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서울미술관 기획전 - 요시다 유니
2023년 11월 22일 수요일 8시 55분, 매우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다.
롱블랙, 올해 들어 가장 유익한 소비를 꼽으라면 단연코 '롱블랙' 구독을 손에 꼽는다. 그 이유는 하루에 비록 하나의 기사이지만 내게는 너무나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인물에 대한 인터뷰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을 테지만 내가 바라보기에는 롱블랙의 스탭들의 문장력과 대중적이면서 전문가들의 관점을 보기 좋게 버무리는 능력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 롱블랙의 기사가 다름아닌 '요시다 유니'의 인터뷰였다. 디자이너, 아티스트도 아닌 아트디렉터라는 직함으로 스스로 정의하고 있는 요시다 유니의 인터뷰는 강한 호기심을 불러 왔다. 아티클에 소개된 몇 점의 작품을 보았는데 순간적으로 놓치지 말하야 할 작품이라는 감이 왔다. 이런 순간을 우리는 '촉이 왔다"라고 말한다. 적어도 오늘이 그랬다.
바나나를 처음 본 순간, 요시모토 바나나를 떠올렸지만 이내 나에게 웃음을 보내고 말았다. 바나나라고는 빙그레에서 나오는 단지통 바나나 맛 우유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라는 브랜드 이외에 떠오르는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 까지가 다 였으니까. 조금 멀리서 바라 보았을 때에는 페인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착각, 그러니까 착시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내 눈을 의심 했다. 그리고 이내 빠져들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떠올리면서 그의 작업 과정을 나만의 추리를 통해 추론을 하고 있었다.
사과, Apple... 내게는 참 많은 인연이 있는 대상이다. 앞서 언급한 바나나처럼 또 다른 상상을 하면서 그의 작업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풀리지 않는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는 상큼해지기 시작했다. 비주얼 아티스트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뛰어난 비주얼, 그리고 강렬한 색감, 작품의 구조적 밸런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업는, 그러니까 덜어내야 할 부분을 모두 덜어내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요시다 유니'의 작품은 꽤 많은 분량이었다. 전시회를 보면서 그의 작품이 언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가 광고회사를 떠나서 혼자서 작업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척 궁금해졌다. 왜 이런 지점이 궁금하냐면 나 또한 다시 홀로서기를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 어쩌면 밥을 못 먹고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실제로 그러한 상황을 인내심으로 견디는 예술가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돌아 보면서 어쩌면 타고난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천재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시다 유니'의 노트, 작품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그의 노트 그리고 확장된 그의 샘플들을 보면서 예술가이든 아니든 어떤 아이디어를 끄적이면 그것은 반드시 확장된 형태로 갖추어야 다음 스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시에 나의 노트는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꽂힌 내 노트를 돌아 보면서 한 때이지만 열심히도 적고 적었던 그 시기가 있었음에 약간의 안도감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 나를 돌아 보았다.
'요시다 유니'가 말하는 착시의 매력에 대한 짧은 문장이다. 착시로 만들어내는 일상의 환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의 미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맞는 말이다. 그의 작품을 1시간 정도 돌아 보면서 느낀 것은 색감도 강렬했고 구도의 균형감도 좋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사물을 살짝 비틀어 놓고 '낯설고도 친숙한' 지점을 찾아내고 거기에 독창적인 표현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그는 다양한 관점,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가진 디렉터라는 생각에 미쳤다. 그러니까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텍터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여러 스텝들과 일하면서 빼어난 결과물을 도출하기 때문에 더 더욱이나 연출이나 감독에 가까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런 솔직함에 반했다. 대부분 나는 이러 저러한 디자이너라고 강하게 어필하려고 드는 요즘에 이런 솔직함을 가진, 자신을 다른 예술가에 비해 다른 위치로 포지셔닝하는 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흔한 카드를 이렇게 디자인 해 놓기는 쉽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이건 또 다른 착각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요시다 유니'는 착시가 아니라 대중을 착각하게 만드는, 그의 판타지로 이끄는 힘이 강렬한 디렉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채로움도 있지만 평소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물을 착각하게 만드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조커,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영화 <조커>는 아직 보질 못했지만 <배트맨>의 조커를 기억하자면, 그는 광기러인 천재이자 아픔이 그의 천재성을 뒤틀어 버린 그러한 캐릭터로 기억한다. 나라면 조커 카드를 이렇게 바꾸어 볼 생각이나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디테일한 그림자까지 살려 놓고 다시 이를 사진으로 담아서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작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이와이 슌지'의 말처럼, 그가 해석하는 아름다움은 난해함으로 바뀐다. 그러나 '요시다 유니'의 작품은 매우 직관적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섬광같은 찰나의 순간에 그의 작품은 우리의 뇌를 그의 세계관으로 유도하고 동시에 설득을 시켜 버린다. 어쩌면 압도 당한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몇 번 끄적이다가 내 글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멈추었다가 요즘들어 내년의 새로운 나의 행보를 위해서 고민을 하다 보니까 건강을 위해 쉬어가는 이 시간에 내 생각의 조각들을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꾸준히 적어 보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전시회라는 단서를 빌어 게으른 나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요시다 유니'의 작품전에 대한 단상을 기록해 보았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결단이다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그의 작품이 세상에 선보이기 이전에 그는 수 많은 노트에 기록을 하며 저장을 해왔을 것이다. 그 이후 실행을 위해서 작은 단위로 쪼개고 쪼개어 실천하는 하루를 살지 않았을까?
나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나 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오늘 밤 깊은 단 잠을 자다가도 심장이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운명이든 숙명이든 알 수는 없는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서울미술관 요시다 유니 작품전을 보면서 좀 더 열심히 살되 막연한 생각을 지니지 말고 노트에 기록하며 실천에 옮기는 시간을 자주 갖자는, 이런 다짐이 게으른 내게 신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그렇지만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는 찾아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