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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써니 Jul 23. 2024

오늘의 한 문장(7.23.)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받고 이해받길 바라는 삶을 바라는가

김성오의 <육일약국 갑시다>


누구나 성공이라는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는
실패와 절망, 좌절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이때 가장 쉬운 일은
'내가 하는 게 그렇지 뭐'하며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절망이라는 굴레에 가두고
사람들의 동정과 이해를 바란다.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변명을 늘어놓을까 고민한다.
자신을 포기한 사람을 누가 일으켜 주겠는가.



실패와 좌절을 했을 때 자기변명을 하면 그 순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불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한다.


다른 사람의 이해까지 구하면 금상첨화다. 다들 비슷했을 거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명분까지 생기니 마음마저 편해진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고 하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를 최소화하려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다른 사람들도 직접 겪어봤다면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이다.  


결국 발전도 없고, 성장도 없이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머문다.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동정과 이해를 구하면서 말이다.



예전의 내 모습이다.


실패하고 나면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누군가 나도 그랬을 거라 한마디만 해주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위로받았다. 돌아보지 않았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리고 자책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다고, 나도 그렇고 그런 인간 중에 하나라고.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나의 실패를 말로 표현하는 순간 변명이 흘러나왔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인 걸 알면서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키고 싶었나 보다.


다른 사람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들으며 순간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변명이고, 핑계다. 말하는 사람은 모르는데 듣는 사람은 다 알겠다.


나도 그랬겠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게 보였을까.  

 



다른 사람에게 동정받고 이해받는 삶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이길 바란다.


충분히 노력했는가.

정말 그럴만했는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 했는가.

순간의 이익을 위해 당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는가.


미래의 나에게 변명과 핑계 대신 잘했다 인정받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알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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