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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Jul 31. 2021

24.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는 법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녀석은 힘을 잃는다

  "탁!!" 죽비가 번개처럼 한 쪽 어깨를 강타했다. 어깨가 아프진 않았지만, 귀가 아팠다. 졸음이 날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는데 졸음이 확 달아났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내가 내 발로 걸어서 배우러 온 거니까. 전직 스님이었던 교수님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다시금 자세를 고쳐 앉고, 열반(?!)의 경지로 진입하기 위해 차분히 눈을 감고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고요함과 잔잔한 내 들숨, 날숨을 느끼며... "탁!!" 아놔... 또 졸았다. 뭐 이런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 당시 나는 답답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지만, 명상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동국대에서 열린 명상지도자과정 수업을 반년 정도 듣고 명상지도자 자격을 얻었다. 물론 결국 지금 내게는 이름뿐인 자격증이 되었지만, 그 때 어린 나이의 나는 그런 것에 열의가 있었다. 경제학도다운 면모는 아니었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아주 열심히 교양과목들을 들었다. 특히 나는 철학과 수업, 종교학과 수업, 미대 수업, 체교과 수업 같은 것들을 좋아했다. 이것저것 듣다보니, 명상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고 그래서 찾아갔던 게 동국대 명상지도자과정. 나는 내 마음의 해방과 열반의 경지를 꿈꾸며 거길 찾아갔다. 명상을 제대로 배워서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고 나 또한 잔잔한 행복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어서 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 뭐랄까. 무협지처럼, 내 몸안의 기를 운용하고 뭐 그런.. 뭐 그런거 있잖아. 그런 나름 그럴싸한 기술(?!), 내공운용(?!) 아 뭐, 그런 게 그래도 조금 있으려나 했지...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냥 냅다 끝없이 긴 시간을 계속 앉아 있기만 할 줄은 몰랐다. 아오... 정말 답답했다. 가만히만 앉아있어라니.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굳이 명상이나 선수행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지켜만 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아니 골백번씩 온갖 생각과 걱정과 후회와 불안들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오해다. 우리가 자각도 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올리는 온갖 잡념들은, 하루에도 수만번씩 우리를 괴롭힌다. 그 괴롭힘이 우리 정신과 몸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늙고 병들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비법이 있다. 그건,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습니다. ...(중략)... 지금이라도 당장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자주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십시오. 낡은 축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들려왔던 사고 유형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를 지켜보라'는 의미입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 자리에 목격자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는 아무런 견해도 갖지 말고 그저 듣기만 하십시오. ...(중략)... 판단을 하거나 비난을 하면 똑같은 목소리가 뒷문을 통해 다시 들어오는 셈입니다. ...(중략)... 자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임에 따라, 그 생각의 저변이나 뒤안에 잇는 더 깊은 곳의 자신을, 그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그 때 당신을 점령하고 있던 생각은 힘을 잃고 재빨리 자리를 피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더이상 거기에 힘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멋대로 날뛰는 생각의 횡포를 막을 수 있게 됩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The Power of Now' 중 -  


  내가 좋아하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저서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해서 힘을 부여한다'는 전제에 대해서 나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좀 더 친숙하게 느끼는 다른 관점들과 비교해볼 수는 있다. 학부시절 불교철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교수님이 그렇게 말했었다. '결국 내 마음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함으로써 마음과 내가 분리되면, 그로 인해 우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위에서 톨레가 아무런 견해도 갖지 말고 그저 듣기만 하라는 이야기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자리에 목격자로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말은 불교적 관점과 매우 유사하다. 후기 정신분석 계파 중 하나인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우리의 무의식에 내재된 대상관계(스스로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미지)가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재현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톨레가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들려왔던 사고 유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지행동치료에서도 인간은 무의식에 핵심신념과 중간신념을 거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동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우리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아야 한다'.




  이런 저런 거장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보니 저건 경험 상 맞는 말 같다. 어떤 마음, 생각, 감정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힘을 빼는 일이다.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고, 그 대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 언젠가 꽤 회자되었던 이야기 중 하나로 '떠올리지마' 실험이 있다. 사실 뭐 실험이라기보다 그냥 테스트인데, 지금 한 번 해보자. 지금부터 당신은 코끼리를 절대 떠올려선 안 된다. 머릿 속 그 어디에도 코끼리만 끼어있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해도 좋다. 시작. 안타깝게도 당신 뇌리 한 켠에는 끊임없이 코끼리의 잔상이 아른거릴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학부 때 심리학 수업에서 듣고 수업 시간 내내 코끼리 생각을 떨치려(?!) 한시간 동안 코끼리 생각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코끼리는 내 머릿 속 어딘가에 슬며시 숨어들어서, 절대 떨쳐지지 않았다. 그 코끼리 녀석이 내 뇌리에서 사라진 건, 수업을 마칠 때까지 코끼리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걸 깨닫고, 결국 포기했을 때였다. 즉, 내가 코끼리를 떨쳐버리겠다는 욕심과 투지를 내려놓자마자, 코끼리는 온데간데 없이 내 뇌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나니, 잊혀진 것이다. 밤에 잠이 안 오는데 다음날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나는 노력한다. '자야 돼.. 자야 돼.. 아 이제 새벽2시라 지금 자도 4시간 밖에 못자는데.. 이젠 자야 해. 제발..' 이러면 절.대. 잠을 자지 못한다. 내 경험 상 아주 일관성있게 그랬다. 자야지, 자야지 하면 못 자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면 그 때 잠든다.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생각으로 해방되고 싶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고 이런 마음 자체를 내려놓아야 한다. 다 내려놓고 힘을 뺀 채 가만히 지켜보면, 판단도 평가도 고민도 없이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우리는 그 마음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20년 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샤먼킹이라는 만화책을 되게 재밌게 읽었더랬다. 거기 보면 주인공(아사쿠라 요우)이 영혼과 교감하고 자신에게 빙의를 시켜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싸우는 '샤먼'으로 나온다. 그런 능력을 가진 '샤먼' 중 왕이 되기 위해 모험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인데, 거기서 주인공이 오랜 수련과 전투를 거듭하다가 나중에 그런 기술을 쓴다. 아무리 강한 힘을 쏟아부은 공격을 하더라도, 그걸 그냥 흘려버리는 기술. 기술명은 사실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해버리는 그런 기술을 체득해서 시전해버린다. 그 기술을 쓸 때, 그냥 들판에서 산들바람이 이마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음미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으로 상대의 무시무시한 파괴적인 공격을 흘려버리는 듯하게 묘사가 된다.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이 그것과 유사한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온갖 번뇌와 걱정과 불안과 다툼과 우울과 무력감, 공포, 적대감, 질투, 열등감, 온갖 마음들을 다 하루에도 수만번씩 경험하며 산다.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을 마치 만화책 '샤먼킹'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모든 걸 내려놓은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며 흘려보내버리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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