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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May 17. 2022

설움, 분노와 돈의 은밀한 관계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아도, 불행을 가져다줄 순 있을 껄?


  설움. 분노. 상처. 모욕. 수치. 이런 것들은 우리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기와 같은 것들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했던 이야기가 있다. 


찬찬히 대화하면서, 가방에서 망치 꺼낼 준비를 하고 있는 이선균(박동훈 역)(출처 : tvN 드라마)


나도 무릎 끓은 적 있어. 뺨도 맞고 욕도 먹고,
그 와중에도 다행이다 싶은 건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무렇지 않은 척 먹을 거 사들고 집으로 갔어.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고, 그래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일도 아니야.
근데 어떤 일이 있어도 식구가 보는데서 그러면 안돼.
식구가 보는데서 그러면 그 땐 죽여도 이상할 게 없어.  


  드라마에서 이선균의 형은 자신이 다니던 대기업에서 해고된 후 계단청소업체를 인수받아서 운영한다. 어떤 빌라 건물에서 계단청소를 혼자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계단을 걸어올라오다가 자기한테 먼지 떨어지게 했다며 지랄을 해댄다. 자신이 누군지 아냐면서, 자기 빌라 짓는 사람이라며, 이 동네 빌라 절반은 자기가 지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동네 빌라에서 당신 청소업체 싹 다 빼버리겠다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서 제대로 사과하라고 한다. 이선균의 형이 무릎을 꿇고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한다.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 선택은, 서글프긴 하나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꽤 고상해보이는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은 넥타이를 메고 기품있게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며 향기좋은 모닝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드라마 속 무릎꿇고 비는 이선균의 형과 전혀 다를 게 없다. 매일 몇번이고 무릎을 꿇는 게 일상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광대처럼 애써 웃고, 울컥해도 참고, 부당해도 삼키고,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면서 웃음을 판다. 삶이란 건, 잔혹하게도 애당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잔혹하고 서글프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무너지니, 퇴근 후 맥주 한잔에 유튜브를 보며 애써 외면해볼 뿐. 


  설움과 수치, 모욕, 상처, 분노와 같은 것들은 우리네 삶 도처에 존재한다. 이런 류의 설움이나 분노 따위의 것들은 대개 우리를 꾸준히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후벼팔때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놓을 때, 그 때가 사실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속 이선균의 말처럼,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일도 아니다. 여기서 '아무일도 아니다'라는 건,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기보다는 그래도 감내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참고 견디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할퀴고 도려낸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되려 내 수치와 상처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분노와 모욕이 훨씬 더 우리를 짓이겨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설움, 수치, 모욕, 분노 따위의 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일어나는걸까. 우리네 삶 도처에 존재하는 이런 것들은 무엇 때문에 자꾸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걸까. 피할 수는 없는걸까. 사실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먹고 사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고, 이건 거의 십중팔구 '돈'과 관련된다. 불편하고 씁쓸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이라는 게 있다. 인간의 욕구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낮은 단계의 욕구가 먼저 나타나고 어느 정도까지 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주된 욕구로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는 첫번째 욕구는 생리학적 욕구이고, 두번째 욕구는 '안전에 대한 욕구'이다. 여기서 안전이란, 내 신체적 안전, 건강, 직업적이고 경제적인 안전망, 내 가족들의 안전까지도 포함된다. 매슬로가 살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또 많이 비슷하다. 사실 매슬로가 주로 초점을 맞춘 '안전'이란, 우리가 야생에서나 느낄법한 생명의 위협이나 신체적 위협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서 '동기와 성격'에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안전욕구가 결핍될 일은 거의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이제 더이상 원시시대 때와 달리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무능력은 곧 생존의 위기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는 돈을 Liquidity라고 부른다. 한글로는 '유동성'이라고들 번역한다. 그래서 경제기사를 보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 유동성 축소' 등 유동성을 껴서 말할 때가 많다. 돈을 '유동성'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음식, 집, 옷, 약,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돈으로는 뭐든 살 수 있다. 드라마 대사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ㅋㅋ 좌우지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생계활동을 해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가장 1차적인 이유는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안전을 바란다. 안전, 특히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길 바란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위해 많은 걸 내어준다. 우선 시간을 준다. 주5일제를 기준으로 보면, 7일 중 5일을 출근하고 2일을 쉬니 70년 중 50년을 돈을 위해 제공하고 남은 20년을 사는 셈이다. 건강도 준다. 아침마다 몸은 쉬어야 살겠다고 아우성치지만, 우리는 휴식 대신 커피를 밀어넣고 출근을 한다. 부아가 치밀어도 참느라 스트레스는 열심히 몸을 갉아먹는다. 자존심도 준다. 위의 드라마 이야기 보면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하튼 참 많은 걸 준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들 마음먹고 지내는 걸 알지만,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는 모두 안다. 돈이 정말 큰 문제라는 걸. 돈이 없으면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감내한다. 설움도, 모욕도, 수치도, 상처도, 분노도. 


  정리해보면, 우리는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설움과 상처를 감내한다. 아니, 감내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설움도 참고 수치스러운 일도 견뎌내곤 한다. 그러니, 돈을 많이 벌고자 노력하고 애쓰는 건 그렇게 속물적인 일도 천박한 일도 아니다. 근래에 돈을 좇는 게 얼마나 천박하고 점잖지 못한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찮게 여러번 들어서, 돈을 우리가 좇는 이유는 어쩌면 매슬로가 2단계 욕구로 제시한 '안전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적어보고 싶었다. 내가,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돈과 관련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돈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불편해서 억압하거나 부인하는 경우를 꽤 많이 본다. 그럴 필요 없다. 돈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협없이 안전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그 마음에서 돈에 대한 욕심과 갈망이 비롯된다면 그 욕망은 그리 천박하거나 못난 게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인간이 돈을 갈구하는 이유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보장된 후에도 절대 사그라들지 않는다. 다른 여러 가지 보상과 유혹들이 다른 단계의 욕구를 활활 타게 하는 장작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면 될 일이다. 너무 번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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