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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May 11. 2022

좋아서 하는데, 왜이리 억지로 하는 기분이지

원해서 하는 일을 해야하는 일로 변모시키는 습성

  아마 나는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고 살다가도, 어느새 또 중독될만한 무언가를 목이 타게 찾고 있듯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려고 하듯이. 폭식장애와 야식으로 잦은 구토와 복통에 시달리던 사람이 어느새 또 새벽 2시에 먹을 것을 갈망하듯이. 오래 전부터,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 갈망하고 있었다. 꾸역꾸역 참고 견디는 상황을.


  나는, 원하고 즐거워서 하는 일조차 어느새 해야해서 하는 일처럼 만들어버리는 습성이 있다. 지독하게 몸에 배어버려서, 안 그러려고 정신차려도 한달만 지나면 다시 또 그러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서는 남근기(3~6세)에 인간의 초자아가 발달한다고 이야기한다.


※ 초자아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인간 성격구조의 한 구성체다. 쉽게 말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도덕선생님같은거다. 이건 해야 해, 이건 이러면 안 돼.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인간이 동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사회로부터 강요받는 경험은 항문기(18개월 ~ 3세) 때 일어난다. 항문기는 아이가 처음 대소변을 가리는 법을 배우는 시기다. 대소변을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방식으로만 하거나 참아내야 하는 경험은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와 문화에서 요구하는 에티켓이 우리가 동물로서 가지는 욕구(배설욕)보다 우위를 점하는 경험이다. 짐작하건대, 나한테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진 건 이때가 처음이다.


  해야하는 일을 처음으로 맞닥뜨린 후, 나는 점점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를 다니기 싫어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칭얼거리며 물었던 기억도 어렴풋하게 난다. 8살이 된 후 초중고 12년을 거치면서, 나는 내가 해야하는 의무를 억지로 참고 견디며 해내는 일상에 완전히 능숙해졌다. 타성에 젖는다, 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나는 완벽하게 타성에 젖어들었고 익숙해졌다.


  재미가 없어도 책상에 앉아서 칠판을 보며 견디는 법을 배웠고, 졸려도 참는 법을 배웠다. 개근상이라는 걸 줬는데, 나는 항상 개근이었다. 그 개근상은, 내가 별로 내키지 않음에도 꾸역꾸역 하루도 쉬지 않고 참고 견뎌가며 시키는대로 잘 했음을 치하하는 상이었다.

  



  그렇게 난 성인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꾸역꾸역 참아내야 하는 하루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하루들이 1년 내내 주어졌다.(대학교 수업은... 사실 빼먹는다고 누가 눈치를 안 준다 허허) 12년 동안 해야 하는 것들을 꾸역꾸역 해내며 하루를 보내는 법을 익힌 내겐 낯선 일이었다. 온전히 자유로운 하루라니! 너무나 기쁘고 좋았지만, 분명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적응해나갔다. 자유롭게 24시간을 내가 원하는 일들로 채워나갈 수 있는 나날들에. 하지만, 어느샌가 정신차려보면 내가 나를 스스로 규율하며 옥죄고 있었다. 나는 타이트한 스케줄링, 여러 가지 규칙들을 세워서 해야하는 일들로 내 하루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 자유로워졌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걸까. 그 무엇이든, 어느샌가 나는 10대 내내 그래왔듯이 나도 모르게 참고 견디고 있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마치 해야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내며 견디던 초등학생 아이처럼 그러고 있었다. 나는, 하고싶은 일을 시작하고서도 해야하는 일을 '해야 해서' 하는 이상한 짓을 어느샌가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 비해서 꽤나 얽매이는 걸 싫어한다. 지켜야 하는 규율보다 자유로운 걸 좋아한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내심 그냥 해야 하는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내가 원하는 일을 진취적으로 하는 상황보다 편안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중간에 멈춰서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날 매료시켰다. 그래서 나는 자격증이나 학교 커리큘럼을 밟는 걸 좋아했다. 누군가가 짜놓은 수련과정대로 방향성에 대한 고민없이 해나가면 되는 게 마음이 그렇게 편안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실을 쌓는 대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는 학위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게 좋았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에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참 많이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난 정말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적어도 그 해야 하는 일들을 할 때만큼은.


  초중고 개근상을 받았던 나는, 어느새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고 마음 편안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하고싶어 시작한 일도 해야 하는 일로 변모시키는 연금술사가 되어있었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지 고민이 되기도 하고 지금 이대로 10년을 더 버티듯이 사는 게 맞는지 걱정도 되지만. 그냥 다니던 회사에 그대로 다니고, 지금 당장 따야하는 학점을 따고, 일단 지금 하기로 한 시험을 준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눈빛을 하고서 지금 당장 닥친 일을 일단 해야한다는 말을 한다. 그럴 때 나는 어쩌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회와 문화는 어쩌면 우리의 이러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미끼로 우리의 시간과 건강과 감정에서 기름을 뽑아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먼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돌이켜보면, 해야하는 일들로 점철되었던 답답하지만 불안할 일 없는 시간들은 나중에 꽤나 후회로 남는다. 막연하고 불안하고 한치 앞을 모르는 안개 속 같더라도,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 스스로 결정을 내려가며 한걸음씩 내딛어간 시간들이 중요하다. 그 시간들만이 오랜 시간 후에 돌아보더라도 우리를 웃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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