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결혼생활

나는 왜 딸이길 바랐을까?

by 허솔레미욤

아이의 성별을 보러 갔을 때, 아이가 양반다리를 풀지 않아 성별은 아직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건강하면 됐지 뭐'하고 나오면서도, 한편으론 딸이길 바랐던 것 같다.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은 그렇게 듣기 싫어해놓고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꽤나 공감했었나보다.

첫째는 딸이길 바랐던 걸 보면


아이의 성별을 알지 못하고 2주를 보내며 자문했던, 왜 첫째는 딸이길 바랐는가는, 내가 왜 아이를 낳고자 마음 먹었는가로 확장되었다.


왜였을까?


아이를 낳으면 몸도 망가지고, 건강도 잃으며, 경력도 단절되고, 경제적으로도 장점이 없고, 부모란 끝없이 희생하고 인내해야 존재인데

무엇을 위하여 나는 아이를 낳으려 했던 것일까?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삶의 순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나?

아니면, 내 마음 한 구석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식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일반적인 가족의 정의라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훗날 내가 늙고 힘이 없어졌을 때 나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줄 든든한 가족을 원했던 것은 아닌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 모든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이를 낳아 키우고자 했던 것은 나의 의지였다.

그러나, 아이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성별이 정해지고, 부모의 의지에 의해 태어났으니

나는 이 아이에게 나의 미래를 맡긴다거나, 효도를 바란다거나, 친구같는 자식이 되길 희망한다거나 하는 터무니 없는 소망이 아닌, 이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자문은 점철되었다.


그러자 아들이건 딸이건 정말 상관 없겠구나 싶어졌으며, 내 능력에 한에서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만큼만 낳아 키워야 겠구나 싶어졌다.

무조건 둘 이어야한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달밤아

네게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스스로 즐기고 지켜낼 수 있도록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갈게.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희생하기만 하진 않을 게. 내 삶에도 최선을 다할게.

너에게 효도를 바라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멋진 중년과 노년으로 나아가볼 게.

너 또한 행복하고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게. 그리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게.


네가 어떤 사랑을 하건, 무엇을 원하건

언제나 너의 행복을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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