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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Apr 27. 2022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의 세가지 의미

너는 널 모르고, 나는 날 모르고,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아, 나도 알아.


  이해가 잘 안 갔다. 대학원에 입학한 첫 학기, 수업 교재들에 첫머리에는 온통 그런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 말들이 하도 많이 적혀있어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속으로 하던 말이 있다.

'아, 나도 알아.'


  물론, '아...알고 봤더니 나는 날 잘 모르더라. 나는 어리석었다.' 이런 류의 고해성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한 번쯤은 짚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책들마다 저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도, 앞으로 계속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강조도 할 일이 종종 생길 거 같기도 하고.


  상담은, 분명히 나와 당신이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아는 일이다. 여기서 '안다'는 말을 좀 더 들여다보자. 안다는 건, 세 가지가 다 이루어질 때 쓰는 말이다.


1. 지금 나타나는 양상을 지각하는 것.
2. 왜 그런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는 것.
3. 1번과 2번을 수용하는 것.


  신체반응을 '아는 것'으로 예를 한 번 들어보자.(신체반응 자각을 예로 든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26


1. 지금 나타나는 양상을 지각하는 것


  당신에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꽤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서로 연락이 뜸해져서는 점점 연락을 안 하게 되었다. 벌써 연락을 서로 안 한지 5,6년이 넘었다. 그런데 어제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에, 갑자기 당신의 폰이 울린다. 누군가 해서 봤더니 그 5,6년 동안 연락이 서로 아예 되지 않던 친구다. 당신은 빤히 폰을 바라본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가 왜 오는거지?', '무슨말을 하지?'


  당신이 스스로를 잘 '안다'면, 당신은 어쩌면 당신의 신체적 변화를 명료하게 지각할 것이다. 묘하게 빨라지는 심장박동,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힘이 들어가는, 어쩌면 아주 약간은 경직되는 것 같은 어깨와 목의 근육, 옅게 올라가는 체온 혹은 열감, 살짝 흐트러지는지 빨라지는지 모를 호흡의 변화까지.


  이게 1. 지금 나타나는 양상을 지각하는 것이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서는 코웃음을 친다. '아니, 그걸 왜 몰라. 내 몸인데.'라고. 그런데 막상 온갖 크고 작은 자극들 앞에서 우리는 가장 쉬운 난이도인 '신체반응'에 대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알아차릴 정신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저 위의 예에서, 나와 당신은 아마 밀려드는 불안감, 걱정, 경계심, 온갖 생각들에 잠식된 채 그렇게 그 순간을 흘려보낸다. 그런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루를, 한달을, 1년을, 싦을 그렇게 흘려보내기도 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2. 왜 그런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는 것


  위의 예로 돌아가서, 만약 당신이 신체반응을 지각하고, 왜 지금 이런 신체변화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고 그것까지 알아차린다면 이건 2. 왜 그런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친구와 당신이 서로 연락이 뜸해진 이유가 당신이 느끼기에는 친구가 당신과 더이상 친하게 지내길 반복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연락을 안 받거나, 일주일 뒤에 연락하거나, 퉁명스럽거나 등)을 보여주어서일수도 있겠다. 혹은, 묘하게 반가우면서도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로 통화를 하게 될 게 뻔해서 그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낯뜨겁고 피하고 싶어져서일수도 있다. 그냥 오랜만에 연락하는건데 한밤중에 무례하게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무례하게 느껴져서일수도 있다.


  이 두번째 의미의 '아는 일'은 첫번째 의미의 아는 일을 성공적으로 했을 때, 다음단계로써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한층 더 깊게 들어가는 일이므로, 첫번째 의미의 '아는 일'보다는 좀 더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 당신이 당신을 이해하고, 더 순간순간 원하는 대로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3. 1번과 2번을 수용하는 것


  첫번째 의미의 '아는 일'과 두번째 의미의 '아는 일'을 통해 알아차린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게 세번째 의미의 '아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의 여러 신체반응이나 감정, 행동, 생각 등을 잘 알아차리고 그 이유까지 잘 이해했다고 하자. 이것만으로 당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힘있는 시간들로 삶을 채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온전하게 감정이나 생각들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세번째 의미의 '아는 일' 또한 체득해야 한다. 이 받아들이는 '앎'은 수용이자 용서이자 판단하지 않고 내려놓는 일이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53

  



  내가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눈을 흘기던 수많은 책 속의 '스스로를 아는 것'들은 거진 다 이 세가지 의미를 다 충족시키는 '앎'이었다. 물론 저 세가지 중에 첫번째 의미의 '아는 일'만 잘 해내더라도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워지고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리라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조금씩 더 고양되어가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존재라 믿는다. 분명, 언젠가는 나도 당신도 스스로를 온전히 '아는' 사람에 조금씩 가까워져가리라 믿는다. 조금씩 연습하고 노력해서,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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