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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Aug 09. 2021

당신과 내가 또 중간에 포기한 이유

어쩐지 나는, 이상하게 자꾸 중간에 나만 포기하길래 왜 그런가 했지...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생각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 몰입(황농문, 2007) 中 -


  한 때,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나야 후회가 없다는 믿음이 강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피와 땀과 눈물과 투지와 인내심 모두를 다 바치고 나야만, 그래야만 후회가 없을 거라는 강한 믿음. 뭐 다들 그리 말하곤 했었다. 어른들도, 친구들도,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만화책에서도. 사실 그 생각에 그렇게까지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방식에는 조금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특히 그런 생각의 변화가 다시금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건, 며칠 전부터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를 하면서부터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그다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맹목적이고 체력이 넘친다는 강점을 든든한 뒷배 삼아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하듯이 장거리 달리기를 완주해냈지만, 그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내 삶을 좀먹었다. 삶이 '과정'이라는 걸 고려해본다면, 분명히 그랬다. 다만, 나는 내가 그런 식으로 내 삶의 어떤 구간을 갉아먹었다고, 내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같은 방식으로 달려들었다. 즉,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장거리 레이스에 도전했다.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마 무의식 깊은 곳에서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어쩌면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보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후기 정신분석이론 중 가장 유명한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언급된다.




  몸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다. 


  삶의 많은 국면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의외로 단거리레이스는 애당초 대회가 열리질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삶의 형국은, 단거리라기보다는 장거리 레이스였다. 하지만 난 끈기있게 고집했다. 단거리레이스 방식을 고수했다. 단거리선수의 마음으로 장거리 레이스를 하다가 지칠 때마다, 나는 나의 근성부족을 탓했다. 나의 끈기와 인내심, 정신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고, 나태함이 날 실패로 이끌었다고 믿었다. 내 숨이 턱끝까지 차서 머리가 어지러운 이유가, 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산소를 필요로 할만큼 내가 페이스 조절없이 무작정 100m 선수처럼 내달리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니체가 말하는 '큰 이성'인 몸뚱아리를 이끌고 '진짜 달리기'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었는지.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천천히 달리는 일이다. 천천히. 느리게. 걷는 건지 달리는건지 헷갈릴 정도여도 좋다. 달리기 코치라고 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니, 그가 이런 말을 하더라. 숨이 일정수준 이상 헐떡이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오래 멀리 달리려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호흡이 가빠지지 않은 채로 유지하며 달려야 한다. 글 서두에 내가 인용한 황농문 교수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 세상에 단거리 레이스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특히 얻기 어려운 대부분의 가치있는 것들은 그 가치가 클수록 오랜 시간에 걸친 장거리 레이스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답은 꽤 명확하게 나온다. 우리가 더욱 가치있고 중요한 일에 임할수록, 우리는 장거리레이스처럼 이 게임을 대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에 단거리 레이스 같은 것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게다가 내가 10대 때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까지라도 버텨낼 수 있는 체력과 행운이 운좋게 합쳐져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은, 인생에서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더해서 단거리레이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그건 바로, 레이스를 하는 과정이 행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총알이 내 곁을 스쳐지나 내 동료의 살점을 뚫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보낸 시간들을 겪고 나서, 전쟁에 승리한 나라의 군인이었다한들 정신없이 보내왔던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삶은, 명백하게 과정이다. 결승점에 있는 그 어떤 한순간이 아니라, 결승점으로 가는 그 모든 매순간들이 삶이다. 이 매순간들이 다 숨막히고 겨우 견뎌내야 하는 고통으로 점철된다면, 이건 다시 생각해볼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내 리듬과 내 호흡, 내 페이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나만의 리듬에 맞춰야 한다. 내가 무리가 가서는 절대 멀리까지 오래 달릴 수 없다. 이 간단하면서도 무서운 진실을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왜 그리 많이 실패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모든 순간 매 초마다 단거리 선수처럼 졸갑증을 내고 얼른 결승점에 들어가버리고 싶어하며 이 악물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때까지 달렸다. 그러고는 결승점이 보이지도 않는 지점에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내일도, 모레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내년에도 달려야 하는데 나는 마치 심장이 다섯개라도 되는 사람처럼 일단 내 숨이 헐떡여서 넘어가기 전까지 내달린 후에 지쳐서 멈춰서버리곤 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내 패착을 조금씩 이해했다. 달리기를 부상없이, 오랫동안 멀리까지 뛰려면 절대로 조바심을 내서 일정 수준 이상 호흡이 가빠오는 수준까지 달려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운동이 되는건지 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걷는건지 달리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해야 한다. 대신 멈춰서지 말고 계속 한발씩 발을 딛어가며 달리고 있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게 필요했다 내게는. 


  꽤 오랫동안 나는 내 한계의 극단에서 좀 더 날 밀어부쳐올리는 방식을 동경했다. 그러면서 내가 점점 강인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핵심은 내가 지치지 않고 덜 피곤하고 이렇게 매일, 매주, 매달, 매년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 내 한계의 극단에서 두계단 정도 내려온 지점. 내 회복력과 체력이 나의 일정을 뒷받침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질려버리는 대신 즐겨버릴 수 있는 그 지점. 그 지점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찾아내는 것, 그리고 아무리 마음이 조급하고 의욕이 넘쳐흘러도 딱 그 지점에서 멈추고 내일 다시 그 지점까지 노력하고 멈추고 하는 페이스를 절제력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나는 그렇게 장거리 선수가 되어간다. 이제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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