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의 세계
3M가 모여 100KM가 되는 일에 대하여.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겨우 3미터 정도 앞의 지면으로, 그보다 앞은 알 수 없다.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도, 바람도, 풀도, 그 풀을 먹는 소들도, 구경꾼도, 성원도, 호수도, 소설도, 진실도, 과거도, 기억도, 나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움직인다.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 홋카이도 사로마 호수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며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
제도권 교육이라는 잘 짜여진 포장도로가 끝난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못 잡고 있을 이름 모를 동지들처럼 나 역시도 배회했고 방랑했다. 방랑하는 정신과 열화 되는 육체. 도서관과 집을 그저 왕복하던 어느 날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던 내 몸이 보였다. 육체미의 상실을 넘어 기능성마저 잃어가는 몸. 코로나 19의 여파로 간혹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할 때면 여지없이 저려오는 다리와 가빠지는 호흡. 시간 앞에 지워진 손바닥 굳은살과 근육들. '육체활동에 소홀한 대신 왕성한 정신활동을 했다.'라는 등가교환식 문장이 성립됐다면 그나마 먹히는 장사였을까. 정신활동 역시 지리멸렬했다. 관성에 갇혀 도서관과 집의 기계적인 왕복.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혹여나 눈이 뜨일 때도 일부러 다시 잠을 청해 해가 중천일 때 시작되는 하루.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던 몸을 화장실의 거울이 비추던 여느 날 저녁. '이렇게는 살지 말자.'라는 문장과 '달리기를 해야겠다.'라는 두 문장을 완성했다. 몸이 그릇이면 정신은 그릇에 담기는 물 아니던가. 그릇이 바뀌면 물의 모양도 바뀌니 달리기는 몸과 정신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묘수였다. 하지만 하고 많은 운동 중에서 왜 달리기가 떠오른 걸까. 나라는 인간을 서술할 때 '허약' '저질체력' 같은 단어는 항상 빠지지가 않았다. 스스로 '난 체력이 약하니까.'라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건 쉬웠다. 다만 한번 만들어진 이 인과는 포기하고 주저앉는 일이 반복될수록 우연한 사건이 아닌 법칙이 됐고 부족한 체력은 사실을 넘어 컴플렉스가 됐다.
이 컴플렉스는 군대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눈뜨면 매일 아침 달려야 했고 조교라는 임무의 특성상 선임 후임 중에서 신체 조건과 체력이 평균 이상인 사람들이 많았다. 예체능을 하다 온 사람들도 많았고 시•도대표 국대 상비군 출신인 엘리트들도 많았다. 훈련병 중에서도 마찬가지였기에 달려야 하는 매 순간마다 스스로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그렇게 파악한 내 좌표를 직시해야만 했다.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지만 흐른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뒤. 난 더 이상 달리지 않았다. '늦어서 달릴 바에 오분 일찍 나간다.'라는 철칙을 최대한 지키며 그렇게 달리기를 지워나갔다. 이랬던 나에게 불현듯 떠오른 달리기는 어쩌면 지금까지 쌓아온 이 인과를 부수라는 계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어플 런데이의 도움을 받았다. 책과 어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우리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듯 두 물건이 나의 달리기를 구성하고 있다. 달리기에서 시작해서 창작론 인생관 삶의 태도로 확장되는 하루키의 이야기를 읽고 주저 없이 달리기를 시작했고 런데이로 멈추지 않고 달리는데 도움을 얻고 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처음 달리던 그 폼과 속도로 끝까지 달려보겠다고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힘들다.'라는 생각은 초장부터 머릿속을 휘젓지만 이 생각이 인과로 발전되게 가만두지 않는다. 생각과 감정에 발언권을 주지 않기. 하루키도 그랬다. '힘들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 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이라고. 그렇게 인과를 부수고 눈앞 3M만 보고 달린다. 어플에선 음성이 흘러나온다.'잠시 후 걷기를 시작합니다.' 3 2 1 시간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리기 전까지 다리를 멈추지 않는다. 단 3M를 시간이 멈출 때까지 걷지 않는 것. 걷지 않고 눈앞의 3M만 보면 다리를 구르는 것. 그러다 보면 10KM 달리기 따위의 장기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그 순간만 존재한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멈추라는 심장과 다리의 반란 내지 혁명을 진압하면서 계속 달리자 10KM라는 숫자는 아득함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10KM란 숫자가 존재한다면 3M 3333.333333...... 개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는데 오히려 머리는 고요하다 못해 멍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간은 1년 뒤도 10년 뒤도 아님을. 나에게 달리기는 10km도 100km도 아님을. 그저 오늘 하루요, 3M 그뿐임을. 항상 멀리 보라고 외치던 자기 계발서와 연단에 올라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의 말들이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후회하던 모습들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처럼 여겨졌다. 오히려 그때 그 말과 글들이 아니라 눈앞의 세계를 열렬히 달려본 경험이 아득하게만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일단 이 8주 과정을 다 완주할 수 있을까? 불쑥불쑥 올라오는 '멀리 본다.'라는 허울 뒤에 숨은 불신과 의심 앞에 그저 눈앞의 3M의 세계를 살아보기로 한다. 3M의 세계를 33,333.3333333333번 살다 보니 100KM를 달리게 된 하루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