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빈밴드, <CALLING>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데친 시금치가 되어버리는 날들이 오고 있다. 젊음의 상징, 여름이 이젠 초면에 선을 넘게 뜨거워진 것 같다. 도시에서 더위만큼 인위적인 도움 없이 피하기 힘든 게 또 있을까.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도 달궈진 바람을 맞다 보면 순식간에 기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모종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한참을 서 있다 보면 사회적 체면을 잊고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든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고 느낄 때도 이런 막막한 심정이 된다.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고 마냥 견디기엔 너무나 괴롭다. 이럴 때 누군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청량한 바람 한 줄기처럼 마음이 시원해질 텐데. 바로 앨범 소개에 "날 구해줄 누군가가 필요해!"가 쓰여 있던 유다빈밴드의 <CALLING>이 떠오른다. 하지만 달려온 구원자는 가까운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0eAw495m8rE?feature=shared
서투른 바람을 지나쳤던 나
너무 늦어버려 미안해
I'm calling calling calling
곧 너에게 갈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마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낮은 음질과 작은 볼륨으로 시작된다. 그렇기에 음질이 또렷해지는 '조금만 더 기다려'에서 바짝 다가온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뭐하고 있어 나 혼자 나와있지
너무 지루해 얼른 꺼내러 와줘
벽에 기대어 울어버린 날
난 그저 웃음으로 흘렸던가
바로 이어지는 파트의 가사가 재미있다. 분명 두 사람이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멜로디와 함께 들으면 자문자답이었던 건지 아리송해진다. '울어버린 날'이라는 단어도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루'일 수도 있고, '나를'의 줄임말로 볼 수 있다. 후자로 본다면 벽에 기대어 울어버렸던 감정을 얼버무렸다는 뜻이 된다.
어디야 뭐하고 있어 온 힘을 다해 꺼냈던
그 말은 떠나고 싶어 살짝 떨렸던 것 같아
난 그저 웃고 있었지만
뭐하고 있냐는 단순한 말속에 담긴 '떠나고 싶어'라는 본심을 마치 본인의 감정처럼 잘 알고 있다. 현재에 대한 질문이 반복된다. 어디 있는지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방황하고 있다. 이곳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역시 웃음으로 넘기고 만다.
알고 있어 참 어렵지
솔직하긴 죽기보다 두려워서
외로운 투정을 부리려다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던가
여기서 비로소 분명해졌다. 솔직하지 못해서 외로웠던, 그저 웃어버린 사람은 화자 본인이다. 내면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를 외면하며 '서투른 바람'을 지나쳐버렸다.
I'm calling, calling, calling
곧 만나러 갈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시간이 흘러 성장한 화자는 상처받았던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아직 도착하지 못해 전화를 걸며 금방 가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calling'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이전엔 현재에 대한 의문만 가득한 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소명(calling)을 찾았다. 가야 할 길을 확신한 화자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곧 만나게 될 거라고 확언한다.
처음 '구원은 셀프'라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야박하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지금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소중한 사람들이 아픔을 줄여주는 건 맞지만 구원까지 바라진 못한다.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고, 무엇보다 바짝 끌어안아져 있어도 혼자 지옥에 있을 수 있는 게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옥은 장소가 아닌 상태라고 하나보다. 어찌 되었건 두 발을 계속 움직여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망을 외면하지 않고 길을 찾은 이 노래 속 주인공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려 한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많은 질문들의 답을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러 책의 구절들이 이와 같은 통찰을 이야기한다. 파울로 코옐료의 <브리다>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번 에세이를 마친다.
주여, 저희가 필요한 것을 청할 수 있는 겸허함을 주십시오.
어떤 바람도 헛되지 않고, 어떤 요청도 무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저희의 바람을, 당신의 영원한 지혜의 샘에서 흘러나온 것인 듯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