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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22. 2023

신용카드를 삼키는 여자

내 몸에 플라스틱이 찐다!?

 환경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지만 읽을수록 무지한 나를 발견한다. 얼마 전 남편과 몽골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몽골로 가는 직항편이 증가하는 추세라 여행 가는 사람들도 고 있어서 흥미롭다고. 네 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을 견디면 경이로운 대자연의 초원과 사막을 볼 수 있는 몽골.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몽골은 그저 청정 국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구를 빼앗지 마"라는 책을 통해 접한 몽골 이야기에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일본 등 선진 동아시아 국가가 야기한 기후변화 칭키즈 칸의 후예인 몽골인들의 삶 송두리째 흔들리는 실정이란다. 기후변화로 인해 몽골 유목민의 생태인 초원이 메마르고 그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가축들이 굶주리면서 수많은 이들이 극빈층으로 몰락했다 글을 읽고 참담했다. 몽골의 초원지대에 덮인 눈이 녹으면서 모래먼지가 일어나고 이는 다시 우리나라를 뒤덮는 황사가 되는 악순환이다. 여전히 환경 문제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구촌 생태계의 오염은 완벽한 먹이사슬 구조이다. 첫 번째 도미노 도형이 무너지면 결국 맞닿아 있던 모든 도형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국제환경단체인 지구생태발자국 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오버슛데이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생태발자국이란 우리가 일상 활동에 쓴 자원과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토지면적이다. 한국인은 남한 면적의 여덟 배가 넘는 크기의 땅에서 생산하는 만큼의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실태라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러한 생활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플라스틱의 노예처럼 살았던 나는 칭키즈 칸의 후예가 환경 난민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생태발자국과 탄소발자국 또한 그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쳤으리라.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들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관찰 대상으로 삼은 기록이 있는데 새끼 북극곰 80마리 중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은 단 두 마리라고 한다. 2018년도에 우리나라의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방류한 바다거북은 방류 11일 만에 부산 바닷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GPS장치가 부착된 멸종 위기의 바다거북을 부검한 결과 무려 225개의 해양 쓰레기가 나왔다고 한다.


 호주 뉴캐슬대학교 연구진과 세계자연기금이 연구한 사람들의 평균 미세플라스틱 섭취량은 실로 놀다. 필수불가결한 수돗물과 생수 등을 통해 인간들은 매주마다 신용 카드 한 장(5g)에 달하는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 작고 왜소한 나의 조카들 역시 이토록 어마어마한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빨대 하나, 비닐봉지 한 장이라도 덜 쓰면서 지구와 미래의 자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실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 안에 적극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과대 포장이 된 제품들에는 도무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매로 골드자몽 한 봉지가 할인 매대에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구매를 위해 집어 들었는데 위생비닐이 찢긴 상태였다. 평소라면 얼른 새 봉지를 뜯어서 과일을 감쌌겠지만 그대로 카트에 담아서 계산을 완료했다. 장본 품목들을 미리 챙겨간 에코백 두 개에 옮겨 담으니 문제 될 게 없었고 오히려 편리했다.


 요즘엔 집 근처에 나갈 때마다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일단 가방을 챙긴다. 남편도 외출 시 습관처럼 에코백을 소지한다. 불필요한 종이가방이나 포장 용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으니 우선 다회용 가방부터 챙기고 볼 일이다. 플라스틱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좋아하던 수납함도 함부로 지 않는다. 수납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곧장 근처 매장에 가거나 앱부터 켰던 나다. 수납함은 다다익선이고 정리의 황금열쇠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수납 옵션이 잘 갖춰진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간소한 미니멀라이프가 가능해진다면? 그간 잘 써왔던 가구나 수납 스툴의 태반이 골치 품목으로 전락다. '다음 달에 이사를 간다면, 긴 여행을 떠면.' 이런 전제를 깔고 생활하니 불필요한 제품의 구매를 태반 막을 수 있게 됐다.


  신축 아파트 집들이를 갔다. 그런데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를 위해 멀쩡한 가구 뜯어내는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관리실 사람들은 몸살을 앓고 있었고 주변 환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새 가구가 하루아침에 분리수거도 안 되는 초대형 복합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엄청난 소음과 분진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런 실태를 보며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소망보다는 될 수 있는 한 내가 지구에 내던지는 쓰레기의 양이 적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지구를 빌려 쓰는 입장이기에 내 흔적을 조금이나마 줄여나가고 싶다. 오늘도 알게 모르게 많은 양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했을 지만 미미한 실천을 통해나마 쓰레기 배출을 줄였다.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는 오늘의 기회 잡기 위해서. 이렇게 박약한 사람도 꿈틀 거리며 노력이란 걸 해 본다.


참고: 우리말샘, 지구를 빼앗지 마(김기범 지음)


일주일에 1개, 해마다 52개씩 먹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오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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