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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 Oct 20. 2024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

1


어느날,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서 죽음이 박탈되었다.


2


난 지금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굳이 이런 말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날이 전혀 특별한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황사 때문에 창문은 꼭 닫혀 있었다. 답답한 방 안 공기는 창틀에 낀 먼지 사이사이에서 눌어붙어가는 중이었다.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병원에서 ‘고깃덩이’로 분류되는, 다시 말해 식물인간으로 1년째 누워있는 게 지금의 내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24시간 내내 틀어져 있는 TV가 아니었다면 정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고깃덩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삼수생으로 좀비처럼 지내 오던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인 덕분이었다. 막 들어온 파란불 신호를 무시하고 꼬리물기를 하려던 차를 본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머니 병원비로 한숨 짓던 아버지가 떠올랐고, 그 아버지 앞으로 들어올 보상금이 이어서 떠올랐다. ‘이거면 그간 키워준 은혜를 조금은 갚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비라서 그런지 끈질기게 일어나 버렸다.

처음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나를 본 의사는 ‘죽지 않아 다행입니다.’라고 아버지께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움직이지 못할 거란 결론을 내리고 ‘아드님이 죽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라며 내 앞에서 입원비 얘기를 꺼냈었지. 아버지는 눈을 깜빡거리는 내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병원비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어머니에게 쓰라고 난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누구도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제 날 찾아오는 사람은 이제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버지, 그리고 병원 관계자 정도? 그나마 아버지는 일하랴, 어머니 병구완하랴 바쁜지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이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병실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소리였다. 이들 중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자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옆사람이 누구인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끊임없이 TV를 보거나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눈도 못 뜬 채 TV를 듣기만 하는 사람도 분명 이 중에 있겠지.

누가 좀 와서 가라앉은 공기를 출렁이게 해 주지 않으려나? 하며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을 때, 마침 가십성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해외토픽입니다. 중국의 오지에서 장례식 도중 죽은 이가 되살아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진단을 받은 이의 부활에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중국의 의료체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한편 살아난 이는 뇌손상의 영향인지 현재 착란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응, 중국이니까 죽은 이가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폭탄 빼고 모든 게 폭발한다는 나라인데, 저렇게 기껏 살아난 이가 뻥 터지는 게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혹시 살아난 이를 데려가 인체실험 같은 걸 진행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난 다시 인생의 고생문이 열린 그 자를 향해 잠시 애도를 표하고 잠을 청했다. 뉴스 캐스터가 오십 살 먹은 고릴라의 짝짓기에 관해 중학교 성교육 시간만큼이나 무성의하게 떠드는 가운데, 링거에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얇은 눈꺼풀뿐이었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3


현실이 비틀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24시간 켜져 있는 TV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 현상으로 인해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살아난 이들이 광란 상태에 빠져 주변 인물을 무차별 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 연결해 보겠습니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뉴스 속보는 이제 식상할 지경이었다. 채널은 병원에서 임의로 바꾸곤 했는데, 이 사태가 일어난 후로는 뉴스 채널에 고정된 상태였다. 환자들이 불안해하는 걸 보면서 즐기는 새디스트라도 있는 걸까? 어쨌든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난 뉴스에서 신경을 끄고 천장을 노려보았다. 1년 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타일 하나에 금이 살짝 가 있던 걸 이제야 발견한 탓이었다. 금은 타일 구석에 절묘한 직각삼각형을 그리고 있어서, 난 모처럼 내가 아는 수학공식을 끄집어내며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이래봬도 현역 삼수생이었던 몸이라, 수능에 나올 만한 모든 지식들은 뇌주름 하나하나에 새기다시피 한 터였다.


이날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3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두 번째 뉴스가 언제, 어떤 형태로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임팩트가 덜한 법이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종류의 뉴스가 벌써 수십 번 넘게 나왔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한두 건이었던 이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고 있었고,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현재까지 서울에서만 971건이 발생했을 정도이니 정부가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이 현상은 단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죽음의 원인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은 후 되살아난다.’


