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살던 인간들이나 현재 살고 있는 인간들이나 발소리는 똑같이 쿵쾅쿵쾅이다. 발망치 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뾰로롱. 삐리뽀. 딸랑딸랑. 인격체에 따라 특별한 소리로 변하는 것이 아니잖는가. 물론 이전과 비슷한 발망치 타격에 가장 절망한 건 우리였다. 여자 혼자 쿵쾅거리면 얼마나 쿵쾅 거리겠냐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뛰면 얼마나 뛰겠냐고? 중량 소음의 고초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남들에게 피해 끼치는 걸 극히 싫어하면서 살아온 우리는 아랫집 사람들이 아무리 얄미워도 매사 조심했다.
물론 우리라고 늘 빈집처럼 사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아파트 전체에 사람이 살지 않길 바라는 듯 굴었다. 대낮에도 소음이 우려 돼 손님들의 방문을 몇 번이고 막아섰던 속상한 심정을 누가 알까.
우린 작은 상을 접어서 넣을 때조차 입술을 앙 다물고 심혈을 기울여 소음이 안 나게 노력한다. 그 모습이 웃겨서 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음을 터뜨렸던 적도 있다. 욕실에서는 더 각별히 주의하라며 남편에게 콧노래도 흥얼거리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발망치 보복? 실내에선 발바닥을 스치듯 걷는 습관을 들인 지 오래. 우리가 겪는 고통을 남에게 똑같이 전가하기도 싫었다.
한동안 빈집이었던 윗집에 신흥 발망치 인간이 거주하자 나는 다시 떠돌이 부랑자가 되었다.
퇴근 후엔 부모님 댁과 여동생 집을 오가며 신세를 졌다.
야근을 마친 남편과 나란히 귀가한 날이었다. 아무도 없던 집에 또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제발 층간소음 관련 배려 좀 해주세요. -OOO호-"
극대노한 우리는 일단 침착 하자며 서로를 달랬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장 사진도 찍어 두었다.
그리고 관리실에 가서 직원 분께 종이를 보여 드리며 아랫집과 윗집 사람들을 불러 주시라 했다.
윗집 사람들은 본인들도 층간소음 때문에 힘들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14층(나와 눈싸움을 벌였던 층간소음 맛집) 때문에 많이 참고 산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랫집은 저것 보라고, 결국 너희 집이 소음의 원인 아니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좋게 좋게도 사람 나름' 맵싸한 교훈을 환기하며 여태까지 모아 놓은 증거, 여행 갔을 때 붙었던 쪽지 등에 대해 따졌다.
그들에겐 논리가 없었다.
"우리는 당연히 윗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다였다. 역시 무논리는 막강했다.
수년째 제대로 된 확인과 증거도 없이 모든 소음의 주범은너희 둘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이번엔 제대로 못을 박았다. 우리 집이 맞다면 증거를 모아서 가져오라고. 만일 당신들이 주장하는 모든 소음의 원인이 우리라면 어떤 보상이라도 하겠다고. 대신 우리 집이 아님에도 또다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집 앞에 찾아와서 서 있고, 빈 집에 쪽지를 붙여 놓으면 그땐 당신들도 책임을 져야 할 거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힘든데 그중에서도 특히, 밤 11시, 12시, 새벽 1시, 새벽 2시, 새벽 3시 등이 힘들다고 했다.
여보세요. 우리가 그 시각까지 철인처럼 부지런을 떨었으면 뭐라도 돼서 좋은 집으로 진즉 떠났겠죠. 우린 처음으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멍청하고 물렁거리게 대처했던 과오를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
그러나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남편과 내가 쥐고 있는 증거인 윗집 여자의 발소리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윗집 사람들은 조용히 우리의 싸움을 구경했다. 아랫집 사람들은 우리 집 12층이 아닌 13층 사람들에게 시간 내줘서 고맙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다.
찝찝하고 속상한 다툼은 별 수확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그 후 애먼 사람 잡는 아랫집의 항의가 그쳤다는 것.
엉뚱하게 한 놈만 패던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웃이 아니라 원수였다.
어떤 소음이든 들릴 때마다 천장을 째려보며 여전히 우릴 욕하고 있을 사람들.
그들이 적극적으로 소음의 진원을 파악하려 했다면 몇 번이고 해답을 얻었을 거다.
우리 부부의 경우 한 명은 우리 집, 한 명은 소음이 들리는 세대 앞에 서서 소음을 확인함으로써 원인을 찾아냈다. 관리실에서 윗집이 맞는지 제대로 파악해 달라 요청할 때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을 올랐다. 삼류 탐정 같은 행위를 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 거리고 정신은 괴로웠다.
미우나 고우나 공동체의 운명이 된 아파트 사람들.
우리와 그들은 함께 좁은 엘리베이터를 나눠 탄다.
그들이 함께 가자고 뛰어 오면 우리는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린다.
더는 아랫집 사람들의 무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서로를 의식하면서 조용히 부대끼고 살아갈 뿐.
우리가 언제까지 H아파트에 머물게 될지, 누가 먼저 이곳을 떠나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의 이웃들이 죽일 만큼 미웠다면 결코 층간소음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해도 더는 심장이 꽝꽝 울리지 않는 걸 보면 악감정도 많이 닳았나 보다.
물론 11층, 12층, 13층의 삼자대면이 마지막이었는지 추후에도 예정돼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윗집의 소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니까. 그러나 12층 우리 부부에게는 진실 공방을 향한 일말의 두려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