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결혼할 때, 아빠가 나를 불러서 이야기하셨다.
"네가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해오길 바라지 마.
네가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해온다는 건,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 부모님의 능력일 거야.
아빠 세대는 가난했어.
다들 없이 시작했고, 열심히 살았어.
그래서 열심히 벌어서 자기 살 집 마련하고, 자식한테 집까지 마련해 줄 만큼 모으긴 쉽지 않을 거야.
아빠도 똑같아”
결혼에 대하여 별생각 없던 시기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었는데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는지, 아빠의 이야기가 내 가치관으로 깊게 박혀버렸다.
얼마 전 친구 A가 내게 말했다.
"준다고 하면 받아. 넌 어떨지 몰라도, 나는 어떻게든 받아 오라고 할 거야.”
내가 대답했다.
"여유로워서 준다고 하면 감사히 받겠지.
노후자금을 제외하고도 넘치는 돈이 있어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받겠지만, 그게 노후 자금이라면 주신다고 해도 부담스러워.
만약 우리 부모님이라면 노후 자금으로 나를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까?? 난 못해.
나는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바라는 건 이기적인 욕심 같아.
우리 부모님이 소중하면, 상대방도 소중하겠지.
만약 남자라는 이유로 집을 해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자 상으로 행동해야 공평하지.
내가 하기 싫은 건 안 하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남편상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건 공평하지 않잖아"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어른들이 내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며느리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거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부인상을 요구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내 가치관대로 살아가려 한다.
20대 중반에, 나를 앉혀놓고 이야기했던 아빠의 가치관이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