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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Nov 20. 2023

마음을 미용한 하루

머리칼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채운 시간

 남편과 함께 미용실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인 추천으로 미용실을 바꾼 남편은 매우 만족하며 새로 디자이너 선생님을 칭찬했다. 꼼꼼한 솜씨에 친절하다는 선생님의 실력이 궁금했다. 평일 저녁에 남편보다 삼십 분 앞선 시간으로 미용실을 예약했다. 홀로 문을 열고 어섰는데 선생님께서 당황 표정을 지으셨다. “예약하셨을까요?” 나는 꾸벅 인사하며 남편 추천으로 오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구나! 문 열고 들어오시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예쁜 분이 오시다니.” 머리를 맡기기도 전에 별 다섯 개 평점 백 점! 듣던 대로 선생님이 실력자시네?


 머리카락을 살짝 다듬기만 할 계획이었는데 유심히 머릿결 상태를 점검하고 머리를 감긴 후에 제법 심도 있는 상담을 진행하시디자이너 선생님. 거의 스무고개 게임을 진행했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질문이 이어져서 깜짝 놀랐다.

      

펌은 일 년에 몇 번 정도 하세요?

요즘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해요. 펌이 오래 유지되는 미용실을 찾은 후로 머리 하는 횟수가 줄었어요.

잘하셨어요. 본인에게 잘 맞는 디자이너를 찾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머릿결 관리도 잘하고 계시네요. 머리를 어떻게 다듬길 원하세요? 멋을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편하게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한가요?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결국 편한 걸 추구하게 돼요. 앞머리도 조금만 넘어오면 귀에 꽂아서 전부 넘기게 되고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오늘은 머리를 어떻게 자르면 좋을까요?

세팅파마를 한 지 두 달 정도 돼서 상한 부분이 있다면 끝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요즘 머릿결에 이렇게 신경 쓰는 사람이 드문데. 시간을 내서 오신 걸 보니 관리 잘하시네요.

아하하. 그런데 요즘에는 층이 많은 스타일이 유행이잖아요. 제 경우에는 여기서 층을 더 내면 얼굴형이 동그랗기 때문에 안 어울리겠죠?

맞아요. 지금도 충분히 층이 많이 나 있는 스타일인데요? 오히려 아랫부분을 살짝 잘라서 층을 줄여주는 게 좋겠어요. 앞머리는 조금 길게 연결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열띤 대화는 계속됐다. 선생님의 질문은 비단 머리카락에만 국한돼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편의와 멋 사이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앞으로 머리를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지까지 상세히 알려 주시며 정성이 가득한 상담을 진행하셨다. 단지 기본 컷을 하러 갔을 뿐인데 그녀가 고객진심으로 대하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인의 일을 대충 하는 사람과 프로 정신으로 임하는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이런 차이는 본인도 알고 심지어 무뚝뚝한 손님도 모두가 알아채는 법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글을 좀 써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어떻게든 분량을 채운 글과 오랜 시간 고심하여 문장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 글은 확연히 다르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더라도 정성과 실력을 쏟아 귀인 대접하듯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 선생님과 대화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즘엔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지 ‘이 경험이 글이 되면 어떨까?’는 고민을 하는데 미용실 사장님과의 만남이 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찰.

     

 내 머리 손질이 끝나자마자 퇴근 후 겨우 시간을 맞춘 남편이 미용실 문을 열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 나누는 우리를 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얼마나 만났기에 결혼한 부부가 그토록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냐며 우리 둘에 관련한 질문 연거푸 다. 선생님은 현재 만나는 분이 있냐 물었더니 “사실 저는 얼마 전에 오 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라고 씁쓸하게 고백하는 그녀. 이쿠. 너무 슬프다.

 “이를 어째. 왜 하필 이렇게 추운 겨울에 헤어지셨어요.” 선생님은 정곡을 찔렸다며 애석한 미소를 지었다. 미용실에는 슬픈 이별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솔직한 감정을 비치는 그녀에게 연애 상담 잘하니까 연락하라며 농담인 듯 진담 같은 소리를 건넸다. 밥도 못 먹고 늦은 오후까지 웃으며 손님을 대하던 그녀였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슬픔을 밝은 표정으로 억눌렀을 사정 생각하니 덩달아 울적했다. 이심전심으로 서러워진 나는 미용실을 나오는 순간까지 선생님을 열심히 응원했다. 지나가다가 커피 마시고 싶으면 들르라는 그녀에게 다시 볼 때까지 파이팅 하시라며 주먹을 불끈 쥔 자세를 취해 보였다.

    

 감정 이입을 잘하는 나는 대화를 마치고도 계속 마음이 쓰였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지독한 이별을 경험해 봤기에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론 자신에게 너무나 불친절한 일이다. 소중던 연인과 헤어지고서 마음이 너무 아픈데 종일 밝은 미소로 손님을 대해야 한다. 자신을 돌보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오로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게다가 마음도 허한데 끼니까지 굶어가며 눈앞의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하다. 내 속을 돌아볼 틈도 없이 어찌어찌 밤이 찾아오면 편안하기는커녕 참았던 슬픔이 와르르 밀려들겠지.

 전보다 차분해진 헤어스타일을 손질할 때면 종종 미용실 선생님이 떠오른다. ‘나를 떠나가는 것들’이라는 노래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힘들지만 나를 떠나가는 것들을 잘 보내주고 나면 한결 더 성숙한 사랑과 인연과 자족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녀의 마음 또한 하루가 다르게 정돈되고 차분해지기를 바라며 미용실에서 공부한 어른의 하루를 글로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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