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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16. 2023

갑자기 앞집이, 갑자기 윗집이

층간소음 일타강사 14

 "집 분들이 곧 이사를 가신다는데?" 이유가 무엇이 됐건 내겐 비보였다. "갑자기!? 왜!!" 험난한 공동주택 살이 가운데 우리 부부가 실낱처럼 의지했던 앞집 분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남편에게 앞집 아저씨께서 이사 소식을 전해 주셨단다. 생활 여건이 바뀌어 이사를 떠나게 되셨다는데 두 분의 안녕을 기원하면서도 아쉬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보다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얼마 남지 않은 이사로 인해 밤낮으로 바쁜 앞집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든든한 남편이 있건만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는 듯한 이 고독함은 뭐지?


 다음 달 평일로 알았던 이삿날은 알고 보니 바로 다음 주 평일이었다. 날짜를 착각한 탓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별이 찾아왔다. 그들이 떠나고 나와 있던 짐이 모두 사라진 광경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휑했다. 남편 역시 앞집 분들께 정이 많이 들었는지 텅 빈 앞집을 지나칠 때마다 "진짜로 가셨네. 기분이 이상하네."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이웃이 올지 모르겠지만 만나면 가벼운 인사정도는 나눌 수 있기를, 더 나아가 좋은 인연으로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앞집 가족들이 떠나고 요 며칠 현관이 쥐 죽은 듯 조용했는데 갑자기 "샤샤삭 슥슥" 하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음? 뭐지? 누구지? 하고 문을 열 누군가 후다닥 사라졌다. 문고리에 종이가방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나는 재빨리 방화문을 열었다. 방금 막 누군가가 통과해 간 것인지 센서등이 훤히 켜져 있었다. 이상하다. 앞집 분들이라면 인사를 피해 급히 달아날 이유가 없는데?


 약속 시간이 다돼서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궁금한 나머지 서둘러 종이가방을 열어보았다. 편지 한 장과 다과가 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 집 문고리에 작은 선물을 두고 간 사람은 앞집이 아니라 윗집 분이었다. 편지에는 요즘 집이 좀 시끄럽지만 곧 이사 계획이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잉? 하루이틀 시끄러운 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편지와 선물에 당황한 우리 부부는 이게 무슨 상황인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작은 뇌물을 받고 몇 배로 끔찍한 층간소음에 시달려야 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비단 현재에만 국한된 예가 아니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의미가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조심하고 살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이거나, 누군가에게는 "다 이해하고 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므로 편지는 감사히 받고 다과는 돌려 드리자는 의견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또 우리를 생각하며 작은 선물이나마 준비해 주셨는데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 드리는 처사는 너무 매정하게 가닿을 것 같았다. 외출 후에 답을 내리기로 하고 일단 집을 나왔다.


 발망치가 심한 이웃이 남긴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번에도 본인의 발소리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아기의 소음에 관한 논제만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아기의 소음을 두고 의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우리의 진짜 고충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밤이 늦은지라 남편과 부랴부랴 동네 편의점으로 갔다.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각 과자를 사서 차곡차곡 종이가방에 담고 나 역시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다. 한 번에 잘 써 내려갈 자신이 없어 깨끗이 지워지는 연필과 부드러운 종이를 선택했지만 단시간에 글이 술술 풀렸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윗집은 따뜻하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추위를 많이 타서 보일러를 틀어 놓고 생활하고 있답니다. 위아래 집으로 만나 종종 주고받는 인사가 우리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공동주택 생활을 하다 보니 성인의 발소리로 인해 이웃 간에 실랑이가 오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실은 우리 집에 소음 문의 차 다녀가신 후로 저도 참고 있던 층간소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의 소리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만 혹시 어머님께서 여건이 되신다면 소음 방지 슬리퍼 착용 등을 통해 발소리를 줄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저희 부부도 소음에 대비하여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고 있답니다. 최근 인테리어 소음인지, 원인 모를 큰 소음이 많았기에 윗집 분들도 힘든 부분이 많을 것이라는 대화를 남편과 나누었습니다. 육아로 인해 많이 바쁘시겠지만 건강 잘 챙기시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누면 좋겠습니다. 서로 배려하면서 더욱 건강한 공동주택 생활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부부 또한 부동산을 오가며 새 집을 찾고 있기에 누가 먼저 이사를 떠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하루를 살더라도 내 집이 내 집다웠으면 하는 바람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남편 역시 이웃들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예민한 아랫집 사람들을 위해 꼬마 손님들의 방문을 만류하거나 생활 소음, 발소리에 매사 신경 쓰는 등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소음을 방지하고 있다. 이 발생할 정도로 큰 윗집 분의 발소리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윗집 여자분께서 우리 집에 몇 차례 찾아오셨을 때에도 꾹 참고 소음에 대해 운운하지 않았다. 상치 못한 편지를 받고 진의가 무엇일까, 왜 갑자기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셨을까 하는 고민이 앞섰다.

 무조건적 이해를 구하는 것일까? 혹여 다른 집의 소음을 우리 집으로 오해한 탓일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마침내 좋은 의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마음을 활짝 열게 된 장치는 그들이 두고 간 간식이 아니라 편지에 작게 쓰인 하트표(♡)였다. 그 작은 표식 하나가 이웃에게 마음을 열도록 돕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도 호의를 표하는 소통 차원에서 편지에 하트표를 새겨 넣었다.


 누차 말하지만 아무리 많은 선물이 오가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이웃 간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슬리퍼 착용, 매트 사용, 역지사지하는 태도 등 살기 좋은 공동주택을 만드는 최선의 지름길이다.

 혹시 발소리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웃을 만난 적이 있는가. 반론하기 전에 세대원들의 발소리를 유심히 점검해 보자. 본인의 발소리가 어떤지 가족들에게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 발바닥 아래 폭신한 슬리퍼 한 켤레를 깔아 주면 어떨까. 남에게 오랜 시간 같은 문제로 피해를 입히면서 나 혼자편안한 삶. 그런 작태는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에게 적합한 모습이 아니다.


 여러 해 발망치 소리에 고심했고 심신이 피로했다. 몇 번 의견 전달을 시도했으나 "저희는 아닌데요?" 하는 반응에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 공동주택의 구조에서는 제 아무리 조심한들 붙어 있는 이웃들에게 알게 모르게 실례를 범하게 되어 있다. 하물며 장시간 집에 거하며 쿵쾅쿵쾅 무심한 걸음으로 이웃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볼 문제다.

 윗집이 이사를 가고 안 가고는 우리에게 중요치 않다. 당장 오늘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날그날이 최고의 보약이다. 발소리가 심한 날은 윗집 사람이 밉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날에는 당연히 그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윗집 분께 받은 편지 덕분인지, 내가 쓴 편지 덕분인지 어째 발소리가 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가도... 아 역시 습관은 못 고치는 건가 싶은 상황이 반복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한결 평안해졌다. 속내를 터놓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손 내밀어 주신 이웃 분께 감사하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도 민망하지 않도록 아니, 반가울 수 있도록 우리 남은 시간도 잘 지내봅시다. 하트."

그새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미세스쏭작가의 <층간소음 일타강사 브런치북>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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