혹시 목에 두 개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고 얼굴에선 혈색이 도는 시체라면 죽은 후 되살아나는 걸 납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원에서 모두의 애도 속에 죽은 이도, 교통사고로 너덜너덜해져 죽은 이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죽은 이도, 발을 헛디뎠다 강에 빠져 익사한 이도 모두 꿈틀꿈틀 되살아났다고 한다. 단, 머리가 박살난 시체는 사후 경련 수준의 움직임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약점이 밝혀지긴 했는데, 이를 공략하는 건 쉽지 않았다. 교통사고 현장이 찍힌 CCTV를 뉴스에서 보며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거리에서 과속하는 용달차에 들이받혀 즉사한 사자(死者)가 용달차를 맨손으로 뒤집어버리고 그 안의 운전수를 죽인 것이다. 잔인한 장면이 모자이크로 처리되는 가운데, 실탄 18발을 쏘고 나서야 ‘둘’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 나레이션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후자는 더욱 심각했다. 과거 페스트가 중세 유럽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을 당시, 페스트의 치사율은 98%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건 전세계로 확장되지도 않았고, 간혹 살아남는 사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에서 동시에, 그것도 예외 없이 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뉴스를 몇 개만 떠올려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독일의 대성당에서 봉인된 관을 부수고 시체가 튀어나오자 조문객들이 놀라 뛰쳐나갔습니다.

-부시먼 부족이 몸부림치는 시신을 기둥에 묶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죽은 이를 두 번 죽일 수 없다는 주술사의 선고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중국은 티벳 고원 일대의 조장(鳥葬) 풍습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토막 나고도 여전히 움직이는 시신이 비인도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를 먹은 동물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세계 각지에서의 소동이 영상과 함께 나오니, 정말 모든 사람에게 이 현상이 적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계에서 1초마다 2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세계사 시간에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되살아나 다른 사람을 해쳤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나마 이게 물린다고 바로 전염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죽어야만’ 일어난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쩌면 이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도, 어쩌면 이 병실에서도 조만간 이런 자가 생기지 않을까?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별로 두렵진 않았다. TV가 어느 날 꺼지는 걸 제외하면,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오늘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4


이런 대소동의 와중에, 나를 비롯한 모두는 이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좀비(Zombie)


사실 이 현상은 누가 봐도 좀비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몇 차례 뉴스를 보면서 어느새 저들을 좀비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에 떠는 시민들도 죽은 이들을 좀비라 칭한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용어는 한동안 방송이나 공식석상에선 사용되지 않았다. 난 더 그럴듯한 말을 높으신 분들이 만들었을까 기대에 찼지만, 곧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새벽 한 시 십오 분에 나오는, 누구도 시청하지 않을 것 같은 토크쇼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종교계에서 ‘좀비’란 말을 쓰는 걸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좀비를 다룬 대중문화에서 종교계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라나?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결국 종교계도 항복한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볼 만한 명제.

과연 ‘좀비’는 되살아난 걸까, 여전히 죽은 채인 걸까?

실험에 따르면 일단 좀비의 생체활동은 완전히 멈춘 게 맞았다. 내장기관도 확실하게 멈춰 있으니 피가 몸에 돌지 않고, 당연히 뇌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움직이는 건 무슨 이유인지는 항상 ‘연구중’이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느니, 좀비물 마니아들의 현상 분석을 지켜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좀비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알기 위해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에 광적으로 의존하는 모양이었다. 밤 11시에 방송되었는데도 78퍼센트라는 공전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였으니까. '긴급편성 - 걸어다니는 시체, 그 원인과 해결책은?'이란 주제로 열린 100분토론에서 자칭 '좀비 전문가'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했다. 연가시처럼 뇌에 기생충이 파고들어 있다가 사람이 죽고 나면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팔다리를 잘라도 움직이는 좀비가 유독 머리를 부수면 움직이지 않는 게 이를 증명한다는 말에 방청객들은 감탄했다. 정부 측 전문가가 `정밀 검사를 했는데도 그런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거든?`이라고 초를 치지만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믿었을 텐데.

한편, 특별 편성된 프로그램인 ‘종교계, 이번 사태에 대해 입을 열다’도 볼만했다. 총 3부작으로 편성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먼저 기독교와 천주교 쪽에서는 주님의 시험으로 세상에 악이 창궐하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인 만큼, 주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겁내지 말고 이에 맞설 필요가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반면 불교는 좀비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라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인류의 업이 쌓여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평상시라면 과학계에서 이에 대한 반박을 신나게 내놓았을 텐데, 아직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무신론자였던 과학계 인사들이 종교계로 귀의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의 변덕으로 이 사태가 벌어진 거라면 난 그에게 간절히 바라고 싶다.

날 일어나게 해 달라고,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서 일으켜 세우라고.


아버지는 대체 언제 오는 걸까.


