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채찍을 선물받았다.

by 후이빈

진짜다.

채찍. 그것도 가죽으로 만든 단단한 채찍. 승마하는 영상에서 보이는 그런 긴 꼬리도 있는.

스튜디오 아침 열시, 항상 고정 자리를 확보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한 무리의 흰머리 여성회원들이 있다. 머리가 노랗고 아담한 키에 수업중에도 농담을 서슴지 않는 제시카(다가명이다), 간호사로 은퇴하고 다친 무릎을 달래가며 운동하는 케일리, 평소엔 얌전한 것같지만 안 좋은 어깨를 항상 미리 예고하여 나로 하여금 잊지 않도록 하는 애니, 올 때마다 한국말로 안녕 고마워를 연습하는 앤.


수업이 아니라 고문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종종 하더니 제시카가 채찍을 건넨다.

" 이거 너한테 딱이야"

"엥? 이거 뭐?"

"채찍. 넌 고문관이니까 이게 어울려. 다음엔 캣우먼 분장을 해보는게 어때?"

역시 농담에 도가 튼 제시카답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랫동안 말을 키우고 승마를 했던 앤이 제시카에게 채찍을 줬단다. 그걸 보자마자 나를 떠올린 제시카가 선물이라며 채찍을 갖다 준것이다. 참나. 웃긴 할머니야.


그래서 나는 졸지에 채찍을 휘두르는, 강사를 가장한 고문관이 되었다. 채찍에 걸맞게 내년에 할로윈코스튬으로 가죽자켓을 사야 하게 생겼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회원들이 신음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할 때 나는 가끔 희열을 느낀다. 변태인가.. 그들의 신음이 짜증이 나서인지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나는 소리인지 살짝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신음이 연속해서 들릴수록 수업을 마친 후 리액션이 좋다.

'너무 힘들었어. 근데 좋았어' 라던가 '나 근육통 내년까지 올 거같아'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는지도 몰랐네' 같은 반응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솔직하고도 진한 만족감이 퍼지는 것을 볼 때 나는 행복해진다.

물론 제시카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돈을 내고 고문을 받으러 오는 거야 알겠어?"

I lo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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