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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올바른 일이란 생각이 든다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by 시크seek

[M_Book #34]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크리스천 독서모임 <하늘이음> 4기 -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나눔 중

삶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춘의 나를 잠 못 들게 한 노먼 베쑨이 그랬고, 어니스트 섀클턴이나 헬렌 켈러도 그러했다.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는 지금 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영화 <미션>이나 <쉰들러리스트>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삶을 던진 모험은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뿐만이 아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에게 정직하며, 성실하게 하루를 쌓아가는 누군가의 덕택으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인물들은 그 하루하루가 묵직한 울림이 된다.


위에 언급된 인물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생각의 스위치를 바꿔 눌러 통속적인 관념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안정적인 선택을 마다하고, 기꺼이 미지의 광야로 한 발짝 나아간 신념은 점심 메뉴 고르듯 가볍게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든 인류애에 대한 발로든 혹은 여타 다른 이유로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변곡점을 줄만한 사건은 언제나 빛나는 인사이트를 준다.




푸블리우스, 1세기 초대교회 배경을 가진 인물로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회심한 그의 하루를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특별히 스릴러 장르에서와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 헤쳐가야 하는 신앙적 고민들을 한 편의 로드 무비 형식처럼 담아내고 있다. 아침나절에 광장에서 맞닥뜨리는 일들이나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성에 관한 토론, 종들과 함께 하는 파격적인 식사, 자녀들의 교육과 거기에서 파생하는 동성애 문제, 저녁 식사 초대 때 불거진 우상에 바친 고기에 대한 관점, 신뢰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 등은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결을 보여준다.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회심한 푸블리우스의 변화된 태도를 다루고 있다.


푸블리우스와 그의 아내 유니아 또 그 주변의 초대교회 교인들은 오늘날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면서도 도무지 초대교회로 돌아가기에는 요원해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시사점을 던진다. 그들은 삶의 환경이 교리와 부딪힐 때마다 편안한 익숙함보다 새로운 신앙의 기조에 근거해 보다 가치 있는 답을 찾아내며 성장해간다. 갈등이 점화될 때마다 인내와 관용 그리고 견결한 믿음으로 평화가 스며들게 하는 그들의 대화와 태도는 무논리와 몰상식의 퇴락한 영적 전선을 구축하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는 과격한 일부 한국 교회에 조용히 경종을 울린다. 또한 이들 부부는 복음 전도를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요란한 이벤트로서 자신들의 신앙을 각색하지 않는다. 그저 이방인들 눈에 비치는 삶이 이들의 대답이 될 뿐이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푸블리우스의 하루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하루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문화 차이로 하루를 나는 생활 모습이야 다르겠지만 근본적 질문은 동일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가?”이다. 로마의 서슬 퍼런 핍박 속에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그때의 신앙과 온갖 대체 진리의 허울이 영혼을 유린하는 지금 시대의 신앙 둘 다 온전히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메시지 역시 확실하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진리)를 향한 초점을 잃지 않으며,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이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결국 하나님 사랑(가르침)의 인식에서 시작해 이웃 사랑(실천)으로 매듭지어져야 할 문제를 다룬다.


황제 숭배가 마땅했던 네로 황제 군림의 시절, 비교적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사회 계층에서 (로마 입장에서는 사특하기 그지 없는)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고, 교리 그대로 실천하고자 함은 실로 거대하고도 두려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좀 더 농밀한 자극을 추구하는 쾌락과 거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맘몬의 환상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분하고,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어떤 열성 지지자들은 자기들만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파멸적 세뇌로 지나치게 영적인 것을 숭상하거나 지나치게 현세적인 것에 골몰하며 기독교 신비를 퇴색시키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상에서의 풍성한 은혜를 향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임을 천명하고 사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로 진리를 드러내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작은 판형에 본 내용이 불과 50여 페이지니 금방 읽힌다.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질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날까, 왜 크리스천들을 싫어할까, 왜 기독교를 신뢰하지 못할까’. ‘Why’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고민은 현장 그리고 현실에 있었던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우리는 왜 만날 제자화를 부르짖으면서도 푸블리우스처럼 살지 않는가(못하는가)’에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성경을 따라 변화된 그의 삶은 ‘Why’를 던지는 현대 교회의 신자들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초대교회가 뭐 다른 게 있을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예배'의 일환으로 여기고, 우리 주변의 거리로 나가 우리의 '교회 됨'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실천하자고 했다.”는 푸블리우스의 고백이 지금 한국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는 관점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심장에 아로새겨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떻게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흥미롭다.”는 열매가 각 인생에게 아름답게 맺히기를 기대한다. 푸블리우스와 같은 인생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와 같은 하루에 하루가 더해지면 분명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뤄지는 역사가 성취될 것이다. 교회와 세상을, 신앙과 일상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닌 하나로 연합된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지나친 감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만연체로 썼다.


밑줄 친 문장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모임 밖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다른 신들을 믿고 다른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 속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살아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뒤엎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매일매일의 활동 속에서 구별된 삶의 방식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p.9

“우리 집 노예들은 모임에 와 보고 싶어 했다. 특히 그 모임에서는 그들 같은 사람을 환영했고, 그들에게 모임의 일원이 될 기회를 온전히 제공했기 때문이다.” p.13

“나의 새로운 신앙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최선의 방법은 가족과 일과 사회생활이 뒤섞인 아주 전형적인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다.” p.14

“특히 누기오가 유별난 편으로, 해가 뜨면 학교에 가야 하는데도 그런다. 그 아이는 가끔 아침을 거른 채 등굣길에 빵집에서 뭔가를 사들고 간다. …그러나 학교에 늦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기오가 길거리에서 때우는 패스트푸드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p.18

“브리스가가 정식 교육을 받았음을 쿠미아가 알게 되고, 우리의 새로운 신앙이 여자아이를 남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신에게 동등하게 중요한 존재로 본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우리는 쿠미아를 자기 오빠처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p.19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르자면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p.24, 26

“노예들은 과거처럼 먼저 우리의 식사를 도운 다음에 먹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비스듬히 누워 함께 음식을 먹는다. 이는 우리의 주간 친교 모임에서 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거기서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어린 사람이나 노인이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먹는다. …이게 올바른 일이란 생각이 든다네. 또한 그들이 우리가 따르는 도에 더 훌륭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p.36

“사랑이란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는 관점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p.42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는 일, 기회 있는 대로 믿음의 가정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할지니라,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이 아니라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 p.47, 49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떻게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흥미롭다.”p.56

“당신에 대한 평판이 좋더군요. 당신의 이상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늘 찜찜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금전 문제에 관해 당신의 신용을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삽니다. 당신과 더 긴밀한 사업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p.59

“고난을 우리의 성품을 견고하게 다질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난을 더 훌륭하고 완전한 세계에 이르는 단계로 이해해야 한다.” p.62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예배'의 일환으로 여기고, 우리 주변의 거리로 나가 우리의 '교회 됨'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실천하자고 했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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