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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13. 2023

계단 100층을 오르게 만든 작가

오늘의 트레이너는 무라카미 하루키

 운동 중독의 짜릿한 맛을 즐겼던 내가 어쩌다 보니 기지개 한 번 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안 잡힌다. 필라테스, 요가, 헬스, 달리기, 수영, 홈트레이닝 등. 너무나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진 만큼 나와 잘 맞는 운동을 찾기 어다. 이것 조금 하다가 저기 기웃거리다가 구차한 이유를 대며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숨쉬기 운동이 전부가 돼 버린 현실. 이젠 홈트나 가벼운 산책조차 의지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럼 여겨진다. 지독한 야근을 하고도 운동을 강행했던 내가 이렇게나 운동에 담을 쌓고 살 줄이야.


 걷기와 달리기의 운동 효과를 극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 요즘. 그래! 나도 운동화 끈 질끈 매고 달려 보자. 따사로운 햇빛을 정수리에 쫴며, 가쁜 호흡으로 자연을 만끽하면서 달리다 보니 살아 있다는 전율이 온몸에 전해진다. 이것은 방구석에서 상상하는 내 모습이다.


 운동화가 없나. 죽을병에 걸리길 했나. 시간도 있겠다. 집 근처에 좋은 호수 공원도 있겠다. 모든 조건이 갖춰졌는데도 이 작은 몸뚱이 하나 끄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흑흑.

 급기야 축구 경기를 보는 내내 응원은 하지 않고 '좋겠다. 자신의 몸을 저렇게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라는 탄성에 젖은 나를 발견했다. 한심하다 진짜. 도저히 못 봐주겠다.


 달리기에 능숙한 지인에게 운동을 배우고 싶다며 손을 내밀었다. 집 앞으로 픽업까지 와 준 덕분에 트랙이 잘 갖춰진 운동장에 편하게 도착했다. 초저녁에 동네 친구 넷이서 만나 달리는 방법을 숙지하고 내 딴에 오랜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했다. 400m 운동장을 무려 열 바퀴나 돌았다. 4km를 거뜬히 뛰고 나니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향한 열망도 그때뿐이었다. 스승님들 없이는 결코 몸을 움직이지 않는 나였다.

 운동 없는 삶을 살아보니 아침부터 밤까지 무기력한 상태가 이어진다. 안 아픈 데가 없이 몸 구석구석이 찌뿌둥하다. 세월의 흐름이 무릎과 허리 강타한다. 아프기 싫으면 운동을 하면 되는데 내 몸을 마음 가는 대로 가눌 수 없는 내가 점차 두렵기까지 하다. 이대로 늙으면 달리기는커녕 보조기 없이는 움직이기도 힘든 노인이 돼 버릴 것 같다.

 좀체 꼼짝을 않고 책상 앞에만 붙어 있는 인간이 정녕 나란 말인가. 몸을 함부로 대하고 젊음을 당겨 쓰는 인간에게 건설적인 미래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독서대에 책을 뉘인 채 자리에서 글만 읽는 나. 움직이는 건 눈알뿐이다. 딴에 읽고 있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디 한번 나를 달리게 해 보시하는 심정으로 뒤늦게 이 책을 펼쳤다.


 작가와 달기라는 매력적인 조우. 과연 얼마나 동기부여가 될 것인가. 그때였다.

 "달리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의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20 수년간 끊임없이 달리는 것으로서 내 신체와 건강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글이 별안간 나의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검질긴 경험을 통해 나온 글의 힘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는 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레깅스를 입었다. 쫀쫀한 검은색 레깅스가 두 다리를 꽉 붙들었다. 비엔나소시지 같은 레깅스 핏이 상상 돼서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 폼이 나쁘지 않은데? 안도의 한숨을 쉬며 BTS 노래가 흘러나오는 에어팟을 꼈다. 이미 전문 러너가 된 것처럼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실렸다. 이런 감정 상태를 오버를 넘어선 '육바'라고 표현하고 싶다.


 맨투맨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나왔는데 앙칼진 칼바람이 불었다. 감기에 걸린 데다가 동장군 앞에 기를 빼앗긴 나는 공원 달리기 대신 계단 운동을 택했다. 이십오 층 계단을 준비운동도 없이 한 번 쉬지도 않고 저벅저벅 올랐다. 숨이 가빴지만 레깅스가 하체를 단단히 잡아주니 운동할 맛이 났다. 노래 두 곡이 끝나니 금세 아파트 꼭대기에 당도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일층부터 이십오 층까지 걸어 올랐다. 두 번째부터는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 들지 않다. 왕년에 운동을 했던 이력을 몸이 기억하는지 총 백 층을 가뿐히 올랐다. 체온이 기분 좋게 오른 후에 바깥공기를 마주하 추위가 물러갔다.

 '운동좀 더 해 볼까?' 싶었지만 역시 육바다. 오늘만 날이 아니기에 힘을 비축하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와 땀에 젖은 옷을 벗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친 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민트색 실크 잠옷을 걸쳤다. 내 몸에 축적된 과도한 칼로리와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 기분이다.


  냉장고 안에 있는 요거트와 소파 위에 있는 봉지 과자가 나를 유혹지만 배고픔을 즐기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래 글을 쓰고 싶거든 그만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겠다. 언젠간 나도 달리기와 운동에 대해 제법 할 말이 으면 싶다. 그 많은 유투버도 나를 문밖으로 끌어지 못했건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소리도 없이 내게 운동화를 신겼다. 몇 문장의 글이 나로 하여금 백 층의 계단을 오르게 만들었다. 글의 힘이라는 게 참으로 막강하지 않은가. 나 역시 누군가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필요하다면 독자의 손에 펜을 쥐어주고, 때로는 그의 발에 탄탄한 운동화를 신겨 자연으로 이끌고 싶다. 건강한 글을 쓰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걷고 달리기로 계획한다. 날이 좋은 날도 궂은날도 유산균 챙겨 먹듯이 꾸준히 운동해지. 할머니가 돼서도 계속 쓰고자 하는 나를 위해.

1분 계단 오르기 약 10칼로리 소모. 오늘 내가 먹은 칼로리 태우려면 3시간만 계단 오르기 하면 되네?? TO NA ON 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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