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이야. 너랑 나 둘 다."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에서본처 지선우가 내연녀 여다경에게 건넨 말이다. 남자 주인공 이태오는 자기를 살뜰하게 챙기는 여자를 보면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통제받는다는 기분이 들면 달아나 버리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이태오 같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성을 만나더라도 정착이 불가하다. 어쨌거나 세 주인공 모두에게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로 인해 사랑이 불타오르고 가정이 깨지기도 한다. 본능은 잘 조절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때라야 만족을 줄 수 있는 성질이다. 그나저나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이라는 게 대체 뭘까?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은 곧이상형이다.내게도 본능을 자극하는 취향이라는 게 있다. 오랜 시간 바뀌지 않는 내 이상형의 기준은 눈썹이 짙고, 쌍꺼풀이 없고, 앞머리를 올렸을 때 이마가 잘생기고, 목소리가 중후한 사람이다. 배우자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걸 보면 내 취향도 참 확고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남자는 많다. 결혼 전에는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자가 다가오면 관심을 갖거나, 사귀거나, 스치는 인연으로 남거나 뭐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제 아무리 훈훈한 이성일지언정 물리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본능에 충실한 눈은 꽤나 솔직하게 상대를 평가한다. '잘생겼다, 멋지다.' 그러나 그게 다다. 필요 이상의 감정은 잘 다듬어진 이성의 영역이 싸워서 물리친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제2의 이태오의 길을 걸어가겠지만 말이다.
이십 대 초반에 한 남성 작가가 쓴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결혼을 하고도 가슴이 터질 듯이 멋진 이성을 종종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게 사실이라면 결혼을 안 하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유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 사람과 60년 이상을 사는 삶은 얼마나 권태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과연 나도 유부녀의 신분으로 배우자 외의 이성에게 그런감정을 느끼게 될까? 어떻게? 몇 번이나? 의문과 동시에마음을 잘 동여매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말이다. 그러한 궁금증을망각할 만큼이나 심장이 멋대로 나댄 적이 없다. 워낙에 단조로운 생활을 하기 때문일까. 다소 모범적이고(?) 정형적인 일상을 사는 가운데불타는 감정이 피어오를 사건 자체가없었다. 어쩌다 한 번 괜찮은 이성과 인연이 닿는다 해도 '아는 동생이랑 연결해 주면 좋겠는데.' 하는 오지랖만 발동할 뿐. 결혼 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감정보다는 이성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고백하자면 아무리 철옹성처럼 굴어도, 심지어 내가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심을 표하고 느끼하게 구는 인간들이 있었다. 이런 일을 겪더라도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기에 무시하거나 똑 부러지게 대처하거나 둘 중 한 가지 태세를 취하면 그만이었다. 가끔가다남편에게 이렇다 할 상황을 털어놓으면 그 또한 상당히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편이었다. "웃기는 인간이네. 무시해.", "그런 놈은조심해."이런 대응이 전부였다. 야무지고 의리 있는(?) 마누라를 믿고 보는 그이기에 더 깊이 캐묻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십 년 차 커플이지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부부의 세계는 하나의 세상이고 또 전부이기도 해서 여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요즘 들어 어르신들이 왜 그리도 열성적으로 팬클럽 활동을 하시는지알 것도 같다. 난 아직 소녀 감성이 가득한 아줌마라서 이따금 멋진 이성에게 호들갑을 떨며 설렘을 느껴 보고 싶다. 늦깎이 사춘기 바람이 불면 한 번 만날 가능성조차 없는 연예인에게 눈을 돌린다. 이 또한 한때이지만 식을 줄 모르는 청춘을 건전하게 푸는 데에는 덕질이 최고다.
인간은 원체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라 결혼을 했다 해도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TV,책, 웹툰,현실 속에서도. 하지만 그건 그저 이상형일 뿐이고 스쳐가는 생판 남일뿐이다. 본인의 가치관과 마음이 건실하다면 간혹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예쁜 상대를 마주친다 하더라도 가정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다.성숙한 부부의 세계는 대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