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장장이 휴 May 10. 2022

몸이 아픈 아빠의 버럭질은 SOS다

저번달에 태어난 갓난아기와 세상 모든 아빠들의 공통점은?

  아침 8시 반. 엄마한테서 카톡이 와있다. 열어보니, 아빠랑 같이 채혈하러 일찍 병원에 가있단다. 며느리 부담스러울까봐 한사코 우리집에서는 못 자겠다고 손사래치는 엄마아빠 묵으시라고 병원 바로 옆 숙소를 잡아드렸었다. 걸어서 5분이니 잠시 채혈하고 다시 숙소에서 좀 쉬시면 될텐데. 11시반이 진료시간이다. 3시간이 남았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나와버리셨단다. 괜히 슬며시 열이 올라온다. 몸도 안 좋으신데, 병원에서 3시간을 서성이고 계실 생각하니 묘한 짜증이 올라온다. 아빠도 '체크아웃 하지 말 걸 그랬나' 이러셨댄다. '엄마,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데스크에 609호에 묵으신 어르신들 가족인데 혹시 아직 룸정비 안 들어갔으면 리체크인 해서 방에 잠깐만 묵으실 수 없냐고 양해를 구해봤다. 확인해보고 연락준단다.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리체크인 해줄수도 있을 거 같다 이야기하니, 아빠가 다시 오르막길 걷기가 힘들다고 그냥 병원에 있겠다고 한단다. 보아하니 아빠가 버럭질은 한 거 같은 눈치다. '아, 그럼 알았어요 ~ '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열받는다. 그 사이에 말이 바뀐 것 같은 것도, 엄마한테 버럭질한 것 같은 눈치도, 묘하게 답답한 병원 건물에서 엄마 아빠가 2시간 넘게 서성이고 있을 것도, 열받는다. 숙소에는 전화를 걸어서 죄송하다고 리체크인 확인안해주셔도 된다고 사과를 했다. 


  아빠는 20대 초반에 심장수술을 받았다. 80년대 그 옛날, 의료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을 때 심장을 멈춰놓고 기계가 대신 심장을 뛰게 해가며 가슴을 열고 수술을 받았다. 그 당시 연인이던 엄마에게 아무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엄마를 뻥 차버린 아빠는, 그렇게 혼자 수술실에 들어갔다. 혹시나 사랑하는 연인이 자기 옆에서 병수발을 들게 될까봐, 아니면 혹시라도 자신의 죽음을 엄마가 혼자 남아 감당해야 할까봐,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아니 꽤 높은 확률로 죽을 수 있는' 수술실에 연인인 엄마를 곁에 두지 않고서 들어가길 선택했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 수술들어가기 전에 곁에서 손을 잡고 있어다오, 라는 청을 하는 대신 외로움 속에서 엄마 몫까지 혼자 떨기를 택한 것이다. 


  나는 택하지 못했을 선택이었다. 나는 아마 내가 높은 확률로 죽거나 회복될 수 없는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면, 마지막 순간에 곁에서 손 꼭 잡고 아내가 있어주길 바랄 것 같다. 그 끝없이 두렵고 무겁고 고독한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이기적인 부탁을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조금은 눈물겹고 조금은 지독한 배려와 애정을 가졌던 아빠는,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엄마와 결혼해서 나와 동생을 낳고 평생을 살고 있다.


