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지 않았다.
1950년 전쟁의 시작
토요일 저녁, 멀리서 팡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얼른 나가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대며 빨갱이가 넘어왔다느니 대포를 쏜다느니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탕탕 총소리로 변했고 어머니가 밖에서 급하게 집으로 뛰어 들어 오시더니 미싱위에다 다짜고짜 이불을 덮으셨다. 페달을 밟아서 돌리는 미싱은 크기가 책상만해서 이불로 덮어놓으면 그 밑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생겼는데 어머니가 그 밑으로 몸을 쏙 숨기신 것이었다. 총에 맞을까 두려워 급한대로 미싱밑으로 꼼짝도 안 하고 숨어 계신모습을 보던 내 올케는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시어미가 혼자만 살려고 숨어있다며 중얼중얼 흉을 봤다. 그렇게 우리 여자셋과 둘째오빠는 이불로 몸만 가리고는 밤을 꼬박 새었다. 큰집에 있는 아빠와 큰오빠들은 무사할까 생각하면서..
새벽이 되어모든 소리가 잠잠해지고 문을 빠꼼히 열어보니 동네 사람들이 짐을 이고 도망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날이 밝았을 즈음엔 이미 사람은 뜸하고 길에는 버려진 짐들이 쓸쓸히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후에 알았지만 인민군은 그때 이미 동네를 점령하고 오빠들은 모두 다락으로 도망가있었다. 여자인 나는 곧 민청에 출두명령을 받고 나가서 시키는 대로 빨갱이 노래를 배우고 사상교육집회에 참여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두려움 속에 동네사람들은 모두 민청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했다. 이미 남자들은 대부분 숨거나 도망간 상태였고 남은 건 대부분 여자들과 노인들, 어린이들뿐이었다. 재산이 좀 있다 싶은 집들은 대부분 ‘혁명투쟁’의 미명아래 대부분을 내놓아야했으며 저항할 때는 가차없는 폭행과 재판이 이어졌다. 당시 동네에서 잘 사는 편에 속했던 우리는 같은 동네사람이 인민군에게 우리집이 부자라고 말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들어닥친 군인들에게 쌀이며 모든 먹을 것을 빼앗겼다. 우리는 말은 커녕 저항의 눈빛조차 보일 수 없었고 오히려 아무도 해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해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척의 지인인 이웃집 아주머니가 길을 가는 나와 사촌언니를 잡고 손가락으로 외딴집을 가리키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 집 지하실에 지금 남자 둘이 숨어있어. 내 아들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니가 먹을 것을 좀 가끔 가져다주련?”
라며 도움을 청했다. 우리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사촌언니와 함께 선뜻 알겠다고 하고서는 밥을 교대로 갖다주기 시작했다. 인민군에게 발각되면 하루아침에 집안 모두가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젊은 혈기였는지 우리는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침 첫 당번을 맡은 나는 밥덩이를 들고는 두 명이 숨어 있던 집으로 향했고 몇 마디의 어색한 대화를 나눈뒤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 명은 헌병대위였고 한 명은 22살의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는데 하얗고 앳된 얼굴에 부산출신이라고 했다. 저렇게 소년같은 사람이 이리 무서운 일을 하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도 묻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채 정신없이 밥을 먹는 그 사람의 얼굴표정이 나의 질문을 막았다. 그렇게 며칠동안 음식을 몰래 갖다주고 있는데 어느날 새벽, 여느때처럼 밥을 가지고 걸어가는 길목에 그 아주머니가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나를 확 낚아채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웬일이세요?”
“ 가지마. 저기 가지마. 어제저녁에 두 사람이 다 잡혀갔어. 지금 인민군이 저 안에 숨어가지고 너 기다리고 있으니 절대 가면 안돼! 얼른 도망가! 어서!”
라며 다급히 전해주는 것이었다. 너무 무서워 당장 집에 돌아와 떨고있는 나를 발견하신 어머니는 이내 모든 자초지종을 조용히 들으셨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했더니
“이 노무 가시나가! 니가 지금 가족몰살시키려고 하나? 어? 정신이 있는거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시면서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곧 어머니는 집에 있으면 잡힐지도 모른다며 밖으로 나가있으라 하시며 나를 쫓아내셨고 나는 하루종일 길을 헤매이며 돌아다녔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할 때가 되어서야 살금살금 조용히 집에 돌아와보니 이미 물은 엎질러져 있었다. 민청에서 출두하라는 통지가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함께 밥을 갖다주었던 사촌집에도 같은 통지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지는 나에게 도망갈 채비를 시키기 시작하셨다. 내 긴 머리를 싹뚝 잘라 단발머리를 만드시고는, 사촌언니와 둘을 동네 양수리쪽 어귀까지 배웅하시겠다며 따라오셨다.
“잘 들어.너희들은 누가 봐도 부잣집딸같이 생겼어. 그러니 앞으로는 세수도 하지 말고 머리도 빗지말고 댕겨라. 안그러면 다 잡아가. 큰일난다!”
그러시면서 쌀 약간과 그 당시 돈 6만원정도를 1원짜리 지폐 한 뭉치로 주셨다. 나는 아버지를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다급하면서도 걱정이 한가득 배어있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니 새삼스레 너무나 죄송스럽고 슬펐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줌마가 도와달라고 했을때 거절했어야 하는건데. 나 떠나고 아빠랑 엄마가 대신 잡히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시가 다급했기에 아버지는 얼른 손을 내저으며 떠나라고 다그치셨다. 흐르는 눈물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이 자꾸 흐려졌다. 지금도 아버지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온다. 그때 눈물속에 흐려진 아버지의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이 될 지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럴 줄 알았다면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더 확실하게 보고 기억하는건데. 왜 그냥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