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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17. 2023

피렌체2, 이 짧은 여행에도 번아웃이 온다

짧은 여행도 그러한데 나의 일상은 오죽할까

오늘은 아침 일찍 피렌체 근교 피사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지희는 계획을 꽤나 세세히 짜는 성격이라 몇주전 미리 이날 오전 피사에 함께 갈 동행을 구했고 별 계획이 없었던 나는 마침 일정이 겹쳐 동행을 신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시간을 맞춰 피사에 가는 기차 티켓까지 사두었다. 피사는 피렌체 근교의 도시지만 피사의 사탑을 제외하고는 딱히 볼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다녀오기로 한것이다. 우리는 오전 9시정도 피렌체역에서 기차를 타고 피사로 향했다. 시간은 한시간정도 걸렸다. 피사역에 도착하고 부터는 20분정도를 걸어가면 피사의 사탑이 나온다.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제 20분정도는 가볍게 걸어다닐 수 있기에 우리는 고민도 않고 걷기를 선택했다. 또 둘이 이런저런 여행 얘기를 하며 걸어가니 금새 피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갑자기 피사의 사탑이 보였다. 분명 저정도 크기면 오기전에도 좀 눈에 띄어야 했을텐데 골목을 벗어나기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골목에서 나오니 깜짝 박스에서 튀어나온듯 모습을 보였다. 이런 조형물을 보면 약간 연예인을 봤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십수년간 사진으로만 보던 걸 제 눈으로 직접 보니 경외감이 든다. 피사의 사탑이 보수 이후 기울어짐이 많이 줄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직접 가보니 여전히 서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기울어져있었다. 우리는 피사의 사탑 방문객이라면 필히 찍어야 하는 컨셉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이런 사진은 외국인에게 아무리 느낌을 설명한다한듯 그 느낌을 알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과 여행을 하는 것에 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찍어야 할 사진을 모두 찍고 가볍게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둘다 한마음 한뜻으로 이제 볼건 다봤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시간 뒤의 기차시간을 좀 기다리면서 피사의 사탑이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다. 카푸치노 두잔을 시켰다. 지희에게는 완벽한 남자친구가 있다고한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정말 도움도 많이 받고 배울점도 정말 많다고한다. 그래서 지희는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인간적으로도 존경한다. 근데 그런 점에서 지희는 고민이 잇다. 자기는 위에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 사람이 정말 좋은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은 그 사람에 비해 그리 완벽하지도 않고 내가 받고 있는 도움만큼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가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래서 뭔가 계속 남자친구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게 된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가장 많은 오류가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려고한다. 누군가는 배울점이 있는 사람에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고 그걸 잘 받아들여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 퍼즐도 두쪽다 뾰족히 튀어나오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쪽이 튀어나오면 한쪽은 그 부분을 자신의 안쪽으로 끼워맞춘다. 그래서 관계라는 것은 결국 누가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라 두사람이라는 다른 퍼즐이 하나로 완성 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물론 지희의 고민은 지금 취준생으로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말해줬다. 도움의 유무를 떠나서 너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이기때문에 그 사람이 완벽한 거라고 말이다. 