5


이들에 대한 대책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듯했다. 일단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시체를 꽁꽁 묶어 관에 넣고 봉인한 뒤 화장을 진행했다. 덕분에 화장터는 늘 포화 상태였고, 심지어 덜컹거리는 관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심플한 방법도 존재했다. 중국에서는 사자가 소생하기 전에 망치로 머리를 부수거나 목을 자르는 직업이 생겨났다. 차마 아는 사람의 시체를 훼손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주는 이 직업은 짧은 호황을 누렸다. 짧을 수밖에 없었던 건 너도나도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선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구역을 의식해 칼싸움이 벌어지는 촌극도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태 덕분에 갠지스강의 수질이 조금 향상되었다고 한다. 그간 상류에서 시체를 화장해 재를 뿌리면 하류에서 목욕하며 이를 마시는 게 이네들의 풍습이었지만, 시체가 되살아나는 이 마당에 그런 걸 정부에서 허용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갠지스강 바닥에 익사한 시체들이 도사리고 있다가 목욕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담까지 퍼져 갠지스강에 접근하는 이의 수가 격감했다고 한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니 강은 모처럼 제 빛깔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극지방에 사는 이들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우선 이누이트 등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자연을 확실하게 이용했다. 가장 추운 곳에 시신을 가져간 후 얼음과 눈으로 덮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만큼은 괴력을 가진 좀비도 속절없이 동태 꼴이 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반면,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체에 돼지 피를 바른 후 정글에 던져놓곤 했다. 피냄새를 맡고 모여든 맹수들과 좀비가 싸우다 둘 다 자멸하길 기대하는 수법이었다. 맹수를 많이 죽일수록 ‘최고의 영혼을 가진 전사’로추앙받아, 그 가족에 대한 대우가 좋아진다고 한다는 걸 보며 난 입을 딱 벌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떨까? 표면상으로는 화장터로 직행, 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른 상상을 해 보고 싶다. 우선 북한의 존재. 가령 특수공작원이 침입해 와 도시를 떠돌며 사람들을 죽인다면 어떨까?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에 좀비가 출현하면 사상자는 순식간에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소규모 인원으로 후방을 혼란시키고 나서 느긋하게 쳐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계엄령이 내려지고 군의 경계가 강화되었다지만, 그런 류의 침입을 대비할 전담 부대 정도는 만들어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과거 강릉에 침투했던 공비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직접 참가했었던 국사 선생님이 지겹게 해온 말을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신흥 종교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반갑지 않은 변화였다. 이것이야말로 멸망의 징조라는 꼬드김에 사람들은 잘도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고, 그네들도 법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 결과, 졸지에 우리나라엔 열 명이나 되는 구세주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세계 멸망의 날이 제각각 다르다 보니, 그 날을 가장 나중으로 잡은 자가 제일 유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으련만. 뉴스에서만 모든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게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6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도 참 안됐다. 네 부모님 돌아가신 거 모르지? 네 엄마의 산소호흡기를 자기 손으로 떼어내서 숨을 멎게 한 다음 그 손에 죽었다고 하네. 쯧쯧, 무슨 업보인지……”


조무사가 내 기저귀를 갈아주며 부모님의 부고를 전해주었다. 위로해주려는 게 아니라 어디서 알아낸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한 태도였다. 간병인을 쓰지 않아 자기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며 늘 투덜거리더니,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걸까. 내 부릅뜬 눈을 보자 그녀는 내 반응을 즐기려는 듯 바짝 다가와 속살거렸다.


"그 양반, 사실 돈이 없어서 죽은 거래. 두 사람 병구완하느라 있는 돈 다 거덜나서 자포자기했겠지. 둘은 갔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넌 이제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돈 내는 사람이 없으면 병원에서도 그냥 내칠지도 모르겠네. 넌 큰일이지만 나야 좀 편해지겠네, 호호."


난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노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러자 조무사는 혀를 차더니 내 뺨을 찰싹 때렸다. 


"이거 눈빛 좀 봐. 날 잡아먹겠네, 이 녀석이. 어디 어른한테 눈을 부라려? 내가 틀린 말 했니?"


내가 맞아도 아프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몇 차례나 내 뺨을 때린 후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만행을 이곳의 아무도 증언해줄 수 없으니 완전범죄였다. 게다가 입원비를 내지 못하게 된 나는 분리 수거가 불가능한 쓰레기 이하로 취급받게 될 게 뻔했다. 언제 병원에서 링거 공급을 중단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 사실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화를 내는 순간, 그간 아버지가 좀비처럼 끈덕지게 일하며 나와 어머니를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난 차라리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하는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기뻐하기로 했다.

