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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17. 2023

피렌체3, 언젠가 꼭 사랑하는 사람과 와야지

피렌체 두오모 그리고 미켈란젤로 언덕

눈을 뜨니 오전 7시다. 그래도 9시간 정도는 푹잔것 같다. 약을 먹고 잠을 푹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한결 낫다. 아직 목은 감기 기운이 좀 남아 있는 듯하지만 몸에 열이 나거나 힘이 없거나 하는 증상은 없다 참 다행이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으니 아침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으러 나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문연곳이 많이 없어 유럽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맥도날드에 갔다. 간단히 맥머핀 하나와 오렌지 착즙 주스를 주문했다. 햄버거를 받는 곳과 음료를 받는 곳이 달라서 조금은 당황했다. 외국에서는 커피 코너만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서 그런듯하다. 일부러 자리는 창가쪽에 잡았다. 아직 따뜻한 맥머핀을 크게 한입 먹으며 창밖을 봤다. 이른 아침부터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100% 착즙 주스라더니 상큼하고 과하게 달지도 않다.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끝내고 화장실을 들렀다가 나왔다. 화장실을 쓰려고 보니 영수증을 찍어야 화장실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역시 유럽답다.


오후 3시로 예약된 쿠폴라 방문 시간까지는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약을 먹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오늘 로마로 떠나는 지희에게 연락이 와있다. 아침에 종탑을 올라갈 예정인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말이다. 나는 오후 쿠폴라에 오를 생각이라 종탑은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답장했다. 대신 내려와서 같이 보볼리 정원에 가보자고했다. 지희가 종탑을 보고있는 동안 보지 못한 피렌체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특히 곳곳의 작은 골목들을 가보려고 한다.



물론 베키오 광장이나 각종 성당들이 참 많았지만 내가 피렌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피렌체의 작은 골목들이었다. 구글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보면 작은 골목길을 놓치기 쉽다. 구글은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길만을 알려주기 때문에 이동하기 편한 큰길을 위주로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목적지를 두지 않고 골목 사이사이로 걸었다. 골목 사이사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가게들, 작은 조형물 골목 사이로 비추는 대성당의 모습들 피렌체의 작은 골목이 주는 감동은 큰길의 화려함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특히 냉정과 열정사이 남자 주인공이 갔던 미술품 가게가 있는 그 골목은 꼭 가보길 추천한다. 작은 골목 사이로 두오모 대성당의 뺨이 보인다. 그길에서 피렌체의 모든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골목들 사이 사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종탑에 다녀온 지희에게 연락이 왔다. 마침 근처 골목에 있던차에 시뇨리아 광장에 만나기로 했다. 벌써 오전 10시정도가 되니 시뇨리아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들어 차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중 익숙한 얼굴을 찾아 인사 했다. 우리는 강건너 보볼리 정원으로 향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이틀간 세명의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대쉬 받은 썰을 들으며 걸었다.역시 이탈리아 남자들은 숨쉬듯이 플러팅을 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보볼리 정원에 한번 가보려던 야심찬 생각은 생각지 못한 장벽에 막히고 말았다. 구글 지도를 따라 공원의 후문쪽으로 향한 우리는 이내 잠겨있는 문을 마주해야 했다. 모종의 이유로 보볼리 공원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지도를 보고 걷던 많은 사람들이 애꿎은 자물쉬를 흔들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더운날 오르막의 경사를 뚫고 온 길이기에 이것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눈치였다. 정문으로 돌아간다면 갈 수는 있지만 지희의 점심 기차 시간이 애매할 듯하여 우리는 포기로하기로 했다. 그 대신 근처 젤라또 맛집이나 가자고 결론 내렸다.



