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엄마랑 떠난 타이완 여행 2탄
"엄마, 우리 오늘 외박할 거야"
이미 집 떠나 외박 중이면서 새삼스럽게 무슨 '외박'이냐는 표정의 엄마에게 들떠서 말했다. "오늘 드디어 거기서 자는 날이야. 거기 있잖아. 왜 내가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후기 보고 갈까 말까 고민했던 숙소!.... 나오면 엄마가 잡아줄 거지?" 풀었던 짐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엄마에게 오늘 묵을 그곳에 대해 조잘거렸다.
오늘은 '예스진지 '1일 그룹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대만에서 우리의 집이 되었던 호스텔에 캐리어를 맡기고 그룹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인 지우펀에서 1박 하고 내일 타이베이로 돌아올 계획이다.
대만을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꼭 가본다는 '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 관광코스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엔 다소 불편해서 대부분 단체 투어 버스나 택시투어를 이용한다. 택시투어는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버스투어에 비해 가격이 많이 높았다. 버스투어는 택시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가이드가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룹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고 주말엔 지우펀으로 유입되는 차량이 많아서 경우에 따라 작은 버스로 환승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택시냐 버스냐를 고민하며 여행 후기를 검색하던 중에 두 개의 장단점을 절충한 교통수단을 찾았다. 7인승 정도 되는 차량으로 소규모 그룹 투어를 할 수 있는데 가격도 택시 투어보다 저렴했다.
약속한 오전 10시에 시먼역에서 도착했을 때 한국 직원으로부터 기사님이 30분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정이 있겠거니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한편으로는 커피 마실 여유가 생겼다고 합리화하며 대만에서 유명하다는 85℃카페로 갔다. 몇 년 전에 스타벅스에서 시즌 메뉴로 나왔던 짭짤하고 달달했던 솔티머시기 커피를 즐겨 마셨었는데 이 곳의 대표 메뉴가 바로 소금 커피였다. 어떤 여행객은 너무 맛있어서 대만에 있는 동안 매일 한잔씩 마셨다기에 그 맛이 궁금했다.
Sea Salt Coffee, 60위안. 우리 돈으로 2500원이 안 되는 착한 가격이다. 나는 늘 우유 거품이나 휘핑이 있는 커피는 뚜껑을 열고 마신다.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거품의 감촉이나 달달한 휘핑의 맛이 느껴지고 뒤늦게 입안에 번지는 커피의 쌉쌀함이 마치 부드럽고 다정한 줄만 알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카리스마 있는 사람처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주 뜨거운 커피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조그만 구멍으로 한 모금 마실 때 너무 뜨거워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놀라기만 하면 다행인데 입을 델뻔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늘 커피를 주문할 때 "너무 뜨겁지 않게 해주세요"란 말을 꼭 덧붙이곤 한다.
그런데 여행지라 방심했을까. 기대를 안고 받아 든 소금 커피의 첫맛은 극강의 뜨거움이었다. 너무 뜨거워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종업원이 찬 우유를 살짝 부어줬지만 그래도 뜨겁다. 뚜껑을 열고 한참을 후후 불어 뜨거움이 조금 가시니 커피 위에 크리미 하게 하얀 카펫처럼 올라가 있는 것의 맛이 느껴졌다. 아마도 생크림에 짭짤한 소금의 맛이 더해져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커피. 조금만 덜 뜨거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보슬보슬 내리는 비로 촉촉이 젖은 아침에 어울리는 맛이다.