두 분의 명복을 빌며, 난 오랜만에 베개가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


7


내 건너건너에 누워 있는 병실 동료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서둘러 주세요, 선생님! 609호실 환자의 심박수가 이상해요!”


“알았어! 가죽끈이랑 마스크 준비되었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건장한 청년들이 우리 병실에 우르르 들어왔다. 때마침 난 등창 예방을 위해 옆으로 돌아누워져 있던 터라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이 하는 건 아무리 봐도 응급처치가 아니었다.


“하필 내가 당직인데 딱 걸려서…… 이봐, 이 사람 연고자 누구야?”


“어머니인데, 한 달마다 오더니 요 두 달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제법 있다 보니……”


“그래? 그럼 죽었을 가능성도 충분하겠군. 일단 처리하고 나서 연락하면 되겠지. 묶어! 야, 그리고 저기 저거 이쪽 보지 못하게 돌려!”


담당의사의 호령에 한 청년이 서둘러 내게 다가왔다. 그는 거의 패대기치다시피 날 돌아눕혔다. 간호교육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서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간호사 복장이 아닌 것도 수상했다. 아무래도 힘 쓰는 전문으로 고용된 알바가 아닐까? 졸지에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게 된 나는 이런 추측을 해 보며 등 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둘러! 꽁꽁 묶지 않으면 이놈이 일어나 버린다!”


“아, 좀! 우리가 한두 번 묶어봤습니까? 호들갑 떨지 않으셔도 일 잘 합니다!”


용역들의 짜증에 찬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지간히도 꽁꽁 묶었나 보다. 아직 살아있을 사람을 죽일 셈인가? 하지만 저들은 우리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으니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잠시 후 삐 소리가 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들었던 소리였다. 심박수 정지를 알리는 메마른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저쪽은 소란스러워졌다.


“얼른 들어서 가져온 관에 처넣어! 잘 묶였나 다시 확인하고! 손 풀리면 관 부수고 나온다!”


“잘 묶었으니 걱정…… 어어어! 뭐 이렇게 빨리 깨어나! 아직 일 분도 안 지났는데!”


“야! 저기 고리 안 묶였잖아, 제기랄! 얼른 묶어!”


TV에서만 보았던 일이 내 옆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난 흥분했다. 이런 긴박감을 느끼는 게 얼마만일까? 게다가 잠시 후 괴성과 함께 들린 찌이익! 하는 마찰음은 상황을 더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세상에! 이걸 끊었어! 도망쳐!”


안 묶인 고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간 누워 있으면서 힘을 축적했는지 몰라도 좀비는 어렵지 않게 구속에서 벗어났다. 용역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뭔가로 좀비를 내리쳤지만, 곧 반격당해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좀비에게 쥐어뜯기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급하게 도망갔다. ‘경찰을 불러!’ ‘군대에 연락해!’ 같은 고함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일제히 공격한다면 지금 붙잡힌 사람은 살 수 있을 것이다. 좀비는 일단 한 사람을 공격하면 그에게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저들이 이렇게 도망간다면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이 방 안의 모든 인원이 좀비로 변할 것이다.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에게 지금껏 내 몸을 맡겼다는 사실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을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외쳤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난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오랜 숙제가 해결될 것이다. 난 이제 막 둘로 늘어난 좀비들이 이쪽으로 오는 걸 기다렸다. 착하지, 이쪽으로 어서 와! 좀비니까 혹시 텔레파시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돌아누운 채 등 뒤의 접근을 기대하고 있노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래서야 ‘손만 잡고 자자’라고 말한 후 남자친구가 선을 넘길 애타게 기다리는 여자 같지 않은가.

내 기대가 전해졌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거세게 코를 킁킁거리자 그 숨이 목덜미에 훅 끼쳤다. 이제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나, 아니면 말랑한 배부터 뜯어먹으려나? 어느 쪽이든 난 고통을 느끼지 못할 테니 상관없었다. 단지 하나, 머리만은 좀 봐줬으면 좋겠다. 좀비가 되어 내 발로 다시 땅을 딛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으니까.


드디어 좀비들의 킁킁거림이 뚝 그쳤다.

그리고,

그들의 발소리가 다시 멀어져 갔다.


'어?’


