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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Oct 30. 2023

지우개의 비밀

지울 수 있다면 지워버리면 좋겠어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문득 부끄러운 사건이 생각났다.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두 눈을 감았다. 가슴속 깊이 뜨거운 감정이 부끄러운 기억을 타고 쪼르르 흘러내렸다. 청소년 시절을 지나던 무렵에 문구점에서 좋은 펜 몇 자루를 샀다. 용돈을 모아 구매한 문구 제품에 제법 방대한 꿈을 실었다. 이 펜으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도 내고 멋진 글귀도 정성껏 메모해야지.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연습장과 펜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설렜다. 들뜬 마음으로 연습장에 글씨를 쓰는데 펜이 뚝뚝 끊겨서 나왔다. 펜촉을 둥글둥글 구슬려도 보고 위아래로 탈탈 털어 잉크를 섞어도 보았으나 불량품을 산 것인지 두 자루씩이나 말썽이었다. 어찌나 실망스럽고 화가 나던지 당장에 문구점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이미 깊은 저녁이었다. 좋아하는 군것질도 삼가고 아낀 용돈으로 구매한 제품들이 어째서 이모양인지 속상했다.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잉크가 굳어버렸거나 펜촉의 문제일 거라 추측했다. '사장님한테 이야기하면 교환해 주실까? 인상이 무섭던데.'     


 이튿날이었나. 긴장한 마음으로 다시 문구점을 찾았다. 어떻게 말씀드릴지 몇 번이고 속으로 연습을 했는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현금으로 구매한 데다가 물건을 사면서 받은 영수증도 없었다. 소모품을 바꿔 달라고 했다가 괜히 감정만 상할까 우려됐다. 볼펜 코너로 가서 조용히 바꿔치기를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번거롭고 불가능한 처사인 것 같았다. 이대로 돌아가자니 지불한 돈이 너무 아깝고 사장님께 교환 요청을 하자니 용기가 안 나고 오리무중이었다. 괜히 시간 낭비를 하는 것도 화가 나는지라 앞으론 여기서 아무것도 안 사야지 울분을 삭이며 포기하려는 찰나 작은 지우개 하나가 보였다. 몹쓸 마음이 들어 슬쩍 사장님을 살폈다. 계산대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내가 있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신 듯했다. 에라 모르겠다. 쿵쿵 뛰는 심장으로 작은 지우개 하나를 집어서 슬쩍 호주머니에 넣었다. 다리가 꼬여버릴 듯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어찌어찌 문구점을 빠져나왔다. 사장님께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했는지 못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게를 빠져나와 두 쪽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한쪽에는 불량제품인 볼펜이, 한쪽에는 불량한 이가 훔친 지우개가 들어있었다. 어떤 것도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방에 도착해 비로소 지우개를 끄집어냈다. 삼백 원쯤 되는 제품이었던 것 같다. '아. 내가 대체 뭘 한 거야?' 자괴감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딴에 엄청난 복수를 펼친 탓에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볼펜에 서린 한도 어느 정도 해갈되었다 믿었다.     

 그 후로 도둑으로 몰리는 꿈을 자주 꿨다. "저 아닌데요? 훔친 적 없다고요." 식은땀을 흘리며 찜찜한 마음으로 꿈에서 깨면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괴로웠다. 꿈에선 퍽이나 억울했지만 현실에서의 범인은 내가 맞았다. 망할 놈의 지우개를 문구점에 다시 몰래 갖다 놓을 순 없을까. 사장님께 사실대로 고하면 아주 혼쭐이 나겠지. 지우개 하나에 그토록 죄책감을 느꼈던 이유는 이러한 정황이 계획된 범죄였기 때문이리라. 뭐라도 복수하고 싶은 심리, 변상을 받고야 말겠다는 성미, 물건에 집착하는 욕심. 치졸한 삼박자로 짬뽕된 범죄였기에 성인이 돼서도 오래도록 악몽을 꾸고 부끄러워야만 했다는 사실을 나만이 잘 알고 있었다.


 후로 몇 년이 지나 영어 공부를 하다가 'rivet'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대갈못이라는 명사 옆에는 작은 글씨의 주석이 달려 있었다. '예수를 매달 때 사용된 큰 못 등을 이른다' 뜻밖의 주석을 읽고 그만 눈물이 터진 나는 서럽게도 울었다. 가롯유다가 은 30세겔에 팔아넘긴 예수를 또다시 내가, 고작 300원에 팔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콧물을 쏟은 뒤늦은 회개를 통해 다시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고 더는 악몽을 꾸지도 않게 되었다.      

 넘치는 사랑 속에서 자랐지만 동생이 생기면갑자기 나눠 갖게 된 부모님의 관심에 노심초사했다. 그러한 불안은 물건을 향한 집착으로 변모했다. 특히나 동생들이 나의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몰래 사용할 때면 미성숙한 물심이 폭발했다. 부모님께서는 첫째가 돼서 그런 걸 이해 못 하면 쓰냐고 나를 나무라셨다. 물욕은 오랜 시간 나를 속박했다. 맥시멀리스트였던 나는 오로지 '내 것'을 소중히 여기며 물건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 지우개를 훔친 것도 물건을 통해 마음을 채우려는 습관도 모두 나의 그릇된 선택이 빚은 결과물이었다.


 부끄러운 과오를 지우개로 모두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물욕은 결코 물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결핍을 물건으로 채우려 할수록 오히려 갈증만 커진다. 당장에 필요치도 않은 물건을 손에 꽉 쥐고 정작 나의 쓰임을 놓치는 불찰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남이 가진 것을 탐내지 않고, 타인이 이룬 결과를 함부로 질투하고 평하지도 않으리라. 남의 것을 훔쳐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야만 도둑질이던가. 도둑 심보가 나를 좀먹지 않도록 매사 경계해야겠다. 결심이 해이해질 때면 도로 반납하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 지우개를 기억하련다. 지우개의 아픈 비밀을 글로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 또한 상기해야지. 여전히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줘버리는 게 편한 나는 마음에 여러 자국을 내는 욕심을 지우기 위해 부끄러움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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