30분이 훌쩍 넘어서야 키가 작고 야무진 체구의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기사님은 영어도 가능했지만 유창하진 않고 발음이 다소 현지 느낌이 섞여있어서 그중에 유일하게 중국어가 가능했던 내가 일정을 물었다. 다른 투어 그룹에 비해 늦어진 출발 때문에 일정을 '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이 아닌 다른 순서로 갈 예정이라고 하셨다. 기사님의 예정대로라면 야경으로 유명한 지우펀의 '야경'을 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의 숙소가 지우펀인 엄마와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서 일정을 다시 맞추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첫 코스는 예류로 대만 북부 해안에 위치한 지질공원이었다. 오로지 파도와 바람만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전시관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은 그만의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했고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이집트 여왕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여왕 바위인데 그 여왕의 목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풍화작용에 의해 갈수록 얇아지고 있어 언젠가는 못 볼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보다 먼저 대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했던 친구가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관광지로 꼽은 곳이 예류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도 너무 신기해하셨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냥 하트 모양 바위, 버섯모양 바위 앞에서 바쁘게 사진을 남겼다. 그러는 사이 관광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뒤늦게 하이라이트인 여왕 바위 앞에 늘어진 줄을 발견했다. 그냥 갈까도 고민했지만 그러면 엄마가 내내 아쉬워 할거 같아 얼른 뛰어가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섰다. 공원을 관리하시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우리도 여왕 바위와의 인증샷을 남기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스펀은 시골 간이역인데 실제로 지금도 1시간에 한번 정도는 기차가 지나다니는 곳이라고 한다.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촬영지로 철로에서 풍등에 소원을 적어 날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원을 빼곡히 적어 날려 보내는 풍등이 드넓은 하늘에 솜사탕처럼 떠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신없이 북적대는 곳은 싫어하지만 스펀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한적하다면 더 좋겠지만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는데도 개의치 않고 마음 깊이 담아 놓았던 바람들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어 하늘로 띄어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원을 적느라 바쁜 얼굴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마음도 이내 힘껏 떠올랐다. "우리 아들, 딸 좋은 짝 만나게 해주세요." 강조의 강조를 거듭하며 써 내려간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대만 하늘을 수놓았다. 풍등 체험을 끝내고 스펀의 명물이라는 닭날개 볶음밥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닭날개의 뼈를 제거하고 거기에 볶은밥을 채워 넣은 것인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닭날개 밥과 허니 레몬주스를 양손에 든 엄마 얼굴에 꽃이 피었다.
본격적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진과스로 향했다. 원래 진과스는 20세기 전반에 금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탄광으로,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황금박물관에 들러 200kg가 넘는 어마 무시한 황금덩어리를 만지는 여행코스로 유명하다. 우리는 시간이 지체되어 광부 도시락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과스로 가는 길에 기사님이 앞에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저기서 황금이 많이 나왔다고 좌측으로 보이는 바다의 일부분이 확연하게 누렇게 보이는 이유가 그 광산에서 나오는 물에 섞인 광물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누렇게 황금빛으로 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진과스로 올라가는 길에는 바위가 온통 주황빛에 가까운 황금색(?)을 띄는 황금 폭포도 볼 수 있었다.
구경도 잠시, 허기가 반찬이라고 큰 돼지고기가 두 넙덕이나 올라간 광부 도시락 밥을 반가운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다시 차에 올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인 지우펀에 도착했다. 지우펀도 1920-30년대 금광 채굴로 번성을 누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광산이 폐광된 이후 대만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고, 국내 드라마 <온에어>의 촬영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몰리는 인파로도 악명(?) 높은 지우펀은 듣던 대로 정말 사람이 많았다.
꼬불꼬불하고 다소 좁은 길 양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엄마와 나는 하루 종일 함께한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일단 숙소에 체크인해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예약한 숙소 산해관은 식사가 가능한 차관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우펀 골목 말미에 위치한 차관에서 체크인을 해야 했다.
끝이 없는 듯 이어진 가게과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얼마간 걸으니 산해관의 차관이 눈에 들어왔고 비로소 그 뒤로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예약된 이름을 확인한 후 열쇠와 내일 아침 조식 쿠폰을 받아 들고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길을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적하고 전경이 확 트인 곳에 전망대처럼 산해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에 큰 액자처럼 달린 창을 통해 보이는 바다와 산의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꼭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후기에 바로 뒤가 산이라 벌레가 많고 바퀴벌레를 봤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꽤 고민을 했었다. 숙소 입구에 카운터로 보이는 곳에 후기에서 많이 보았던 고양이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숙면 중이었다.
