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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24. 2023

글을 쓸 때 넘어야 하는 허들

어렵고 필요한 질문

 폭한 겨울의 늦은 오후. 책 한 권과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선크림을 단단히 바르고 나왔건만 카페로 향하는 잠깐 새에 땅거미가 도로를 적셨다. 쓰고자 하는 글 있어 틈틈이 기록해 둔 상태라 마음만은 밝았다. 좋은 글을 쓰리라는 예감에 젖은 채로 달콤한 음료를 주문했다. 카페는 제법 조용한 데다가 분위기도 조명도 글을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늘은 독자를 만족시킬 만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좀 읽다가 드디어 노트북을 켰다. 글의 서두를 열었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나를 덮쳤다.


 잠깐만! 이걸 왜 쓰는 거야? 누가 궁금하대?

 소재 글도 너무 평범한데?


 스스로 던진 질문에 허를 찔린 나는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몇 줄 써놓은 글을 숨기기 위해 엔터키를 반복해서 두들겼다. 글은 하얀 화면 밑으로 주욱 곤두박질쳤고 나는 깜박이는 커서만큼이나 작아 버렸다. 글을 쓰면서 익숙하게 마주하 상황이지만 거다 싶은 답을 찾기란 매번 어렵다.

 “너 요즘에 글 써서 돈 버는 거야?”라는 타인의 질문보다 훨씬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자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 글을 과연 누가 재미있게 읽어 줄 것인가.”

 글을 쓰느라 들인 수고로움과 노력만큼이나 소중한 건 읽는 이의 시간이.  한 편을 세상에 내보낼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돈보다 훨씬 값진 것을 투자받고 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독자에게 글을 통해 드리고 싶은 뚜렷한 한 가지를 반드시 책정해 놓는다. 재미, 감동, 공감, 위로, 동기부여 등. 그 무엇도 전할 수 없는 글이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노력을 들인 글이라 해도 결 발행하지 않는다.

 이런 글을 분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글을 쓰는 도중에 ‘독자가 끝까지 정독해도 좋 글인가.’라는 의문이 반복된다면 수정이나 폐기가 필요한 글이다. 아쉬움이 남는 글은 다시 쓰면 된다. 그러나 독자가 내 글을 읽느라 들인 시간과 수고로움은 재생되지 않는다.


 어머니들의 히어로라고 불리는 가수 임영웅 씨에게 반했던 순간이 있다. 우연히 그의 무명 시절 버스킹(길거리 공연) 영상을 보고서다. 열성 팬이나 갖춰진 무대 하나 없이 푸른 해변칠흑 같은 어둠이 되도록 래하는 의 모습을 보았다. 무심히 모래사장을 지나치는 사람들과 밝게 웃는 무명 가수의 모습이 흑과 백처럼 대조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불투명한 미래를 가진 청년 임영웅의 모습이 흑에 가까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뛰는 동시에 아팠다. 화려한 자태가 아니라, 초라한 무대에서 젊음을 태우는 그 모습에 나는 임영웅의 팬이 되었다. 작은 접점을 계기로 그가 경연 프로그램에서 일 등을 거머쥘 때까지 문자 투표에도 참여하고 열렬히 응원했다.

 꿈이 있는 사람이 겪는 외로움, 길이 열릴 듯 말 듯 한 날들 속에서 헤매는 심정, 불안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간절함을 알기에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무명작가가 쓰는 글 또한 모래사장 위의 비주류 버스킹 무대와 다를 게 없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미래의 명도가 수시로 바뀌는 듯한 불확실함을 안고 노력을 재생한다. 무명작가는 치열한 세상에 전 재산과 다름없는 나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소리 없이 기도할 뿐이다. 언젠가는 내가 찍어 놓은 발자국과 노력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메아리쳐 돌아오기를. 그것이 창작자라는 타이들이든, 독자의 지지이든, 인정이든 뭐든 기꺼이 내게로 돌아와 다시 길을 열어 주기를.


 얼마 전 브런치 구독자가 오백 명 돌파했다는 알람을 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2023년 4월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목표와 소망을 각각 하나씩 품었다. 꾸준히 쓰겠다는 목표 올해가 가기 전에 구독자 수가 삼백 명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

 “구독자가 500명을 돌파했습니다!”라는 알람이 내게는 이런 의미로 읽혔다. “잘하고 있어요. 더욱 분발해 보세요.” 글마 빼곡한 진심을 담았기에 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글을 쓰게 된 내게는 구독자분들의 존재 자체가 최고의 선물자 동기부여의 원천이다.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 중에 “당신의 마음이 아픈 건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라는 콘텐츠가 있다. 어떤 대상에 진심을 쏟으면 다치기 쉽다. 그만큼 자주 기쁠 수도 있다. 사람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이를 더욱 체감한다.

 최선과 적당함.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최선을 택한 사람은 자신을 성장시키고 또 만족시킬 수 있다. 무대가 초라하다고 실력까지 초라하라는 법은 없다. 어떤 글이 나를 명하는 트리거가 될지 모르기에 매일 읽고 쓴다.

 올해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오른손을 핸드폰 거치대 삼아 내가 쓴 글을 읽고 고치를 반복했더니 매라도 맞은 것처럼 난생처음 손바닥뼈가 다 아프다.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좋은 글을 쓰는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물음 앞에 선다. 마음껏 외로울 수 있는 창작의 굴로 들어내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 가장 쓰고 싶고, 써야만 하고, 읽혀 마땅 소리에 성껏 귀를 기울인다. 글을 쓰며 만나는 장애물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표. 기꺼이 뛰어넘으며 승선에서 기다리는 독자를 향해 나는 정진한다.

심쿵했던 브런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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