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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ug 29. 2023

저 순대는 먹을 줄 알아요

못 먹는 음식도 좋아하는 음식도 많습니다

 동네에 해수욕이 가능한 목욕탕이 있었다. 시골 마을에 위치한 큰 목욕탕은 나 같은 꾸러기들에겐 고급 놀이터에 속했다. 친구들과 가고, 엄마와 여동생과 또 가도 성이 안 찰 정도로 목욕탕을 사랑했다. 목욕을 마치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엄마가 사 주신 미노스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막노동 급으로 놀고 나서 마시는 미노스 바나나 우유는 향긋한 꿀이 가득한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바나나 우유를 쪽쪽 빨면서 엄마를 따라가면 어느새 '해 뜨는 집'이라는 시장 초입의 분식점에 도착했다. 동그랗고 붉은 쿠션이 달린 의자와 테이블이 즐비한 가게 안에 우리를 기다리는 고정석이 있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텔레비전을 며 상차림을 기다리면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와 떡볶이와 어묵이 나왔다. 쌈장을 콕 찍은 순대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다가 어묵국물 한 모금을 호로록하면 속이 온탕만큼이나 따뜻해졌다. 떡볶이를 먹다가 매워서 헥헥거리면 바나나 우유가 급하게 입 속의 불을 끄러 출동했다.


 언제나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보이시는 사장님과 잘 어울리는 가게의 이름 해' 뜨는 집'. 북적이는 시장의 햇살을 그득히 받는 분식점에서 두둑이 배를 채우고 나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엄마와 여동생과 나란히 걷다가 좁은 길을 지날 때는 한 줄 서기를 하면서 그렇게 오손도손 집으로 갔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등지고 걷던 우리의 시절이, 아직 젊은 때를 살던 엄마가 가끔 사무치게 그립다. 그때 그 분식점은 이미 사라져 버렸겠지만 기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목욕이 끝나면 당연한 듯이 바나나 우유와 분식을 먹었다. 편식이 심했던 어린 나는 못 먹는 게 많은 어른이 돼버렸다. 그나마 순대를 먹을 줄 아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맛도 먹어 본 놈이 안다고 기를 쓰고 피하던 음식들은 커서도 안 먹게 된다. "곱창 좋아해요?", "선지 먹어요?"라는 질문에 "잘 못 먹어요." 이렇게 답할 때면 왜 그리 주눅이 드는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는 상대방이 "그럼 순대는 먹어요?" 하고 물어보면 "네. 저 순대는 좋아해요." 반갑게 외다. 순대를 먹음으로써 순댓국과 순대볶음까지 섭렵할 수 있으니 그나마 순대가 사회생활의 치트키가 돼 주고 있달까.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을 보면 여자든 남자든 대장부처럼 멋지게 느껴진다.


 감각이 예민한 나는 맛이 아니라 식감 때문에 못 먹는 음식이 많다. 어렸을 때 집에 놀러 온 이웃이 초코파이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버리는 내게 "너는 왜 초코파이 겉 부분만 먹니?" 하고 물으셨다. 뭔가 잘못한 심정이 된 나는 "마시멜로가 돼지비계 같은 느낌이라 못 먹겠어요."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이 격양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머. 세상에. 넌 어쩜 표현을 그렇게 예쁘게 잘하니?"

  수줍게 웃으며 초코파이 봉투를 만지작거리면서 내심 생각했다. '돼지비계가 어떻게 예쁜 표현이 될 수 있지?' 어린 내가 제법 적절한 비유를 짚었기에 그런 칭찬을 해주셨으려나. 그럴 거면 초코파이를 왜 먹냐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아주머니의 독특한 반응이 잊히지 않는다. 내 동생들은 비계를 못 먹는 나를 나무라며 "다른 사람들이랑 고기 먹지 마라." 하고 자주 놀려댄다. 못 먹는 게 많은 나는 사회에서 쉽게 약자가 되곤 했다. 남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를 맛있게 먹을 때 더 익기를 기다려야 했고 그러는 찰나에 내 몫은 동이 났다. 순대곱창볶음을 먹으러 가서 남들이 순대와 곱창을 맛있게 먹을 때 나는 단 한 번의 뒤적거림으로 눈치껏 순대를 골라내서 먹어야만 했다. 순대'도' 잘 먹는 사람과 순대'는' 잘 먹는 사람의 식사 난이도는 한 끗 차가 아니라 세 끗 차 정도 된다. 곱창 냄새 견디기, 입형 뽑기 하듯 순대 골라내기 등. 그럼에도 순대를 먹을 줄 알아서 다행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게 해주는 메뉴가 있어서 좋다.


 못 먹는 게 많아도 맛있는 건 널리고 널렸다. 지금이야 '내 돈 주고 내가 알아서 먹겠다는데 뭐 어때.' 하는 배짱이 좀 생겼지만 예전에는 다른 이들이 나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까 봐, 사람들 틈에서 튈까 봐 몹시 몸을 사렸다. 못 먹는 음식이 많고 술도 먹지 못해 회식 시간에 마음 편히 웃어본 적이 없다. 열심히 분위기를 띄우고 심부름을 하며 분주히 움직이는가 하면 때론 맛있게 먹는 척 연기까지 했다.

 여전히 "이런 걸 못 먹으면 넌 무슨 재미로 사니?", "그냥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어 봐." 꼰대스러운 참견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애써 맞추려 노력하지 않는다. 무얼 먹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 중요 사람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이런 나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배려해 주는 이들과 같이 하는 식사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맛있다. 채식주의자도 많아지고 있는 사회에서 뭘 좀 먹고, 덜 먹고, 못 먹고 가 뭐 그리 중요한가. 각자 마음 편하게 먹고살면 그만이지. 어쨌든 그래도 순대는 먹을 줄 알아서 다행이다. (내장은 못 먹습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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