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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Feb 03. 2022

25. 나를 애도하면, 삶이 시작된다

불행을 이겨내고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것

  왜 우리가 책이나 매체에서 접하는 뛰어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할까. 왜 허구한 날 '인간은 자기자신을 모른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했을까. 소크라테스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게 아니다. 모든 시대, 너무 많은 위인들이 그 이야길 표현만 바꿔가며 말했다. 나는 중학생 때 도덕시간을 되게 싫어했다. 맨날 책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해댔기 때문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든지(난 언제나 날 먼저 생각했다...), 항상 감사하라든지(세상 걱정만 많던 나는 도대체 뭘 감사하란건지 알수가 없었다 ㅋㅋ), 니 스스로를 알라든지(내가 난데 나에 대해 뭘 모른단건지 어이가 없었다;; 난 무려 어엿한 14살이었다;;) 뭐 이런 이야기만 잔뜩 적혀있으니 재미가 있을 턱이 없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했었다. 내가 과외를 받아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알바비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대학시절 내내 과외를 하며 지냈다. 한 번은 운동선수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공부를 뒤늦게 시작한 아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어느 정도로 수학에 대한 기초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ㅋㅋ 같은 반 친구들보다 자기가 얼마나 수학의 알파벳조차 못하는 상태인지를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을거라 짐작한다. 이 아이는 자기가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걸 명확하게 받아들인 후부터, 성적이 쭉쭉 올랐다. 왜냐하면, 그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교실에 앉아서 다른 친구들 눈치를 보느라 소진되어버리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자기도 그거 다 안다며 아는 척 연기하느라 써버리던 에너지를 필요한 공부에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씩 진정으로 단단해지기 시작한 시기는 내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위축되고 두려워하고 경직된다는 걸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날부터였다. 나 또한 내가 과외를 해줬던 그 아이처럼,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고 똑바로 쳐다본 후에야 조금씩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마음 깊이 애도하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 현인도 신도 아닌 당신과 내가 일상 속에서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행복하게 지내려면, 어떤 마음과 어떤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걸까. 아니, 행복한 놈(?!)들은 우리랑 어떻게 다를까. 진정으로 행복한 놈(?!)은 우리 주위 사람들 중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자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ㅋㅋ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확신과 열의와 기쁨과 고요함을 곁에 둘 수 있어야 한다. 뒤집어서 말하면, 당신이나 내가 행복하다면, 아마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요함과 기쁨과 고양됨과 기쁨을 느끼며 오늘이라는 유일무이한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멋진 일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온갖 것들이 전부 부산스럽고 산만하고 시끄럽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은 나의 더 자고 싶은 갈망과 한차례 엎치락 뒤치락하고, 밥은 바쁘긴한데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20대 때야 무신경하겠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 쉰이 넘어가면 아침식사, 제 때 챙기는 끼니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의무가 되어간다. 친구관계와 직장 내 인간관계, 취업준비나 학점 관리, 연애 등 온갖 것들이 당신과 내 마음을 부산스럽게 한다. '속시끄럽다'는 말은 오늘도 바삐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고로, 행복과 좀 가까울 것 같은 열의, 확신, 기쁨, 고요, 고양됨 같은 단어들은 나나 당신과 같은 일반인(?!)에겐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ㅋㅋ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냐. 라고 말하고 싶을수도 있다. 뭐 그런 불쌍한 스스로를 우리가 애도하면 그걸로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고요함과 기쁨이 찾아온단 이야기냐. 라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ㅋㅋ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애도하는 건 분명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물렁해보이는 우리가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의외로 매섭고 냉혈한같은 채찍질이기 때문이다! 이악물고 무언가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우리 중 누군가는 눈물을 삼켜가며 참고 견디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자리에 주저앉아 냉소적인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사회와 타인을 원망하며 경멸하는 눈초리로 숨죽이고 서있기도 하다. 이 다양한 사람들의 놀랍도록 똑같은 공통점은, 지금의 스스로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내가 꿈꾸고 사회가 인정하는 존재가 되어보기 위해, 부모님과 내 배우자, 친구들이 인정해줄 무언가가 되어보기 위해, 혹은 그러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찍고 손가락질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한다. 뭐 정답은 없으니, 좋다 이거다. 근데, 그래서 행복한가. 


  아까 말했듯이, 우리가 우리를 애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불행을 저절로 극복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주요 상담이론인 인간중심상담이론에서는 '경험과 자기의 일치'라고 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애도(수용)하는 일을 중요한 상담원리로 생각하고, 정신분석에서도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해서 우리의 무의식적 욕구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일을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애도(수용)한다고 해서, 삶의 고통과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악물고 부정하고 혐오하며 나는 지금의 나 같은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고 악쓰느라 허비하게 되는 우리의 감정과 마음과 인생을 더이상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건, 우리가 어떤 별 하나를 마음 속에 품고서, 그 빛을 따라 한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해주는 일이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애도하는 일은 우리가 행복함과 기쁨과 고요함과 고양됨을 곁에 둘 수 있도록 하는 초석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온갖 것들에 사로잡혀서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소진당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용서하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나를 이끌고 한걸음씩 빛을 따라 진정한 한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Kübler-Ross(1969)는 죽음에 대한 애도를 5단계로 정리했다. 부정, 분노, 흥정, 우울, 수용이 그 5단계인데, 이에 대한 여러 비판과 논의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애도와 관련해 가장 상대적으로 논의가 적은 부분이 '수용'이다. 결국 애도는 여러 과정을 거쳐 '수용'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할 일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용서해주는 '수용'이다. 지금의 절망적이고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체념하고 포기하자는 뜻이 절대 아님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주저앉을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를 애도하는 일이 주저앉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법륜스님이 자신의 저서 '법륜스님의 행복'에서 한 말이 있다. 


두 발은 현실에 딱 딛고 서서 두 눈은 이상을 향해서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꿈꾸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건,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따라 사는 일은 그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그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두 발을 현실에 딛고 서는 일'이다. 두 발로 땅을 단단하게 딛지 않은 채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 지금의 우리를 애도하고, 그 애도가 끝난 후에 찬찬히 우리가 바라볼 곳을 정해서 나아가도 늦지 않다. 아니, 그게 가장 효과적인 길이자, 우리가 우리 삶의 의미를 따라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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