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모가 변해야 했다
친구가 추천해 준 집 근처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해 주시는 분도 친구의 추천을 받았다. 친구도 아이 문제로 그 분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6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면서 등교 거부를 시작한 딸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친구의 친구가 그분을 추천해 줬단다. 다단계처럼 소개의 소개를 받아 그분을 찾아갔다.
사실 검사를 보고 심리치료를 권유받지는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어떻게 해야 불안한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다독여줄 수 있는지 말이다. 잘하고 있다고, 나는 따듯한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내 옆에서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엄마였으니.
불안이 높은 아이는 상담을 거부했다.
낯선 사람과 낯선 공간에서 1대 1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니 안 그래도 불안이 높은 아이가 반길리 없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 시간으로 딱 한 번만 받아보자고 말했다. 이건 그냥 만들기를 하며 선생님과 노는 거라고.
오락이라면 뭐든지 다 하는 아들. 역시나 그게 뭔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다.
긴장된 얼굴로 들어갔던 아들. 한 시간 동안 만들기를 하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올 때는 얼굴이 환하다.
"엄마 나 또 하고 싶어."
그렇게 아이의 미술상담이 시작되었다.
1회기에 100분씩. 아이가 선생님과 60분 정도 만들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40분은 부모 상담이 진행되었다. 아이가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아이 생각을 알아보고, 일주일간 있었던 일로 부모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짚어 주었다.
"윤후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요. 이 하트 안에 적은 말이 모두 엄마, 아빠, 누나를 향한 마음이에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는 아들.
짜증을 내는 그 모습 하나로 내가 중요한 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아이의 사랑을 말이다.
그 마음 하나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가르치는 직업이다. 아이들에게 행동 요구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만 하는지 설명했다. 첫째 아이에게는 그게 맞았고, 둘째에게는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둘째는 짧고 단호한 말이 필요했다.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 상담을 받고 오는 날이면 배운 걸 실천하려 애썼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말을 바꾸었다.
오롯이 아이만 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맞는 육아 방법을 찾아서 실행했다. 실패하기도 했고, 적절한 방법을 찾기도 했다. 서서히 아이도 편안해져 갔다.
상담 3회 차.
선생님이 갑자기 더 이상 상담을 할 수 없다고 말하신다.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으시고 치료에 들어가신다는 선생님. 상담사를 바꾸거나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선생님을 기다리고 싶다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나도 선생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의 첫 미술 상담이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