마치 일본 만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우리 방 문을 열자마자 벌레에 대한 고민을 모두 내려놓았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정갈하고 곱게 세월을 지나온 듯한 모습,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너무 훌륭했다.
엄마도 그제야 내심 숨겼던 속 말을 털어놨다. "아~ 여길 오려고 지우펀에 왔고만, 아까는 이 복잡스럽고 사람 많은데 왜 왔나 했네!" 다행히 엄마도 숙소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 "여기 올만하지?" 의기양양하며 묻는 내 말에 엄마의 밝은 표정이 긍정의 대답을 대신했다. 예쁜 찻잔에 물을 데워 향긋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오늘의 숨 가빴던 일정을 나눴다.
단체여행객들이 대부분 돌아갈 느지막한 시간이 돼서야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사람들이 좀 빠지고 난 골목은 걸을만했다. 여기서 유명하다는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고 기념 선물로 가져갈 펑리수(파인애플이 속으로 들어간 미니파이)와 누가 크래커('누가'가 들어가 있는 비스킷)를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맛을 봤다. 생각보다 과하게 달지 않고 맛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떡집 앞에서 멈춰 섰다. 하나하나 랩으로 개별 포장이 된 떡을 보며 대만 떡 맛 한번 보자고 하셔서 이것저것 묻고 있는데 한국인 모자가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중국어를 그렇게 잘해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으시더니 떡을 사고 싶은데 무슨 맛인지 몰라서 엄두를 못 냈다고 하시며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보셨다. 간단하게 통역해 드렸는데 그때부터 엄마의 홍익인간 정신이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한국인 관광객만 보이면 도움 요청이 없어도 가서 도와주라고 하셨다. 애써 가르친 딸이 솰라 솰라 하는 모습이 대견하셨던 거 같기고 하고, 무엇보다 여행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한국사람들을 유독 반가워하셨다.
양 손 무겁게 펑리수와 누가 크래커를 사서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산해관 차관에 들어갔다. 마침 늦은 저녁에도 샤부샤부를 주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야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한산한 지우펀의 밤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엄마와 같이 짝을 맞춘 부엉이 핸드폰 고리를 걸어보며 금세 지나버린 3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오늘 그룹 투어를 같이 했던 여자애들로부터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무슨 사진이지? 같이 사진 안 찍었는데?' 전혀 예상도 못하고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 한편에 따뜻한 온기가 번졌다.
"엄마, 아까 그 여자애들 기억나지? 그 친구들이 우리 사진을 보냈네!"
보내온 사진에는 엄마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내가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걷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룹 투어 중에는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말을 많이 걸진 않았고 일방적으로 기사님의 말을 전달만 해줬던 사이였기에 더 뜻밖이었다. 지우펀에 도착해서 기사님과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앞서서 걸어갔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찍은 것이었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찍었다며 오늘 하루 동안 통역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덧붙였다. 엄마도 사진을 보내준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며 한참 동안 사진을 보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샤부샤부가 나왔다. 객관적인 맛을 설명하자면 찾아가서 먹을 만큼 맛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따끈한 국물이 하루의 피로를 다 녹이는 듯했다. 이 밤에 딱 어울리는 메뉴였다. 벌써 내일이 여행 일정상 마지막 날이었고, 모레 새벽엔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3일이 정말 금방 지나간다야"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엄마는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아빠도 오셨으면 좋았을걸" 여행이 좋았던 만큼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갔을 때 누군가 생각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감정인지. 행복한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을 만큼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증거일 테고,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감사할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이 밤이 지나는 게 아쉬워 무거워진 엉덩이를 겨우 일으켜 카운터로 갔다. 밥값을 계산하는데 엄마가 "여기 투숙객인데 좀 싸게 안 해줄랑가? 할인 안 해주나?" 하고 물었다. '설마 해주겠어..?'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런데 종업원이 여기 투숙객이냐고 이름을 확인하더니 정말 할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 할인된대... 대박!!"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도 이미 받았던 돈에서 얼마를 다시 돌려받으니 마치 선물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역시 대단하다며 다음날 커피값을 엄마가 벌었다고 엄마 기분을 붕붕 띄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지우펀의 아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이미 창가 의자에 앉아 아침의 풍경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제 밤늦게 먹고 자서인지 귀엽게 부은 눈두덩이, 탑을 쌓듯 위로 둥둥 뜬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엄마의 사진을 찍으며 아침부터 모녀는 깔깔깔 넘어갔다. 눈물까지 흘리며 한바탕 웃고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른 서운함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하늘은 맑고 청초하게 인사를 건넸고, 전면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아침의 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어젯밤 앉았던 테라스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소꿉장난 같은 아기자기한 비주얼의 조식을 받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곳에서의 하룻밤과 아침이 너무 좋았다.