1992년에 문을 열었다는 젤라또 집으로 향했다. 나보다 한살이 어리구나 하는 뻔한 농담을 던지며 각자 젤라또를 하나씩 들고 나왔다. 뜨거운 햇빛아래 먹는 젤라또는 가뭄의 단비 같았지만 또한 비 처럼 빨리 녹는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는 젤라또가 녹기 시작하자 혹여 흐르는 것이 더 많을까 말도 없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온통 끈적한 젤라또 얼룩이 가득했다. 젤라또집 주인장은 익숙한 광경인듯 우리에게 물티슈 두장을 건넸다. 경외심 넘치는 눈으로 가게 주인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피렌체 중앙시장에 들렀다. 식재료를 파는 1층과 달리는 2층은 마치 푸드코트처럼 각종 이탈리안 음식을 가벼운 가격에 팔고 있었다. 둘 다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으나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아까워 훈제연어와 캐비어가 올라간 브루스케타를 하나씩 먹었다. 피렌체에서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 지희를 보내는 날이니 내가 사겠다며 3유로로 기분좋은 생색을 냈다. 적당히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왔다. 지희는 마지막 까지 즐거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로마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까 중앙시장에서 산 복숭아를 먹으며 잠시 누웠다. 3시에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 쿠폴라에 올라야 하니 어제처럼 지치지 않으려면 좀 쉬어두어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3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쿠폴라에 오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던 일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 위해 조금은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두오모에 도착해서 쿠폴라 입구에 가니 이미 예약자들이 줄을 선 후 대기 하고 있었다. 정시까지 조금 기다리니 3시타임 입장객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좁은 계단들을 뚫고 천장가까이의 길을 지나, 다시 어둡고 뱅글뱅글 도는 계단을 지나니 드디어 도착 할 수 있었다.



연인과 함께 올라간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그 곳, 바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이다. 철장 같은 걸로 막혀 있지 않고 뻥뚤린 쿠폴라는 감상을 하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너무 좋았다. 도시를 뒤덮고 있는 붉은 벽돌이 오늘따라 밝은 햇빛과 잘어울린다. 왜 여기에 함께 오르면 연인간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같은 풍경이다. 누군가와 꼭 함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준세이가 이곳에 올라 아오이를 기다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장소를 선택한다면 나도 이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피렌체의 붉은 지붕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꼭 올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나도 가능만 하다면 한나절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의 인연 누군가가 오길 기다리고 싶지만 내겐 오직 45분의 시간 밖에 없다. 일단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사방을 돌며 피렌체의 전경을 사진으로 그리고 내 눈으로 담았다. 피렌체는 가까이서도 이렇게 멀리서도 모든 부분이 멋이 있으며 다른 매력이 있다. 언젠가 나도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야지.


쿠폴라에서 내려오니 바로 옆에 조토의 종탑이 보인다. 내가 예매한 티켓은 둘 다를 올라갈 수 있는 티켓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종탑에 올랐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따로 적지는 않겠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올라간 종탑 쿠폴라가 보인다는 것 이외에는 비슷했던 감상이었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엔 어제 스테이크를 같이 먹었던 동행과 만나 같이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서 노을을 보기로했다. 피렌체가 입은 노을의 색은 어떨까.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으니 옆 침대의 외국인이 들어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독일인으로 예전에 피렌체에 살았던적이 있어 피렌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아는 편이라고한다. 그래서 곧 6시반쯤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려한다고 하니, 최대한 빨리가서 그 풍경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해가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전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고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나는 오늘 함께 가기로 한 동행들에게 빨리가자고 제안했고 지연씨는 따로 민지씨와 나는 예상보다 30분 일찍 6시에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출발했다. 두오모에서는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서둘러 걸어가기로했다.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하는 내내 피렌체 이곳저곳의 아름다운 골목이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광장에 가까워져 오니 그곳으로 가고있는 사람도 많아보였고 광장에 이미 자리를 잡고 노을을 볼 준비를 마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광장에 도착해 지연씨를 만났고 설 만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그때 굉장히 좋은 뷰포인트에서 버스킹을 하고있던 할아버지가 흔쾌히 본인의 스피커가 차지 하고 있던 자리를 내어주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맡아 두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만나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얼른 자리를 다시 내어드렸다. 1유로의 감사 표시또한 잊지 않았다. 조금 옆 계단으로 내려가서 사진을 몇번 더 찍었다. 사진을 찍어도 찍어도 찍고 싶게만드는 마법이 이 피렌체의 언덕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아무말없이 계단에 걸터 앉아 노을에 빨갛게 물드는 피렌체를 바라 보았다. 피렌체 건물들의 한쪽 뺨이 물들어가며 만들어내는 광경이 내 마음까지 감동으로 물들게 만들었다.해가 완벽히 지고도 햇빛은 아직 걸터 있었다. 우리는 햇빛이 남아 있는 옷깃을 잡아 끌듯 없어 지기 시작할 때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 언덕을 다 내려와 강변에 도착하니 남색 초저녁 하늘 아래 강변의 가로등이 어두워진 물을 비추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진 강보다 초저녁의 강빛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연씨는 적절한 음악을 켰고 우리는 역시 음악이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분명히 오늘 종탑을 두개나 오르고 높은 언덕까지 오르는 고행을 했음에도 먹먹한 아름다움이 내려앉은 피렌체의 강변에서의 걸음은 어느때보다 가벼웠다.


