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큰 오빠는 일본이 벌인 전쟁에 강제동원 될뻔하다가 다행히 경상북도 일월면 광산(일본인주인)에 자리를 얻어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아버지와 내가 애기였던 조카를 숙모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함께 며칠을 여인숙에서 전전해가며 오빠가 일하는 광산으로 갔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꼬불꼬불한지 며칠을 꼬박 걸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와 나는 조카를 등에 번갈어 업고 가빠진 숨을 가누며 버텼다. ㅁ가을이라 지천에 널린 산머루 하고 다래를 따먹으면서 한밤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곧 나를 오빠내외에게 맡기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한참을 그곳에서 지내다가 또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동네전체가 무언가 이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무언가 불안하고 어수선한 과히 좋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무척 불안해하고 일본 놈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다 잡아 죽인다는 협박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정말 잡혀 죽을까 봐 어찌나 무서웠는지 하루빨리 해방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밤마다 하면서 잤다.
그러던 어느 날, B-29 폭격기가 갑자기 우리 동네 동해바다 쪽에 오더니 바닷가에 있는 집들을 향해 느닷없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놀란 동네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피난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문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맞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얼마나 해매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더니 이내 갑자기 또 해방이 되었다면서 순식간에 어른들이 모두 만세를 부르면서 뛰쳐나와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뭐가 뭔지 영문을 몰랐지만 해방이 되었다는 말에 더 이상 잡혀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너무 행복했다. 천왕이 항복하는 방송이 라디오에 나오고 애어른 할 것 없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나와 만세를 부르는 광경은 정말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하고 뜨거웠다.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 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해 9월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기차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기차는 마치 기어가는 듯 모든 정류장에 하릴없이 정차해 있는 것만 같았다. 위궤양으로 표정을 찡그리며 힘들어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밤에 도착한 청량리역에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학생들이 교복차림으로 길거리에 모두 나와 있었다. 한밤에 내렸는데도 서울은 사방에 불이 어찌나 밝은지 밤이 꼭 낮 같아서 나는 서울이 별천지인 줄만 알았다. 넓은 길에 죽 늘어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만으로도 신기하고 눈이 어지러운데 그 불빛아래로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도 희한해서 그게 여자인지 귀신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파마를 했는데 머리는 전부 풀어헤치고 앞머리는 한껏 부풀려 새빨간 입술과 휘올라가있는 눈썹이 마치 도깨비 같았다. 너무 놀라 오빠 팔을 꼭 잡는 내게 오빠는 힐끗 보더니
“저거 술집여자야”
하며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밀어냈다.
서울 우리 집은 오장동이었다. 큰오빠가 돈암동에 살다가 운 좋게 좋은 일본사람집을 구해 두 가구가 살 정도가 되는 크기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꽤 괜찮았다. 원래 부지런해서 가만히 못 계시는 아버지는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뭘 해야 할까 찾으러 다니시고, 농사짓던 가락을 발휘해 곧 화원 시장에서 식품점을 시작하셨는데 꽤 번창했다. 돈을 수금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은행으로 안 가시고 대신 방 한쪽에 숨겨놓은 궤짝에 돈을 넣고는 커다란 열쇠로 잠가놓곤 했다. 전부 현금으로만 채웠으니 한 보따리식 가져오면 모든 식구들이 전부 방에 앉아 돈을 일일이 세는 것이 월례행사가 되었다. 아빠는 모두 정신없이 계산에 열중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셨다. 서울에 오래 있었지만 장사 주변이 없고 천사 같은 큰 오빠와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성격도 약삭빠른 작은 오빠는 같이 미싱 가게를 시작했다. 해방된 서울땅에는 짓눌렸던 억압의 기운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활기찬 새 생활을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미싱가게 역시 장사가 잘 되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셋째 오빠는 그 무렵 집으로 이쁜 애인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며 잘해줬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면서 나도 좋은 남자한테 시집이나 잘 가야지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