  5년 전쯤 아빠는 조금씩 연로해가면서 심장이 안 좋아졌고 지금 오래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그 아량이 넓던 아빠는, 지금은 마치 그 때 자신이 선택한 외로움을 토로라도 하는 듯, 이따금씩 엄마를 아주 못살게 굴곤 한다. 본인은 절대 인정할 수 없겠지만, 가끔 보면 6살배기 애처럼 군다.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 아빠는, 밤에 엄마 몰래 야식을 빼먹는다. 그러고는 우리가 막 뭐라 뭐라 하면, 엄마가 사놔서 그렇단다. 진료실에서 미처 아픈 증상을 이야기 못하고 나온 게 있으면, 꼭 나오고 나서 '아, 거기도 안 좋은데...' 그런다. 엄마가 아빠한테 그걸 잘 기억을 해놓든지 했어야지, 하고 나무라면, 엄마한테 저번에 집에서 거기가 안 좋아서 증상 이야기했었잖아, 이러고 괜시리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오늘 아침도 그렇다. 나는 아빠가 병원가는 오르막길이 숨이 가빠져서 힘겨우신 것도, 아픈 몸이 애를 써도 잘 낫지 않아서 지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엄마랑 투닥거리지 않길 바란다. 엄마도 옆에서 힘들테니까. 아픈 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많이 마음이 어려울테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전화를 뚝 끊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런 마음이 든다. 아빠가, 외롭겠구나. 엄마를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차버린 채 혼자 심장을 멈추고서 해야 하는 수술을 받으러 갈 때보다, 어쩌면 더 많이 외로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우리 가족은 아빠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 아침에 오르막을 다시 걸으며 호흡이 힘들어질 아빠의 고역을 아빠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기준에서 엄마아빠가 병원에서 시간 보내는게 답답하고 어쩌고 자시고가 아니라, 내 관점 말고 아빠의 입장이 되어서 상황을 보고 어떤 게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울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은거다. 아... 아빠가, 외롭겠다.


  칼 로저스라는 심리학자가 있다. 그는 인간중심치료라는 상담이론을 창시했다. 그 이론의 핵심 중 하나가 공감이다. 로저스는 깊은 공감이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본질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자도 내담자와 만날 때, 내담자의 입장에 서서 내담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틀을 가지고 똑같이 그가 느끼는 그대로 세상과 상황을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공감이다. 이건, 엄청난 노력과 깊은 이해와 애정과 정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적당히 떨어져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 그렇겠구나 하고 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음악이나 영화, 소설 등 예술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또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아, 나만 이런 못난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저 인물도 나랑 비슷하구나.' 이런 공감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우리가 우리를 수용해줄 수 있는 탄탄한 근거가 되어준다. 아빠가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또 다시 정주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오르면서, '내가 어쩌면 넷플릭스에 올라와있는 드라마보다 아빠를 더 위로해주진 못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곁에 있는 아들들이, 아내가 너무 지치고 이제는 정말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알아주려고 애를 쓰는 거 같지 않아서,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가끔 버럭질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이해하는 한, 세상의 (극소수를 제외한)모든 아빠들은 버럭질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몸이 아프면 더 자주 버럭질을 한다. 왜냐하면, 아빠라는 사람들은 대개 화내는 것 말고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놀랐을 때도, 힘들 때도, 걱정이 될 때도, 불안할 때도, 우울할 때도 항상 화를 낸다. 거꾸로 보면, 아빠들이 화를 낼 때 그건 자신이 지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이야기고,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고, 힘들고 외롭다는 이야기다. 아프면, 힘들 일도 외로울 일도 불안할 일도 걱정에 압도되는 일도 많아진다. 근데 이런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모두 '버럭질'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아빠들은 그거 말곤 표현하는 법을 모르니까. 그러니 아픈 아빠들의 버럭질은, 사실 많이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서럽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기들은 무조건 운다. 태어나서 할 줄 아는 표현방식이라곤 아직 우는 것밖에 없으니까. 배가 고파도 울고, 추워도 울고, 배가 아파도 울고, 똥을 싸서 엉덩이 피부가 아파도 울고, 감기에 걸려 열이 나도 울고, 아무도 없어서 무서워도 울고,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당황해도 운다. 모든 상황과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은 우는 것. 세상 모든 아빠들은, 아기다. 


  SOS가 풀네임을 줄인 약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건 오해다. Save Our Souls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제일 많은데, SOS는 약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저 잘못 알려진 풀네임이 좋다. 몸이 아픈,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 힘들고 외롭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은 아빠들의 버럭질은, 실은 내 영혼을 구해달라는 이야기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간청이다. 그들이 할 줄 아는 유일한 모스부호 신호다. 


  나중에 병원가면, 아빠한테 짜증 안 내야겠다. 아빠랑 같은 거 시켜서 나도 무염죽 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단기 역동적(정신분석) 심리치료의 세 가지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