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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솔레미욤 Sep 08. 2020

자살이 죄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자살을 죄악시 여기는 건 언제부터였을까?

왜 죄악시 여겼을 까?

그를 위해? 나를 위해? 세상을 위해? 아님 무엇을 위해?


그의 삶이 아무리 지옥 같다 해도, 남아있는 내가 너로 인해 덜 슬프기 위해 제발 살아달라 요청하는 건 아닐까.

그가 지옥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야.


앞으로의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 기대되지 않으며, 지금의 내 삶이 지옥 같다면, 앞으로 남은 삶 또한 지옥이라 예상되겠지.

그러한 이유로 본인의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이에게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잘 살 수 있다’라고 조언하는 건, 이미 잘 살고 있는 이들의 주제넘은 조언 아닐까.

죽고자 하는 마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면 살고자 했겠지.

누가 그리 쉽게 제 목숨을 놓으려 하겠나.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기에, 예상되는 앞으로의 지옥까지 견딜 제간이 없었겠지.


내가 의지하여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는 게 지옥 같더라도, 열심히 잘 살아보라 말하는 건, 잘 살고 있는 이들의 주제넘은 강요 아닐까.

지옥에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말이야.


물론, 발버둥을 치다 보면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발버둥을 치기 싫다잖아. 그만하고 싶다잖아.

이런 사람에게, 마음의 지옥에서 계속 살게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 아닐까?



자살이 죄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죄인지는 정말 모르겠으나,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너무나 죄책감이 크고 슬플 것 같아서, 내 주변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인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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