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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Jul 24. 2024

이 회사 정말 휴지도 안 주나요?

도 넘는 악플의 영향력


회사를 다니며 무수히도 많은 면접을 보았다. 중소기업 특성상 퇴사자가 많아 일 년 내내 채용 중 상태인 경우도 많을뿐더러, 다른 팀 실무자 면접까지도 같이 참여하면서 많은 지원자들을 만나왔다. 한편으론 면접의 떨림을 너무 이해하기에, 한편으론 그 지원자를 너무 잡고 싶기에 나도 역시나 열심히 면접에 임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지원자들까지 만나며 정말 다채로운 면접을 겪어봤다.


그중, 5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는 일이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궁금하신 점 편하게 물어봐주세요~" 

"저... 입사하면 정말 휴지랑 물티슈도 제공이 안 되나요?"

"예??? ㅎㅎㅎ 사무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용품들은 필기구까지 다 지원하는데요!"

"아 ㅎㅎ 그렇죠? 잡플래닛 후기에 휴지도 안 준다고 되어있어서 좀 걱정했거든요."

"하하하하...그거요~ 그때 일시적으로 경영지원팀 준비가 늦어서 발생한 이슈였어요~" 





당시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구인난에 실무자들은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잡플래닛 리뷰로 지원자들이 지레 이상한 회사로 판단하고 지원도 안 하는 회사가 되어버리면 낭패였다. 


개인경비로 잡플래닛 프리미엄을 가입하고 회사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있는 리뷰들을 캡처해서 모았다. 회사를 겪어본 분들의 리뷰였기에 실제로 경영진이 직접 보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그런 내용들은 회의에서 같이 리뷰하고, 압축파일로 묶어 경영진에게도 보냈다. 


하지만, 몇몇 도를 넘는 유치한 리뷰들은 정말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허위사실에 과장된 표현까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여자 화장실 변기가 맨날 막힌다는 얘기와 탕비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외국인 직원들 때문에 냄새가 나서 역하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이건 그냥 그런 리뷰를 남긴 사람들의 인성문제였지만, 저런 과장된 사실들이 회사 이미지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저 리뷰를 달았던 사람들이 떠난 후, 회사 화장실이 정말 깨끗해졌다^^)




중소기업은 면접자가 회사를 파악할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홈페이지가 잘 꾸려져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회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저 '이런 노력은 하는 회사구나'생각할 수  있는 요소일 뿐이다. 이런 중소기업 지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 사이트가 바로 잡플래닛이다. (대기업이라면 블라인드를 보겠지만, 중소기업은 블라인드가 의미가 없다.) 잡플래닛 별점이 2점 미만인 곳은 믿고 거르는 업체라고 보면 되고, 3점 이상인 곳은 그래도 면접은 볼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잡플래닛에서는 기본적인 회사정보, 재직자와 퇴직자들이 매긴 별점(5점 만점), 업무환경/장단점/경영진 평가 같은 간단한 항목에 대한 코멘트를 확인할 수 있다. 누가 그렇게 열심히 써놓았겠나 싶지만, 무료로 다른 회사의 정보를 보려면 내가 재직/퇴직한 회사에 대한 리뷰를 써야 한다. 그렇게 시작은 간단하게 적어보자는 마음이었지만 적다 보면 꽤나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직/퇴직자 검증은 따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대나무숲'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매우 견고한 익명체제로 운영되어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이나 악플을 적기에도 적합한 채널이다. 



바로 이 채널덕에 저런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운영정책 상, 회사는 잡플래닛에서 리뷰를 관리하거나 정제할 수 없다. 일반적인 도덕적 규정을 넘어선다면 신고하여 숨김처리를 할 수 있으나, 익명과 자율성이 보장된 채널이기에 잡플래닛에서도 웬만한 리뷰는 건드리지 않았다. 또한 사실상 리뷰를 등록한 사람과 리뷰의 관계가 끊어진 형태인지라, 나중에 내 리뷰를 찾아서 지우려면 발급받은 코드가 있어야 하기에, 퇴사자를 찾아서 부탁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이미 생성된 리뷰에 대해선 어떠한 관리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 참고로 면접 때 받았던 '휴지 제공'에 대한 질문으로 인해, 나는 인사팀은 아니지만 잡플래닛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면접 때 답할 질문도 미리 준비했다. 경영지원팀은 면접에 참여했던 직원들의 피드백으로 휴지/물티슈/쓰레기봉투/기타 사무용품들을 언제나 꽉꽉 채워놓고 구비해 놓는 곳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지나며 정상적인 퇴사자와 재직자들의 리뷰가 섞이며, 회사에 대한 비판과 불만은 있어도 도 넘는 악평은 없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실제로 중요한 의견들이 꾸준히 올라오기에, 한 번씩 중간관리자들이 리뷰해야 한다는 인식도 생겼다.


잠깐, 그럼 결국 휴지소동은 의미가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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