대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곳이고 가장 그리울 시간임을 직감했다.
타이베이로 돌아와 점심으로 예약해둔 훠궈(샤부샤부) 뷔페로 갔다.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식재료가 많아서 충분히 엄마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잘 드셨다. 엄마는 정말 빠른 속도로 꽤 많이 드셨는데 식사 마치기 무섭게 믿기 힘든 반전 소감을 전했다.
"오늘에야 끄니(끼니) 다운 끄니를 먹었네!"
장난스러운 말투로 엄마 입에 딱 맞는 음식을 오늘에야 먹었다는 말에 한편으로 미안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 아빠와 가는 여행이라면 가능하면 하루에 한 끼는 한식이나 한식에 가까운 식사를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으니 좀 걸을 겸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타이완의 초대 총통이자 '타이완의 국부'로 존경받는 장제스를 기리는 기념당이다. '중정(中正)'이 바로 장제스의 본명이라고 한다.
기념당 초입에는 정원처럼 작은 호수도 있고 돌다리와 정자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엄마는 이건 무슨 나무고, 이건 한국의 무슨 꽃과 비슷하다고 하시며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아주 어린 꼬마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공원을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중정기념당을 오르는 계단의 수가 장제스가 서거한 나이라고 해서 엄마랑 직접 세어보며 계단을 올랐다. 다 오르니 장제스의 동상이 있는 웅장한 홀이 나왔다. 그곳에는 그 동상을 지키는 근위병이 양쪽으로 서있는데 정말 꼼짝 안 하고 서있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는 근접하기 전까지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직접 보시고는 "엄마야~ 진짜 사람이고마잉"하는데 난 그런 엄마의 모습이 재밌어서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이곳에서는 정각마다 근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지는데 절도 있는 동작으로 유명했다. 힘 있는 한 동작, 한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홀 전체에 근위병들의 구두굽소리가 착~착~하고 울려 퍼졌다. 나는 교대식도 흥미로웠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엄마의 눈빛을 흘끔흘끔 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여행의 막바지
저녁엔 샹산에 가서 야경을 보고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는데 며칠간 이어진 여행에 엄마가 다소 피곤을 느끼는 듯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공항 리무진 역이 가까운 숙소로 옮겼는데, 이곳은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한국 봉지 라면을 팔고 있었다. 엄마의 제안으로 공동 주방에서 라면을 뚝딱 끓여서 캔맥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엄마 다음엔 어디로 가보고 싶어?" 돈도 들고 바쁜데 또 가기가 쉽겠냐는 엄마에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니 하나, 둘 적지 않은 나라의 이름이 등장했다. 엄마도 참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얼마 전까진 잘 묻지도 않았고 엄마가 스스로 얘기하지 않았을 뿐, 그녀는 가고 싶고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은 또 다른 나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엄마와 나의 약속이 오갔다. 그 약속마저 없으면 이 밤이 너무도 아쉬웠다.
"우리 꼭 부지런히 많이 보러 다니자, 엄마"
다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돌아가는 아침
Q.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은 OO이다'로 표현한다면?
엄마에게 여행은,
살고 있던 세계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 새로운 곳에 가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 무엇보다 딸과 함께 많은 '처음'을 쌓아가고 두고두고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
딸에게 여행은,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힘, 동기 이자 학습이자 평생 이루고 또 그릴 꿈, 그리고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창.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