양이 이용되는 것에서 세워지지 않는다. 비난은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지 못한다. 역사는 끊임없는 개혁의 토대 위에 발전되어 왔다. 그러니 대상을 만들어 비난하기보다 모두가 풍요로울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어딘가에 반드시 길이 있다.


[10장: 다급함 본능, The Urgency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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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부동산은 문외한이라 잘 모른다. 주식이나 코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포모 효과(FoMO, 'Fear of Missing Out')’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 기회를 놓치거나 흐름에서 소외되고, 뒤쳐질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그러니 “지금 아니면 절대 안 돼”라는 판단을 실행한 것이 때론 인생에 엄청난 공포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고점에서 투자해 수년간 땀 흘려 번 돈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투자자가 걸려든 덫이 바로 ‘다급함 본능’이다.


홈쇼핑이나 각종 판매 사이트에 낚이는 전형적인 수법이 무엇인가? “이번만 깜짝 세일! 더 이상 이런 혜택은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 열 분께만 드립니다!”라는 조급함을 부르는 멘트다. 병원 응급실이나 사건 사고 현장이 아닌 이상 다급함 본능이 빛을 발할 때는 많지 않다. 위험이 임박했을 때 불충분한 정보로도 즉각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한다. 인류 역사에서 ‘다급함 본능’은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환경에서 제법 이롭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욱 복잡한 체계를 거쳐야 한다. 가령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중세 시대 땐 마녀 사냥으로 해결했겠지만, 지금은 특정인을 정해놓고 사건을 짜 맞추지 않는다. 주변 CCTV 확인부터 지문 감식, 통장 내역 확인, 국과수 부검, 거짓말 탐지기, 휴대폰 포렌식 검사 등 사건 해결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따른다. 속도를 조금 늦추는 대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저자는 “다급함 본능은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혼란을 초대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주고, 다른 본능을 확대해 억제하기 힘들게 만들고, 분석적 사고를 가로막고, 너무 빨리 결심하도록 유혹하고, 충분한 고민을 거치지 않은 극적인 행동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고집해야 한다. 기후 변화를 걱정한다면 지구 멸망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선동해 겁줄 게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나 국가가 그 양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이는 뒤에 나오는 다섯 가지 사안에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은 다급함이 세계관을 왜곡하는 최악의 주범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다섯 가지 즉 ‘세계적 유행병’, ‘금융 위기’, ‘제3차 세계 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을 얘기한다. 각각 독감이 전쟁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낸다는 사실, 경제 시스템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는 주장,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상황을 막는 데는 엄청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현실, 강력한 국제공동체의 연대를 통한 기후변화 대처, 전 세계에 현실로 다가온 빈곤의 악순환. 이것들은 확실한 객관적 데이터로 접근해 국제적 협력과 재원 조달을 이끌어 내야 한다. 걱정할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문제로 해결의 기미는커녕 더욱 반목이 골이 깊어질 수 있으며, 긍정적인 연합의 다리를 놓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다급함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 예측을 삼가야 한다. 점쟁이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예측의 근거가 없을뿐더러 극적인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처해야 한다. 동시에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다급히 결정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심리가 판단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충분한 시간과 데이터를 갖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시간과 데이터가 더 많이 확보될수록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확률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11장: 사실충실성 실천하기, Factfulness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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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읽었다고 당장 세계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매일 한스 로슬링이 제시한 10가지 본능에 직면하며 살고 있다. 동시에 그것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들은 분명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구심이 드는 내용들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저자가 제시한 주장을 역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인데, 책의 내용에 충실하자면 개인적인 느낌은 지워두고 사실충실성에 기인해 판단할 수 있도록 차분히 변화를 지켜봐야겠다.


아울러 <팩트풀니스>를 읽으며 교회에도 적용해 볼만한 몇 가지 이론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사실충실성으로 가득한 곳'이다! 단순하다. 성경을 사실대로 믿는다면 성경대로 실행하면 될 뿐이다. 분명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겸손하게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 어둠 가운데 불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반면 성경보다 전통과 경제와 정치 논리 등으로 인한 덕스럽지 못한 일들 또한 종종 일어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아마도 '사실충실성'을 가지고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 때, 일부 거센 반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사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시요, 또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등 성경의 진리가 사실임을 믿고 행한다면 그리스도인은 10가지 본능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독서모임에서 의외로 호불호의 관점을 가지고 토론된 것으로 인해 <팩트풀니스>의 독서모임 시간도 기대가 된다. 맹종보다는 다채로운 비평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모든 책에 있어서 '주님의 마음'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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