이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난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떠나는 좀비들에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나뿐 아니라 병실 사람들 모두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혹시 우리 모두를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시체라고 생각한 건가? 방금 전까지 우리와 마찬가지 처지였던 주제에! 이대로, 이대로 개만도 못한 죽음을 맞이할 순 없었다. 이대로 두면 저들은 곧 퇴치당할 테고, 난 이런 일의 반복을 막는다는 핑계로 처분될 게 뻔했다.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적어도 내가 죽는 방식 정도는 택하고 싶었다. 침대에서 눈을 끔뻑거리다 죽는 게 아니라, 내 발로 땅을 디디고 이곳의 모두를 해방시켜준 후에 죽고 싶었다. 

바깥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난 온 몸의 힘을 목에 집중했다. 지금 와서 몸을 모두 움직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목만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난 등 뒤를 바라보기 위해 목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이런 일을 어째서 시도하느냐고? 일 년 동안 하릴없이 축적한 모든 힘과 의지를 단 한 동작에 쏟는다는 건 바로 이런 짓이다. 정말 무의미하고, 정말 처절한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좌절과 절망뿐이란 걸 알면서도, 이 순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고 말 그런 행위였다. 


야, 이……


움직이지 않는 목에 수십 번이나 힘을 주면서 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너희가 몇 분 전까지 사람 새끼들이었다면…… 이리 와서 날 좀 죽여줘……!


난 정말 처절하게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좌절과 절망을 얻었으므로.

그들은 끝까지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의 반 쪽짜리 죽음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8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났다.

아직도, 난 살아 있다.


앞서의 사고 후, 한동안 이곳은 엉망으로 관리되었다. 혹시 병원에서 이 병실 인원 모두를 말려죽일 생각인가 싶을 만큼 대우가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 병원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리를 잘 지켜 사망자를 가장 조금 낸 병원’으로 꼽히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대체 무슨 통계놀음을 적용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병원으로서도 이런 명예를 얻은 이상 우릴 섣불리 죽일 순 없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은 일종의 상징으로서 우리를 대우해주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 과정에서 국비지원을 받는 환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에 대한 관리지침은 상당 부분 변화했다. 겉으로 보기엔 예전보다 훨씬 나은 대우였다. 병실은 더욱 깨끗해졌고, 병실의 인원 모두는 하루 한 차례씩 휠체어에 올라타 바깥을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나가는 건 아니었다. 행여라도 갑자기 사망해 좀비가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 휠체어를 탈 때면 넓적다리는 두툼한 구속밴드로 고정된다. 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발목에는 쇠사슬 차꼬가, 허리와 가슴에도 각각 구속밴드가 착용된다. 이 모든 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공개되었다. 우리는 위험한 짐승을 키우고 있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는 꼴이었다. 이런 안전조치 덕분에 세상은 빌어먹게도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미소를 되찾았다.


좀비 관련 뉴스는 점차 줄어들었다. 아직까지 이 현상에 대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미봉책은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요새는 시체의 목을 즉석에서 자른 후 장례식 때 붙이는 방법이 호평을 받으며 널리 퍼진 상태였다. 이렇게 하면 시체는 아예 좀비화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한 가지 과정이 추가된 것 외에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아주 가끔, 좀비를 사육하는 사람이 발견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좀비를 제정신으로 돌리는 법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무리였다. 그런 자는 예외 없이 엄격한 처벌을 받았다. 형량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맹견 관리법을 임시로 적용하기로 했다. 그 정도면 족하다는 게 바쁘신 분들의 생각이었고, 나머진 이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나처럼 사육당하는 건 괜찮고? 란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만한 현실이었지만, 난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과연 인간은 죽음을 정복한 걸까, 아니면 죽음마저 능욕한 걸까. 내가 내 발로 일어설 가능성이 말살된 이상, 난 살아서 이 부조리극의 마지막을 지켜보고자 한다. 신은 인간의 죽음뿐 아니라 삶도 함께 박탈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언제 눈치챌지 기대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사람의 숙명일 텐데, 이제 그런 고민의 여지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결국, 목적 없이 살 뿐인 인간과 그저 죽었을 뿐인 좀비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등한 것이다. 좀비였고, 좀비이며, 좀비가 될 나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이를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바깥은 화창한 봄날씨였다. 간호사가 창문을 열어놓아서 안팎의 소리가 병실 안에서 한데 섞였다. TV 안에서 육감적인 아이돌이 내지르는 괴성, 바깥의 뜰에서 아이들이 꺅꺅거리는 외침. 이런 소음들은 나를 출렁거리게 했지만 채워주진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바깥의 모든 소리를 내 안에 담을 수만 있다면, 난 이를 꾹꾹 압축시켜 딱 한 마디로 내보내고 싶다.


-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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