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장장이 휴 May 14. 2022

분노는, 당신의 울음을 지킨다

Feat.『킬미, 힐미』

  우리가 무언가에 화가 나는 것은, 때때로 우리가 너무 슬퍼하거나 끝도 없는 우울에 잠식되는 것을 막아준다. 화는, 무너지려고 하는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나타난 존재다.
  




  공감할 수 있을까. 당신이 분노할 때, 어쩌면 그렇게 븐노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주저앉아버릴지도 모르는 당신을 지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과거 당신이 불같이 화가 났던 그 때, 실은 그게 당신이 너무 깊은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분노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현대 문명과 도덕교과서 앞에서, 이런 말은 금기시되는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 말은, 때때로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




  오늘은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려 한다. (드라마 덕후로서, 처음 해보는 드라마 인용이지만 묘하게 설렌다 후후)


  드라마 '킬미힐미'는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 '차도현'은 학생 시절부터 너무나 착하고 이타적이며 성숙한 인품을 가진 남자다. 게다가 재벌 3세고, 얼굴도 배우 지성하고 똑같이 생겼다. ... 다 가진 놈이다.


오리진을 바라보며 자신을 소개하는 차도현(캬.. 눈빛이..)_ 출처 : MBC드라마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차도현'은 7개의 다중인격 중 하나인 '신세기'로 변한다. 달리 말하면, '신세기'라는 다중인격이 의식을 지배하고 세상으로 나온다. 폭력적이고 거칠고 공격성이 넘치는 캐릭터인 '신세기'는 계속 말썽을 일으키고 사고를 치고, 결정적으로 '차도현'과 짝꿍이어야 마땅할 여자주인공 '오리진'을 좋아한다. 본분을 망각한 것이 아닌ㄱ..


오리진을 바라보는 신세기(출처 : MBC드라마)


어머니와 담소도 나누고(왼쪽), 차도현과 안부도 주고 받는(오른쪽) 다정한 신세기(출처 : MBC드라마)


  [스포일러 주의] 차도현의 다른 인격인 '신세기'는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던 '오리진'을 구하기 위해 생겨난 인격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오리진'을 학대하는 걸 보며 너무나 큰 고통에 몸부림치는 차도현의 마음 속에서 '신세기'가 태어난다. '신세기'는 차도현을 대신해 집에 불을 질러버리고, 이 사건으로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오리진이 학대당하는 일은 없어졌다.


지하실에 갇혀있는 오리진(왼쪽), 아버지에게 오리진을 때리지 말라고 비는 차도현(오른쪽)(출처 : MBC드라마)
학대 받는 오리진을 구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신세기(출처 : MBC드라마)


  드라마에서는 '신세기'가 차도현의 소꿉친구 '오리진'을 구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실, '신세기'는 너무나 큰 슬픔과 고통에 잠식되어 질식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차도현' 자신을 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언젠가 지독한 고난 속에서 우리가 슬픔 대신 느꼈던 분노는, 나 자신이 너무 짙은 어둠에 잠식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한 줄은 '신세기'를 허상이라며 나무라는(?!) 차도현에게 날리는 '신세기'의 일침으로 갈음한다.


차도현에게, 공격성과 폭력성을 가진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말해주는 신세기(출처 : MBC드라마)



...기억나?
그때도 넌, 고통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도망쳤지.
그런 내가 널 대신해서, 그 고통과 맞섰고.
알아들어?
내가 아니었으면 넌!
혼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벌써 죽었을거라고!!
근데 누가 누구에게 허상이라고 하는 거야, 지금!!!

  

























작가의 이전글 타고났지만, 빛나지 못한 우리의 재능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