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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Oct 05. 2023

삼시 세끼 달고나만 먹은 사연

달고나 대소동

 초등학교 앞에 달고나를 파는 할아버지가 오셨다 하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는 내게 산타요, 최고의 셰프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달고나를 '뛰기'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일반적인 뛰기와 그 외에 신기한 메뉴인 뛰기 빵을 만들어 파셨다. 뛰기는 삼백 원, 뛰기 빵은 오백 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환상적인 간식이었다. 뛰기 빵은 호빵처럼 부불어 오른 내용물 설탕 옷이 살살 입혀진 채로 꼬마 손님에게 전달 됐다. 입천장이 쉽게 데일 정도로 뜨거운 뛰기 빵은 호호 분 후에 겉 부분만을 살짝 베어 물어야 했다. 그러면 속이 굳지 않은 뛰기 빵이 피자 치즈처럼 쭈욱 늘어났다. 믹스 커피 색깔을 띠는 부들부들한 내용물을 늘여서 확인하며 먹는 뛰기 빵의 맛은 언제 먹어도 일품었다. 오백 원이면 시골의 놀이동산이나 다름없는 방방을 삼십 분이나  수 있었다. 뛰기 빵과 모양 맞추기를 할 수 있는 일반 달고나 사이에서 항상 고민했다. 백 원을 더 보태서 달고나를 두 개 먹을 것이냐, 고급 뛰기 빵 하나를 먹을 것이냐. 풀리지 않는 방과 후 숙제였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달고나는 늘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나와 친구들을 위해 엄마께서 직접 달고나를 만들어 주시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의 달고나를 기다렸다. 엄마는 휘리릭 빠른 손놀림으로 첫 번째 달고나를 만들어 아이 1에게 주셨다. 그다음 달고나는 아이 2가 가져갔다. 다다음 달고나는 아이 3이 가져갔다. '나는? 나는!?' 옆에서 군침을 흘리다가 애가 타다 못해 약이 바짝 오른 딸내미는 본인도 좀 챙겨달라며 항의다. 언제나 다른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엄마의 행동이 익숙할 법도 했지만 달콤한 냄새에 취한 나머지 앞이 뵈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혼을 내시면서 동생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놓고 뭐 하는 짓이냐고 혼내셨다. 엄마와 옥신간신 설전을 벌이고 몇 분 후였다.


 분노에 찬 엄마가 대량의 설탕을 들고 오시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 내가 오늘 달고나 한 솥단지를 만들어줄 테니까 각오해. 밥도 먹지 말고 넌 앞으로 달고나만 먹어. 알았어!?"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응. 알았어." 달고나 한 솥단지? 이게 웬 떡이냐. 아싸라 비야.

 엄마는 대형 솥에 설탕을 콸콸 쏟아부으셨고 커다란 쟁반을 여러 개 꺼내서 제법 두꺼운 달고나를 만들고 또 만드셨다. 분노의 달고나 생성 현장에서 나는 달콤한 형벌을 기다렸다. 엄마께선 욕심부린 죄를 달게 받아야 한다며 마냥 달달한 달고나를 코앞에 내놓으셨다. 오늘부턴 밥도 먹지 말고 달고나만 먹어야 한다니! 달콤한 군것질 거리라면 환장하는 나는 삼시 세끼로 달고나를 먹고 또 먹었다. 입천장이 까지고 속이 쓰라려도 맛만 있었다. 나와 대치 중이셨던 엄마는 "독한 것. 저걸 진짜로 다 먹네?" 하시며 깜짝 놀라셨다.

 달고나로 끼니를 해결하는 나의 속마음은 이러했다. 나의 친동생들에게도, 남의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선택지 없이 양보를 강요당하는 처지가 싫었다. 어린 내 눈에 엄마가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건네준 것은 달고나가 아니었다. 관심과 사랑이었다. 섭섭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엄마의 불호령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먹기 싫은 밥 대신 계속 군것질을 할 수 있다니 크게 나쁠 것도 없었다. 속이 쓰라리고 입 안얼얼했지만 이틀 정도 달고나 입에 달고 지냈다.


 등교해서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자랑까지 했다. "우리 집에 달고나 대빵 많아. 엄마가 엄청 많이 만들어 주셨거든. 대형 솥단지에 한가득 있어." 친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감탄을 하며 진짜야? 재차 물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 갈래?" 너도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발 너희 집에 데려가 달라했다. 엄마와 서먹서먹 냉전 상태였던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친구들 네댓 명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아직도 질리지 않 달고나를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그런데 솥단지 안에도 주방 어디에도 달고나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엄마께 여쭸다. "엄마. 그거 어디 있어? 달고나."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다 버렸는데?"


 왜! 왜!? 엄마는 내가 밥을 먹지 않고 달고나만 먹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모두 버리셨노라 답하셨다. '아니. 멀쩡한 달고나를 왜 버리셔? 내 처벌 어디 갔어!' 친구들에게 아쉬운 상황을 이실직고하니 모두 얼굴 표정이 굳은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고나를 버렸다고?" 그 귀한 것을 모두 폐기 처분했다니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충격에 빠진 친구들에게 거듭 사과하며 설명했다. 사실 엄마가 달고나를 그렇게 많이 만드셨던 건 나를 벌 주기 위함이었다고. 친구들은 또 한 번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어떻게 수습했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양치기 소녀가 돼 버린 것 같아 진땀을 많이 흘렸던 듯하다.


 질릴 법도 한 달고나를 나는 어른이 돼서도 무척이나 자주 사 먹었다. 만들기 세트를 구매하는 것은 물론 달고나 커피, 달고나 밀크티, 곱게 포장된 여러 종류의 달고나까지 자주 사 나르며 곁에 끼고 살았다. 대개 달고나를 추억의 맛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게 달고나는 그냥 맛있는 맛이다. 맛있어서 자꾸 게 되는 불량한 맛. 그런 나를 위해 지인들은 카페에서 판매하는 자갈 모양의 굵직한 달고나를 자주 사다 주곤 했다.


 이 글을 쓰 삼 남매 양육에 너무나 지쳐 계셨을 젊은 엄마를 생각했다. 날아다니듯 부잡하게 놀던 우리 삼 남매는 정리정돈을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싸우기도 자주 싸웠다. 이타적인 성향의 엄마께선 제 새끼들 챙기기도 버거우셨을 텐데 동네 이웃인 아이들도 살뜰히 잘 챙기셨다. 그런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며 따르는 동생과 친구들이 많았다. 에어컨도 없는 주방의 가스레인지 앞에서 활활 타는 불을 쬐며 달고나를 만드시던 엄마는 사실 그날도 많이 지친 상태이셨겠지. 게다가 달고나는 눈 깜짝할 새에 까맣게 타 버리기 때문에 빠른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예민한 녀석이다. 정신없이 달고나를 만드는 도중에 옆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큰딸이 "나도 줘. 왜 다른 애들만 챙겨. 나는 언제 줘." 하면서 보챘으니 얼마나 진이 빠지셨을까. 언제든 쉽게 달고나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달고나와 학교 앞 흰머리 할아버지가 파셨던 뛰기 빵은 여전히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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