역시 연애이야기는 시간 가는줄 모르게 만든다. 어느새 기차 출발 시간이 30분정도 남아서 우리는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피렌체행 기차 티켓을 사려하니 모든 기계가 먹통이 되어 표를 살 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피사역의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다고 한다. 역무원들은 어쩔 수 없으니 기차를 그냥 타라고 한다. 오 우리는 되려 돈이 굳었으니 기분좋게 피렌체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우리는 피자집에 들러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그리고 나는 지희와 인사를하고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다들 가이드 투어를 추천해서 3시간정도 걸리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두었다.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도착했다. 9명정도의 한국인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가이드님을 따라 미술관으로 향했다. 단순히 미술작품 해설일거라고만 생각했지만  로마제국의 역사부터 시작한 해설은 피렌체를 역사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피렌체라는 도시를 부흥시킨 메디치 가문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해주셨다. 메디치가의 넘치는 돈을 쓰기위해 시작한 예술 부흥이 곧 르네상스 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늘 말하는 예술과 재물이라는 것이 결국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에 가게 된다면 우피치 미술관의 가이드 투어는 꼭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끝내고 나니 더이상 내 다리의 감각이 느껴지질 않았다. 피사 근교 투어부터 연이은 3시간의 투어를 마쳤으니 그럴만도 할 일이다. 저녁에는 또 식사 동행을 잡아두었다. 피렌체에 왔으니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맛봐야한다는 생각에 4명을 모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고기를 먹을 생각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얼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나를 제외한 3사람이 모두 도착해있었다. 성재씨, 지연씨, 민지씨였다. 성재씨는 당일치기로 피렌체에 들른차라 저녁을 먹고 다시 8시반 기차로 로마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웨이터의 추천을 받아 좋은 품종의 티본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트러플 파스타와 샐러드를 하나 추가로 주문했다. 다들 레드와인을 먹겠다고 해서 한병을 시켰다. 나는 몸이 좀 좋지 않아 따로 콜라를 먹겠다고 시켰다. 하지만 몸 걱정도 잠시 와인이 나오자마자 그냥 에라모르겠다 마셔야 겠다며 냅다 잔을 들었다. 


식사도 술도 참 맛있었다. 먹기좋게 잘 커팅이 되어 나온 스테이크는 직원의 설명대로 입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드라이에이징을 기본으로 하는 듯했다. 육향이 고소하게 씹을 수록 맛이 올라왔다. 트러플파스타와 샐러드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사이드로 먹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모두들 성격이 좋았다. 다들 외향적인 성격으로 넷이 만나 어색할 수 있지만 기분좋게 잘 어우러졌다. 식사가 끝날 때쯤 성재씨는 기차 시간이 임박해 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비슷한 이탈리아 경로를 여행한 사람이라 만난지 얼마 안되었어도 말이 금새 잘통했다.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지연씨와 민지씨는 베키오 다리 야경을 보러가자 했지만 더 무리했다간 몸에 병이 날 것같아 들어가서 쉬어보겠다고 했다. 자켓을 입고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지금 쉬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9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빨리 씻고 얼른 자야지라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내 침대에 돌아와보니 다른 사람의 짐이 잔뜩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몸이 안좋으니 괜시리 예민해졌다. 그길로 카운터에가서 물으니 확인해보겠다고 한다. 얼른 쉬고 싶은데 말이다. 카운터에서 알아보니 옆침대 숙박객이 침대를 착각한것 같다고한다. 카운터 직원이 직접 내 침대에 쌓여있는 짐을 옆으로 옮겨주었다. 착오를 일으켜 미안하다며 괜찮냐 물었고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에 예민하게 굴었던 내가 되려 미안해졌다. 그렇게 드디어 내 침대를 되찾고는 얼른 씻고 누웠다. 조금 컨디션이 안좋다고 하자 점심에 지희가 잠시 숙소에 들러 감기약을 줬다. 그게 생각이 나서 잠시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일부러 긴팔 긴바지를 두텁게 입고 누웠다. 살짝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니스를 지나 밀라노를 오고 난 후 부터는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았고 여행에 대한 설렘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간 여행에도 번아웃이 온듯했다. 처음 봤을 땐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던 유럽의 풍경이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카메라도 잘 들지 않게되고 하루종일 걸어다녀도 아무렇지 않던 몸도 이제는 피곤하다며 소리치고 있다. 한국에 있을땐 그렇게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소리쳤던 나지만 고작 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이렇게 여행에도 번아웃이 온다. 이렇게 짧은 여행에도 금새 지치고 질리고 번아웃이 오는데, 우리의 일상은 오죽할까싶다. 어찌보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생각보다 잘버텨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몇년에 한번식 번아웃과 매너리즘이 찾아오지만 그또한 이미 잘 버틴것이고 그 번아웃이 언젠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침과 질림을 당연하듯 받아들이자 그러다보면 다시 설렘이 찾아올테니 말이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 오후 10시쯤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컨디션이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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