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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y 09. 2023

나쁜 사랑과 군것질의 공통점

헤어질 결심

 나쁜 사람을 사랑하면 마음을 다치고 나쁜 음식을 사랑하면 건강을 망친다. 좋지 않은 것을 사랑한 대가를 치러본 적이 있는가. 다행히도 불량한 인간과 사랑에 빠져본 적은 없다. 그러나 불량식품을 사랑한 대가로 소중한 어금니 한 개를 잃을 뻔했다. 불량식품 중에서도 딱딱한 간식을 징글징글하게 사랑했던 나와 갱엿과 오징어 다리는 오랜 세월 삼각관계였다. 나쁜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바위처럼 튼튼했던 나의 이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그들을 끊어내지 못한 미련 때문에 오복 중 하나인 치아 건강을 잃고야 만 것이다.


 꼬맹이 시절부터 나의 불량식품 사랑은 극진했다. 오 일 장이 서면 엄마 손을 잡고 시장 가서 갱엿부터 샀. 마가 호박 강정을 만드실 때 처음 접했던 갱엿의 맛은 투박하면서도 달콤하고 고소했다. 반투명하고 영롱한 갈색 빛을 띠는 갱엿 덩어리를 입안에 넣고 굴리면 나중엔 입천장과 치아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빨리 다음 조각을 먹겠다고 애가 닳아서는 이 얼얼할 정도로 입을 움직여댔다.


 정체 모를 건어물인 오징어 다리 역시 리지 않식이었다. 방과 후 피아노 학원에 모여 이론 책을 보면서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짭짤한 감칠맛. 원장 선생님은 우리를 붙잡고 잦은 호소를 하셨다. “아이고. 꼬랑내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왜 자꾸 먹니." 군것질 마니아인 꼬마 고객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리며 이렇게 응수했다. “선생님. 같이 먹어요. 여기 앉아 보세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량식품 파티를 해대는 우리들 때문에 피아노 학원에는 아름다운 연주 소리와 더불어 그리고리 한 군내가 그치지 않았다. (님도 우리의 군것질 파티에 두어 번 합류를 하셨다.) 선생님께는 죄송했지만 달달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튼튼한 이를 가졌던 나였기에 딱딱하고 점도 높은 음식을 평생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늘까지만 즐기자 다짐했던 식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쁜 사람에게 빠지면 답도 없고 못생긴 상대에게 빠지면 약도 없다더니.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오징어와 갱엿 덩어리는 수십 년 동안 나의 치아와 마음을 흔들어댄다.

 건강에 나쁜 걸 알면서도 저렴한 불량식품 앞에서 나는 왜 번번이 무릎을 꿇는가. 천 원짜리와 싸울 때는 딱 그만큼의 마음과 의지로 결투에 임했기 때문이리라. 백 세 인생을 잘 완주하려면 사소한 것을 더 조심해야겠다. 작은 존재라고 얕보지 말고 큰 것을 대하는 마음으로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으니까. 일상에서 부딪히는 가벼운 문제들과 고치고 싶은 사소한 습관들을 나열해 본다. 오늘은 내버려 둬도 별 탈이 없 미미한 것들이 먼지처럼 쌓여 시야를 가리면 제를 직시할 수 없게 된다. 무려 불량식품이 내게 준 인생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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