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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Jul 10. 2020

오로지 먹는 회로서 길러지는 물고기처럼

불공정한 사회에서 공정한 상상하기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기억한다. 정책 운영의 과정에서 공과 과는 동시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말을 했던 당시와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공정한 세상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천공항에 방문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말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고 3년이 지난 시점에 결국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책에 대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고 특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 세대에서 가장 강한 반발이 나왔다.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비난에 가까울 정도로 이 정책을 비판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차별과 불공정함을 호소하며 국민 청원에 올린 글과 그 글에 달린 30만 명이 넘는 동의자 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함과 불공정함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몇 년 동안 오로지 시험공부만 준비해서 한 번에 정규직이 되는 것보다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서 10년간 관련 분야에서 일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로또 맞는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텍스트 중심의 문제 풀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보다 해당 분야의 실전 경험이 더 낮게 취급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노동구조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동의자 수가 너무 많았고 이런 여론을 등에 업는 언론 지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너무 성실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설령 단순 아르바이트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해당 분야에서 4-5년 정도의 경험이 쌓이면 문제를 백만 개 푼 것보다 전문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는 어느새 시험만이 사람을 평가하는 전부라고 여기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공정함은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다. 공정함조차 시험으로 배우고 점수만이 무언가를 평가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배운 이들에게 이번 일은 불공정한 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랑에 정답이 없듯 공정함은 오지선다형으로 선택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득 오로지 먹는 회로서 길러지는 물고기가 떠올랐다. 일평생 양식장에서, 좁은 수조 속에서 성장하는 물고기에게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관련 기사를 읽어보면서 이 상황을 포함하여 청년 세대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청소년 시절부터 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정체성이 확립이 되는 훨씬 이전부터 경쟁하고 평가받는 교육을 십수 년간 받아온 이들에게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사회 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자는 이야기는 불공정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은 행복한 세상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상주의자' 또는 '나이가 들어도 철없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의 왜곡된 교육 속에서 성인으로 자란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먹는 회로서 길러지는 물고기처럼 상상할 수밖에 없다. 


명확한 대안을 마련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방법을 찾아보자면 결국 교육이 변해야 한다. 사회의 먹잇감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하나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공정한 사회의 이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진짜 공정한 세계를 꿈꾸고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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