우리는 늦은 저녁은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나의 직장 동료가 추천해준 곳으로 가는 길이다. 몇일전 급한 업무건으로 연락을 하게 된 직장 동료는 내가 이탈리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 친하지 않음에도 피렌체에서 꼭 방문해보아야할 레스토랑을 추천해주었다. 친하지 않지만 추천을 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주저 하지 않고 피렌체 마지막 밤을 장식할 레스토랑으로 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예약을 사전에 했어야 하지만 매번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 웨이팅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향하는 길이지만 확실하지 않다.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레스토랑은 작은 골목 안쪽에 몰래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안쪽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 사람의 식사가 가능한지 물었다. 안쪽의 마른 몸에 안경을 쓴 주인장은 뭔지 모를 인상을 썼고 잠시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일까 잠시 희망을 갖게 되는 손짓이었다. 이내 가게 웨이터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더니 웨이터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안쪽 자리를 안내했다. 이게 왠일인가! 우리는 신나게 안내를 받아 들어갔고 그곳에는 4인 자리가 세팅 되어있었다. 아마도 노쇼 좌석이 있었던듯 하다. 4인 예약자가 오지 않았고 마침 예약 시간이 지나 우리가 도착해서 운좋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런 행운으로 얻은 자리가 더 행복한 법이다. 우리는 먹기전부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무뚝뚝해 보였던 주인장은 세상 활기차고 재밌었다. 우리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주며 세상 개구장이 스럽게 메뉴를 추천했다. 우리는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추천한 모든 메뉴를 시켰다. 오리소스 파파델레, 애호박크림 파케리, 양고기 커틀렛 그리고 괜찮은 레드와인이었다. 가게의 분위기는 정말 유럽 동네의 캐주얼 한 밥집처럼 신났다. 가게의 모든 직원들은 웃고 있었다. 모두 손님들에게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기분부터가 좋으니 먹기전부터 행복해졌다. 드디어 음식 서빙됐다. 오리소스 파스타부터 차례로 맛을 봤고 우리는 모두 그저 첫입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이국의 음식을 먹으면서 한입에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다. 몇번 씹으며 그 맛에 적응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은 달랐다. 오리다리 고기를 아주 오래 조리해서 잇몸으로도 먹을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짜지도 않게 적절히 간이 되어있었으며 면의 모든 부분에 소스가 묻어있어 면을 씹을 때마다 오리의 감칠맛이 느껴졌다. 특히나 생면으로 뽑은 면은 쫄깃했고 소스의 맛을 꽉 붙잡고 있었다. 파케리는 치즈의 지독한 풍미가 잘느껴졌으며 양고기 커틀랫은 살짝 핑크빛이 돌도록 익혀진 적절한 굽기로 익혀졌다. 그리고 양고기 기름에 익혀진 감자는 감자 그 이상의 감칠맛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생 이탈리안 음식을 맛본것에 대한 만족감을 말로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터지는 튀어나오는 기침처럼 우리는 계속 감탄을 내뱉었다. 이후 우리는 몇가지 메뉴를 더 시켰고 실패는 없었다.


마지막 압권은 라즈베리 티라미수였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에 와서도 몇번 먹어 보았기 때문에 큰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랐다. 상큼한 라즈베리가 부드러운 크림안에 숨어 있었고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크림안에서 톡톡 터지기 시작했다. 한 스푼의 티라미수안에서 밸런스를 느껴본적은 처음이었다. 바로 다음 스푼을 생각나게 만드는 티라미수었다. 우리는 하나를 쉐어하고는 아쉬움에 바로 하나를 더 주문했다. 우리의 표정에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가득한것이 보였나보디. 직원들과 사장님도 모두 웃으며 행복해했다. 총 8개의 메뉴와 두병의 레드와인을 해치우고 나서야 식당 문을 나섰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저녁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가벼운 작별 인사를 남기고 두오모 광장 앞에서 각자의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혼자 걸으며 잠시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의 ost를 들었다. 와인으로 살짝 오른 취기와 피렌체의 거리 그리고 음악이 있으니 이곳이 곧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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